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더블린에서 만난 황금빛 긍정, Yes!"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4-06-28 15:49:30
옛 옷차림으로 더블린 누비며 소설 낭독하고 퍼포먼스, 노래 합창
세계의 애호가들이 모여들어 문학 작품으로 하나가 되는 귀한 축제
현장에서 조이스의 작품과 배경 돌아보며 체험하는 '대긍정'의 환희
"해피 블룸스데이!"
지난 6월 16일, 아일랜드 더블린 거리는 20세기 초 옷차림의 더블린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들은 다른 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웃으면서 속삭이듯 인사했다. 해피 블룸스데이!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상징인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1882~1941)의 소설 '율리시스'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행보를 따라가며 축제를 벌이는 날이었다.
소설은 1904년 6월 16일 하루 동안 주인공인 블룸이 더블린 시내를 배회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거니와, 블룸스데이는 매년 이 날 세계에서 모여든 조이스 애호가들이 소설 주인공의 뒤를 따라 걷는 날이다. 아울러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축제 현장에서 낭독 퍼포먼스를 열거나 함께 노래를 부르는 날이기도 하다. 문학 작품 하나로, 한 사람의 문인을 중심으로 한 마음이 되어 아일랜드는 물론 세계의 독자들을 끌어모아 축제를 벌이는 모습은 찾아보기 쉽지 않은 귀한 풍경이다.
이날 오전 10시, 조이스의 친구 고가티의 집 앞에서 우리 도보 순례팀은 합류했다. 더블린 트리니티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안내자 '이브'의 설명을 들으면서 소설 속 블룸이 걸어다닌 더블린 시내 몇 곳을 들르는 팀이었다. 이날 순례에는 이브가 소속된 회사에서만 저녁에 도는 팀까지 합쳐 200여 명이 합류하고, 이러한 도보 행사를 운영하는 업체가 여러개이다 보니 거리 축제에 따로 운집하는 시민들과는 별도로 외부에서 온 순수 조이스 애호가들만 천 명 넘는 이들이 조이스의 소설 속 주인공의 발걸음을 따라다니는 셈이다. 이 도보 행사는 조이스센터에서 블룸스데이가 아닌 평시에도 진행돼 언제든지 참가비를 내고 합류하는 게 가능하다.
우리 팀은 조이스센터를 들러 전통적인 펍, 트리니티대학, 조이스의 아내 노라가 일했던 핀즈호텔 자리를 거쳐 오코넬 거리의 조이스 동상 앞에서 머물다 리피 강을 건너 '율리시스' 고서점 앞에서 두 시간 여에 걸친 행보를 마무리했다. 20명 안팎의 한 팀이 안내자 뒤를 따라 더블린 시내를 걷다가 둥그렇게 서서 설명을 경청하곤 했다. 멈춰 선 장소와 연관된 '율리시스' 한 대목을 안내자가 주로 낭독했고, 참여자에게 기회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조이스 애호가들답게 낭독을 제안받은 이들은 기꺼이 소설을 거리에서 읽었다. 고령의 노인에서부터 아직 앳된 학생으로 보이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문학으로 하나가 된 일행이었다.
