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창조적 파괴'가 두려운 사회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 2019-01-21 09:43:50
목숨걸고 저항하는 건 당장 생존이 위험해지기 때문
"안전해야 대담"…사회안전망 없이 창조적 파괴는 없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 시대에 뒤처진 산업은 퇴출되는 게 순리다. 그게 자본주의이고, 그래야 시장경제가 굴러간다. 새로운 혁신이 낡은 것을 파괴할 때 자본주의는 역동성을 유지한다. 조지프 슘페터가 갈파한 '창조적 파괴'란 그런 것이다. 실력 없는 기업의 퇴장은 창조적 파괴의 과정일 뿐이다. 창조적 파괴를 통해 인적·물적 자원은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경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이 단순한 논리가 한국에서는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창조적 파괴는 좀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외환위기를 겪은 20여년전이나 금융위기가 닥친 10년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변화는 더욱 두려운 일이 되었고, 도전정신은 훨씬 더 빈약해졌다.
안정적 일자리에만 길게 늘어선 구직행렬, 구조조정 위기에 목숨 걸고 저항하는 살풍경이 생생한 증거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이나 카카오 카풀에 저항해 목숨을 끊은 택시기사의 비극 모두 우리가 얼마나 유연함과 역동성을 잃은 사회에 살고 있는지 실감케 한다.
왜 꼭 공무원 시험인가. 젊은 나이에 실패를 각오하고 혁신적 비즈니스에 도전하면 안되는 것일까. 카풀은 꼭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하는 것인가. 4차 산업혁명은 인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하는 거대한 흐름이라는데, 차라리 죽을 각오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창조적 파괴가 작동하는 사회라면 마땅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니다. 이런 식의 훈계는 "우리때는 말이지∼"를 입에 달고 사는 '꼰대'의 잔소리일 뿐이다. 젊은 시절의 좌절이 인생의 실패가 되고, 일자리를 잃으면 당장 생존이 위험한 사회에서 어떻게 안정을 갈구하지 않고, 목숨 걸고 저항하지 않을 것인가.
외환위기를 겪고 20년이 흘렀다. 그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인가. 어쩌면 이렇게도 경직되고 척박한 사회를 만들어놨는가 말이다. 결국 사회안전망을 준비하지 않은 죄다. 창조적 파괴의 충격을 흡수할 완충장치가 빈약하다보니 창조적 파괴가 무섭고 어렵기만 하다.
고용보험만 해도 과감한 구조조정을 감당하기엔 너무 허약하다. 통상 실업급여는 해고 전 월급의 절반 정도인데 그것도 캡(상한선)이 씌워져 있고 기간도 6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해고 전 월급의 70∼80%를 2년까지 지급하는 선진국 고용보험과는 비교 자체가 무색하다. 선진국에서 부실기업 퇴출이 상대적으로 원할한 것은 탄탄한 사회안전망 덕분이다.
결론. 사회안전망 없이 창조적 파괴는 없다. 복지선진국 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은 일찍이 "Secure people dare"를 외쳤다. 안전하다고 느껴야 대담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복지는 낭비가 아니라 투자,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소득 3만불을 달성한다고 선진국인 것은 아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기준 한국은 여전히 복지 후진국이다.
류순열 경제에디터 ryoos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