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노량'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① 신량역천(身良役賤): 신분은 양인인데 너무나 고되고 천시되는 역이 부여된 계층을 신량역천이라 했다. 그중 하나가 수군이었다.
수군 병사는 직업 군인이 아니었다. 평시엔 생업에 종사하다가 석 달에 한 번씩 한 달 동안, 1년에 넉 달(임진왜란 직전 기준) 군진에 가서 복무했다.
식량 등 복무에 필요한 일체의 물품은 자체 조달해야 했다. 병역 의무자인 보인(保人) 3명이 군 복무를 하지 않는 대신 수군 1명을 지원하게 돼 있었지만, 이 제도는 잘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니 경제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군진이 거주지에서 먼 경우도 많았다. 여러모로 육군보다 부담이 큰 데다 대물림까지 됐던 수군 군역은 조선 초부터 기피 대상이었다.
② 굶주림: 병사들은 적에 앞서 굶주림과 싸워야 했다. 1593년과 1594년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기근과 아사가 심했다. 당시 군량 배정 최우선 순위는 조선군이 아닌 명나라군이었다. 조선군 내에서 수군에 배정된 군량을 육군이 가져가는 경우도 많았다.
류성룡 말대로, 수군의 근무 교대가 원활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를 키웠다. 교대 병력이 제때 충원되지 않아 기존에 복무하던 병사들은 집에 가서 식량을 마련해올 수 없었다. 그래서 굶주림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이 시기 군영에서 병사들에게 식량을 지급한 사례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임시방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학계는 본다. 자부담 원칙이 바뀐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즈음 충청도 수군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군량을 지급하면서 '복무를 마치면 갚아야 한다'고 지시한 기록도 있다.
③ 전염병: 1593년과 이듬해 굶주림으로 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전염병이 돌아 숱한 병사가 쓰러졌다. 이순신은 군사들이 태반이나 전염돼 사망자가 속출한다는 장계를 올려야 했다.
1595년 잔존 수군 병력이 전년의 20~30%에 불과했다는 추산이 나올 정도로 피해가 막심했다. 여기에는 수군의 특성도 작용했다. 수군 병사는 넓지 않은 군선(軍船)에서 일정 기간 함께 생활해야 했다.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④ 유망(流亡): 수군 군역을 부담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유망은 임진왜란 전에도 있었지만, 전쟁 발발 후 훨씬 심각해졌다. 누군가 유망하면 그 사람의 친척·이웃에게 군역을 전가하는 것이 당시 법도였다. 이는 군역 부담을 대신 떠안은 백성들의 연이은 파산을 초래했다.
원성이 높아지자 조정은 군역 전가 금지를 수차 추진했다. 그때마다 이순신이 강하게 반대했다. 친척·이웃 징발을 금지하면 적을 물리칠 전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백성도, 이순신도 딱한 처지였다.
⑤ 유리개걸지배(流離丐乞之輩): 유망이 워낙 확산돼 군역 전가 방식은 곧 한계에 달했다. 마을 자체가 비어 친척·이웃을 징발할 수 없게 됐다고 이순신이 말할 정도였다.
군역과 거리가 먼 계층까지 징발하는 등의 변화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은 유리개걸지배, 즉 떠돌며 구걸하는 무리를 수군으로 받아들였다. 상당수의 노비도 수군으로 징발됐다.
유리개걸지배와 노비는 복무 비용을 스스로 댈 수 없는 부류였다. 이들을 수군에 묶어두려면 이제 방침을 바꿔 군영에서 식량을 지급해야 했다. 수군이 둔전을 확대하고 고기잡이는 물론 또 다른 신량역천 업무 중 하나인 소금 생산에 주력한 것도 이 때문이다.
| ▲ 2004년부터 2년간 방영된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그려진 수군 병사들 모습. [방송 화면 캡처] 1598년 11월 노량의 겨울 바다로 나아간 조선 수군 병사들은 갖은 어려움을 견뎌낸 이들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전투 장면이나 국수주의를 앞세우는 세간의 적잖은 '노량' 담론에서는 그에 관한 내용이 가려지거나 간과되곤 한다.
병사들이 감당해야 했던 구체적인 어려움에 초점을 맞춰 임진왜란 시기 수군의 활약상을 되짚어볼 것을 권한다. △참조=이민웅 책(『임진왜란 해전사』, 청어람미디어, 2004), 한성일 논문(「임진왜란 시기 수군 동원 방식의 실태와 변화」, 『지역과 역사』 51, 2022), 나승학 논문(「임진왜란기 조선 수군 진영 전염병의 발생 실태와 영향」, 『군사연구』 144, 2017) KPI뉴스 /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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