학계에서는 가장 많은 논문이 쓰인 소설로 난해하고 방대한 '율리시스'를 꼽는데 이 소설이 만들어낸 문학박사가 정작 난해한 이 작품을 읽은 독자보다 많을 것이란 농담까지 있다. 이른바 '조이스 산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더블린에는 조이스와 관련한 다양한 관광상품이 개발되어 있고, 파리, 취리히, 더블린, 트리에스테 등 조이스가 거주했던 도시들에서 조이스 축제가 열린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리스'는 1922년 출간된 장편으로, 스티븐 데덜러스, 레오폴드 블룸, 마리언 블룸(애칭 '몰리'), 세 사람이 중심인물이다. 18장으로 구성됐고, 3장까지는 조이스의 자신의 청년시절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스티븐이, 이후 17장까지는 블룸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며 스티븐과 함께 등장하고, 마지막 18장은 블룸의 아내 '몰리'가 침대에 누워서 쉼없이 이어가는 독백으로 끝난다. 이 장 '페넬로페'는 쉼표와 마침표 하나 들어가지 않은채 길게 이어지는 문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각 장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한 대목들을 가져와 나란히 놓고 그 골격을 바탕으로 조이스가 창작한 인물의 더블린 이야기를 담아내는 형식이다. 트로이로 원정을 갔다가 전쟁에서는 이기지만 신들의 노여움을 사 그리스 이타카 고향 항구로 돌아오기까지 오디세우스가 겪어야 했던 험난한 여정을 블룸의 더블린에서의 하루 여정에 대입한 것이다. 각 장마다 다양한 형식을 가져와 파격적으로 전개할 뿐 아니라, 성애를 묘사하는 표현 수위도 높아서 애초에 뉴욕에서 이 소설이 연재될 때 중단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어렵게 1922년 파리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오랫동안 외설로 낙인이 찍혀 있다가 해금됐다. 이러한 소동을 겪은 화제의 인물로 당시 타임지 표지 모델로까지 등장했던 조이스는 이후 다시 '율리시스'보다 난해한 '피네간의 경야'를 출간하면서 같은 잡지의 표지를 두 번씩이나 장식하기도 했다.
블룸은 소프라노 가수인 아내 몰리가 동료 음악가 보일런이라는 사내와 만나는 관계임을 알고 있다. 그날도 오후 4시 경 보일런이 집으로 와서 아내 몰리와 침대에서 시간을 보낼 것을 알고 있던 블룸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더블린 시내를 배회하다 밤 늦게 스티븐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데, 정작 열쇠를 두고 나와 지하실 난간을 통해 귀가한다. 다리가 넷인 아내의 방을 엿본 뒤 문을 닫고 춤을 추는 우리네 처용처럼, 쓰라린 마음을 다스리면서도 끝내 아내에 대한 기대를 블룸은 저버리지 못한다.
마지막 장인 18장은 '페넬로페'인데, 페넬로페는 남편 오디세우스의 귀항을 기다리며 많은 구혼자들에 맞서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는 풀었다가 다시 짜는 반복 과정을 통해 정절을 지키며 수절하는 여인이다. 이에 비해 몰리는 많은 남자들과 자유롭게 관계를 가지면서도 끝내 블룸에 대한 애정을 저버리지 않는 유형으로 제시된다. 이 마지막장 몰리의 숨찬 독백은, 블룸에 대한 다양한 추억을 나열하다가 영어 문장 최대 긍정의 상징인 '예스!'(Yes) 로 끝난다.
이 마지막 문장은 수많은 황금빛 'yes'로 돋을새김된 액자로 조이스센터에 걸려 있었다. 가톨릭 성당에 가면 예수의 탄생에서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과정을 14개의 형상으로 꾸려 기도를 하거니와, 조이스센터에서는 율리시스의 18장을 각각 액자에 작품으로 형상화 해 관람객들이 돌아보도록 전시해 놓았다. 어떤 연구자는 '블룸'을 더블린의 보통 시민을 대변하는 '예수'와 비견하기도 하거니와 마지막에 이르러 만나는 황금빛 '예스'는 환희에 찬 문학적 감동을 선사하기에 족하다.
……he asked me would I yes to say yes my mountain flower and first I put my arms around him yes and drew him down to me so he could feel my breasts all perfume yes and his heart was going like mad and yes I said yes I will Yes. / ……그이는 내게 요구했어 내가 그러세요라고 말하겠는가라고 그래요 나의 야산의 꽃이여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나의 팔로 그이의 몸을 감았지 그리고 그이를 나에게 끌어당겼어 그이가 온갖 향내를 풍기는 나의 앞가슴을 감촉할 수 있도록 그래 그러자 그이의 심장이 미칠 듯이 팔딱거렸어 그리하여 그렇지 나는 그러세요 하고 말했어 그렇게 하겠어요 네. _김종건 역
블룸스데이에 앞서 '율리시스'의 첫 장이 시작되는 샌디코즈 해변의 마텔로 탑, 지금은 조이스타워 뮤지엄으로 꾸며진 곳을 찾았다. 마텔로 타워는 나폴레옹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1804년 더블린 주변에 건설된 26개 타워 시리즈 중 하나다. 1904년 민간에게 임대했는데, 이 해 9월 조이스가 친구의 초대를 받아 이 탑에서 6일간 체류하다 떠난 경험을 바탕으로 '율리시스' 첫 장면을 이곳으로부터 시작한다.
