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주의 주마등] 누군가에겐 뾰족했던 런던베이글
김윤주 기자
kimi@kpinews.kr | 2025-10-31 10:28:52
격무에 시달리던 26세 청년 과로사 논란으로 핫플의 그림자 알게 돼
노동부 장관 "엄정대응"…달콤함에 취해 씁쓸한 현실 외면하지 않길
▶ 갓 서울시민이 됐을 때다. 안동에서 놀러 온 친한 동생과 석촌호수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생이 "잠깐 웨이팅 걸고 올게"라며 '런던베이글뮤지엄(이하 런베뮤)'을 다녀왔다. 포장 대기를 위해 줄서고 입장까지 또 기다려야 하는 핫플이라고 했다. 그때 처음 그 가게를 알게 됐다. 지방 친구들과 만날 때면 나도 줄서 베이글을 샀다. 수도권에서만 맛볼 수 있는 디저트 맛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 베이글은 선물할 수 없을 것 같다.
▶ 따뜻한 베이글과 달리 충격적인 뉴스가 들려왔다. 런베뮤에서 일하던 청년이 지난 7월 과로로 숨진 것이다. 그는 주당 58~80시간 일했다. 입사 14개월 동안 강남과 인천 등 네 지점을 옮겨 다니며 신규 지점 개업과 운영 업무를 모두 맡았다. 격무에 시달리며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했고 퇴근 후 기숙사에서 쓰러지듯 잠드는 날이 많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청년은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겨우 26세였다. 취업을 위해 찍은 사진이 그렇게 영정사진이 되고 말았다.
▶ 우리가 베이글을 위해 긴 줄을 서는 동안 직원들은 그 줄보다 더 긴 하루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런베뮤 전 직원의 SNS 폭로는, 이 문제가 단지 사망한 청년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폭로에 따르면 계약은 3개월 단위였고 문제 발생 시 회사의 일방적 계약 종료가 가능했다. 입사 11개월 차 한 직원이 아파서 일을 못하자 계약 종료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직급자조차 작은 실수로 강등이나 계약 종료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런베뮤의 지난해 산재 승인 건수는 29건으로, SPC삼립(11건)보다 두 배 많다는 보도도 나왔다. 누군가에겐, 그곳 베이글이 둥글지 않고 뾰족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 행복하지 않은 일터는 오래갈 수 없다. 런베뮤를 둘러싼 의혹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 8월, 최종 인수를 앞두고 청년 사망 사고를 축소·은폐했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산재를 신청하겠다는 유족에게 런베뮤 측이 "양심껏 행동해라"라는 문자를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논란이 커지자 노동부 장관은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시민은 런베뮤 불매운동을 시작했지만 대부분 지점은 여전히 핫플이다. 손님인 우리도 어디에 줄을 서는지 알아야 한다. 달콤한 베이글 맛에 취해 씁쓸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젠 베이글의 구멍조차, 누군가의 가슴이 뚫린 것처럼 느껴진다. 꽃다운 청년의 명복을 빈다.
KPI뉴스 / 김윤주 기자 kimi@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