부당한 계엄·쿠데타 거부한 선배 군인들도 있었다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4-12-12 14:34:08

[김덕련의 역사산책 10] 기억할 만한 소수
1952년 이종찬, 부산정치파동 군 동원 거부
1972년 채명신, 유신 독재 추진 반대 직언
1979년 장태완·김오랑, 12·12쿠데타에 항거
군 간부들에게 헌법 정신 제대로 교육해야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의 주역 중 한 축은 일부 군부 인사다. 광복 후 군은 민주주의를 여러 차례 파괴했다. 1961년 5·16쿠데타, 1979년 12·12쿠데타,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이은 광주 학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군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1951년 2월 어린이, 노인 등 719명을 죽인 거창 학살 사건이 대표적인 군의 민간인 학살 사례다.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발표한 뒤 계엄군이 4일 새벽 국회 의사당 창문을 깨고 진입하고 있다. [뉴시스(사진=독자 제공)]

 

오욕의 세월 속에서도 부당한 계엄과 쿠데타를 거부한 군인이 소수지만 있었다. 세 가지 사례만 살펴보자.

첫 번째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발생했다. 차기 대통령 선출이 예정된 해였는데, 당시 헌법대로 국회에서 뽑으면 이승만 대통령이 재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직선제 개헌을 밀어붙였다.

이승만 정권은 그해 5월 25일 비상계엄 선포를 시작으로 군경, 깡패 등을 동원해 국회의원들을 겁박했다. 반공 투사로 알려진 일부 의원에게 국제 공산당이라는 누명을 씌워 구속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7월에 헌법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

이것이 부산정치파동인데, 그 문을 연 비상계엄 선포에 반대한 군인이 있었다. 이종찬 육군 참모총장이다. 이종찬은 '군은 정치에 동원될 수 없다'며 병력 파견을 거부해 결국 해임된다. 그는 1960년 4월혁명 후 허정 과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맡았을 때에도 3·15 부정 선거에 관여한 군인들을 숙청하며 군의 정치적 중립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종찬은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중일전쟁·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며 훈장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별개로, 부산정치파동 때 보인 모습은 기억할 가치가 있다.


두 번째 사례의 주인공은 주월 한국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이다. 1972년 육군 제2군 사령관을 맡고 있던 채명신 중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몇 차례 불려갔다. 박 대통령은 채명신에게 집권 연장 조치를 또 취할 뜻을 내비치고 지지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고 한다.

5·16쿠데타 때 야전 부대를 이끌고 가담했던 채명신은 이번엔 박 대통령 뜻에 끝까지 반대했다. "각하, 이러다 제명에 못 돌아가십니다"라고 직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식에 부합하는 반대였다. 박 대통령은 집권 연장을 위해 1969년 3선 개헌을 강행하고 1971년 대선 때 '마지막 출마'라고 공표까지 한 상태였다. 채명신의 반기는 위험한 모험이기도 했다. 야당 의원은 물론 여당 의원도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면 끌려가 고문당하기 일쑤이던 시절이었다.

채명신은 끌려가지는 않았지만 군복을 벗어야 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유신 독재 체제를 수립했다. 대통령에게 동조했다면 대장으로 진급해 계엄사령관을 맡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채명신은 그 길을 가지 않았다. 5·16쿠데타 가담과는 별개로 유신 독재 추진에 반대한 부분은 평가받을 만하다.

 

▲ 영화 '서울의 봄'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오진호 소령. 오 소령의 실제 모델은 12‧12쿠데타에 항거하다 숨진 김오랑 소령이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세 번째 주인공은 1979년 12·12쿠데타에 항거한 장태완 소장과 김오랑 소령(중령 추서)이다. 장 소장은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쿠데타를 진압하려 했다. 김 소령은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불법 체포하려는 쿠데타군과 맞서 싸웠다.

둘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장 소장은 체포, 강제 예편 등 수모를 당해야 했고 김 소령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많은 시민이 쿠데타 세력에 굴하지 않고 의로운 행위를 한 이들을 아직도 기리고 있다.

세 사례에서 주인공들이 보인 모습은 비상계엄 사태에 가담한 군부 인사들의 행태와는 천양지차다. 부당한 계엄과 쿠데타를 거부한 선배들의 교훈을 그간 군 간부들에게 충실히 교육했다면 이번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것 말고도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주제가 많지만, 빠뜨려서는 안 될 것 중 하나는 헌법 정신이다. 3·1운동과 4·19민주이념 계승을 명시한 헌법 전문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만 가슴에 새겨도 감히 국민에게 총구를 겨눌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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