당당하고 통통한 벅 멀리건이 계단 꼭대기에서 나오는데, 손에 든 비누거품 사발에는 거울과 면도칼이 열십자 꼴로 놓여 있었다. 포근한 아침 바람에 허리띠가 풀린 노란 실내복이 그의 몸 뒤로 헐겁게 걸쳐져 있었다. 그는 사발을 높이 치켜들고 읊조렸다. _ '율리시스1', 문학동네, 이종일 옮김
이 첫 장면은 조이스 타워 꼭대기에서 행사 때 재현되거니와, 이 날은 안내를 맡은 자원봉사자 데이비드 도일 씨가 방문객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탑 꼭대기 너머로는 블룸이 아름다운 처녀 '거티'를 보며 불꽃놀이의 관능을 스스로 누렸던 샌디코브 해안이 펼쳐졌다. 바다 저편에는 블룸과 몰리가 철쭉 꽃밭에 파묻혀 사랑을 나누었던 '호스' 언덕이 실루엣으로 누워 있다.
율리시스의 자유로우면서도 관능적이고 강인한 캐릭터인'몰리'는 조이스의 아내 노라 바나클(1884~1951)을 모델로 삼았다. 실제로 자유분방하지만 끝까지 조이스 곁을 지켰고, 소설을 쓸 수 있도록 환경을 지켜냈던 아내 노라는 조이스의 다른 작품들에도 닮은꼴로 등장한다.
'더블린 사람들' 연작 중 '죽은자'에서 조이스는 아내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첫사랑을 떠올리며 눈물 짓는 모습에서 질투를 느끼다가, 잠든 그녀를 내려다보며 반성과 연민과 애정으로 돌아서는 대목을 썼다. 노라의 반영인 셈이다. 실제로 노라는 애정 표현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조이스의 친구와의 관계도 의심할 만한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조이스는 끝까지 아내의 사랑을 믿었다. 노라는 조이스와 내내 동거하다가 뒤늦게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조이스 사후 10년을 더 살다가 떠났다.
노라는 아일랜드 서부 항구도시 골웨이에서 더블린으로 올라와 핀즈호텔에서 일하다 첫눈에 반한 조이스의 청을 받아들여 1904년 6월 16일 첫 데이트를 한다. 조이스는 이 날 하루를 세기의 명편으로 남은 '율리시스'의 배경으로 삼았고, 이로써 이들 남녀의 만남은 백년을 넘어서도 많은 이들의 축제일로 기념하게 된 셈이다. 모허 절벽에 가기 위해 골웨이에 들렀을 때 골목길 벽화에서 조이스와 노라의 얼굴을 만난 건, 조이스센터에서 '율리시스' 마지막 문장들을 꾸며 놓은 액자를 접한 것과 흡사한 떨림이었다. 그것은 미세한 긍정의 파동이었다. Yes!
방 안의 공기가 어깨를 으스스하게 했다. 조심조심 이불 밑으로 몸을 펴고 아내 곁에 누웠다. 하나씩 하나씩 사람들은 그림자가 되어 사라진다. ...관용의 눈물이 가브리엘의 눈에 가득 어리었다. 그는 아직껏 어떠한 여자에 대해서도 그 자신 이런 감정을 가져본 일이 없었으나, 그는 이런 감정이야말로 사랑에 틀림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_ '더블린 사람들' 중 '사자(死者)'(문예 세계문학선, 김병철 옮김)
KPI뉴스 / 더블린= 글·사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