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신한철 "부조화 사회 '구(球)'처럼 조화와 공존 품길"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4-12-31 18:02:45

수십 년 작업에 일신한 국내외 '구(球) 원조'
전쟁기념관, 27m 높이 6.25 상징 조형물' 제작 작가
다양한 구 군집 작업 통해 '조화와 공존' 역설

설치미술가이자 조각가 신한철 선생은 '구(球)'를 주제로 수십 년째 숱한 작품을 내고 있다. 구는 각지지 않아 '노여움'과 '맞섬'이 없으며 '평온'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에 그의 작품들을 소환하는 건 현재 우리가 겪는 정치사회적 대혼란 때문이다. 신 선생의 작품은 그 '부조화'를 교정하는 지혜와 미덕을 품은 듯하다.


동장군이 마을 어귀를 맴돌던 12월 어느날 경기도 이천 그의 작업실. 마른 장작을 삼킨 난로는 연신 열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작업실 바닥과 벽 천정에 놓이거나 매달린 그의 스테인리스 '구' 작품들은 낯설지가 않았다. 어찌 보면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작품을 연상케 했다. 특히 이태원 삼성 리움 미술관 정원에 설치된 카푸어의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 공, 마치 수십 개의 포도 알갱이처럼 세워진 모습은 신 선생 작품과 닮아 있다. 모양도 그렇지만 스테인리스라는 재료까지 동일하다. 하지만 사실 이런 방식은 신 선생이 카푸어보다 훨씬 일찍 시작했다. 말하자면 그가 '원조'인 셈이다.
 

▲ 신한철의 구 작업 시리즈 [작가제공]

 

동시대 미술은 모방과 차용의 치열한 경쟁이란 점에서 누가 누구를 닮았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차용'조차 예술의 한 형태이니, 누구를 탓하거나 '원조'라는 것만 내세울 수도 없다. 그럼에도 신 선생의 작품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는 그대로 자기만의 '구' 세계를 견고히 세워왔기 때문이다.

'구'를 향한 선생의 탐닉은 대학을 졸업하던 무렵부터라고 봐야 한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서 수학한 선생은 당시를 회상하며 "동기들이 조형적으로 풀어낸 조각으로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모두 잘나가고 있는데, 난 여전히 감을 못 잡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선생은 방식은 몰라도 당시부터 '생명의 에너지'라는 화두를 붙잡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해답은 구(원형) 완전체에서 찾았다.

 

▲ 인터뷰하고 있는 신한철 선생 [제이슨 임]

 

그때부터 그는 집요하게 '구'라는 형식과 목적을 향해 내달렸다. 처음에 그저 정확한 구를 표현하는데만 매달렸다고 한다. 더 반듯하게 구를 만드는 것이 사명처럼 느껴졌다. 이런 구를 만들자니 꽤 많은 품과 시간이 들었고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마치 '도 닦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그의 이런 선택엔 낮은 구릉지가 많은 충청도 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영향도 있다. 어린 시절 보아온 두루뭉술한 자연환경은 애초 '성내거나 부딪히지 않는' 그의 본성을 만들었을 것이다.

"동양에서 원이나 구는 태극, 우주를 상징하죠. 여러 구가 내외적으로 어울리는 소통을 생각했어요. 구는 대비되거나 도전적이지도 않죠."

▲ 신한철 선생의 작업실 현장[제이슨 임]

 

그는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구 작업을 시작했다. 시기로 보면 국내외를 두루 살펴도 구를 활용한 설치미술은 그가 원조인 셈이다. "당시엔 이런 방식의 작품에 관객들이 도통 관심이 없었죠. 그래도 계속 수련한다는 맘으로 매달렸어요." 그도 구를 향한 집념을 놓지 않기 위해 다른 작가들처럼 힘든 시기엔 강사 등으로 나서며 생활전선에서 싸워야 했다.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왔다. 국내 메이저 갤러리 가운데 하나인 갤러리 현대가 IMF 시절인데도 그를 픽업한 것이다. '다른 작가와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때부터 관객들이 제 작품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요. 물론 저도 확신이 생기며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죠. 그 가운데서 관계를 발견하게 됐어요. 다양하게 놓인 구에서 서로의 관계를 보기 시작한 거죠." 형식적인 구에서 담론을 담은 구로 발전한 것이다.

그가 쓰는 주된 재료는 스테인리스다. 반짝이니 주목도가 높고 동시에 주변을 거울처럼 비추니 여간 좋은 재료가 아닐 수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구 안이 비어 있으니 기존 조각이 가지는 '힘이나 무게' 같은 알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더러 멀리서 보면 풍선 같이 느껴지니 관객에겐 '친근감'으로 다가서기 좋았다.

▲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설치된 '6·25 50주년 상징 조형물' 신한철 작 [전쟁기념관]

 

그를 두고 '구 작가'라고 부르지만, 주목할 다른 방식의 역작이 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설치된 '6·25 50주년 상징 조형물'이다. 쟁쟁한 선배 조각가들을 모두 제치고 선정된 그는 3년간 영혼마저 갈아 넣으며 세상의 역작을 쏟아냈다. 예산만 80억 원에 달했으니 대작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의 작품은 2003년 전쟁기념관 입구 중앙에 자리 잡았다. 작품은 '청동검과 생명수 나무'를 제목으로 높이가 27m에 달한다. 그때에도 '신한철의 구'는 하늘 높이 솟은 청동검의 받침으로 쓰였는데, 그는 "유구한 역사와 민족의 번성을 기원하는 정화수를 형상화했다"고 했다.

그의 조각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가운데 파격이 있다. 세워져야 할 조각이 하늘에 매달려 있다. '세운다'를 '뒤집는다'로 단순하게 치환했지만 이런 변화는 사실 전통을 깨는 일이니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다. 한때 그는 '구=신한철'로 불렸으니 자부심을 있을 터다. 포스트 모던시대엔 '카피'도 하나의 예술로 불리니 그저 '원조'라는 자부심에 멈출 순 없다. 그의 최근 작품들이 여러 구가 서로 얼굴을 맞대며 증식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하늘에 매달린 이유다. 물론 같은 형태의 구도 없다. 크고 작고 서로 다른 크기로 '증식'한 작품은 마치 미지의 생명인 듯 꿈틀댄다.

▲ 신한철 작 [제이슨 임]

 

하지만 작품이 주는 뚜렷한 화두는 개별 구도 각자 우주이자 생명이며 서로 어우러져 있는 군집 된 구도 하나의 우주이자 생명으로 읽힌다. 서로 거울처럼 몸을 비추며 서로를 품는 형식은 '따로 하나가 없고 모두가 하나'라는 일견 동양사상에 귀의하는 듯하다.

푸른 용으로 불리던 갑진년(甲辰年)이 막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수십여 년 만에 감행된 '계엄령'에 선진국 대한민국은 한순간 후진국으로 전락할 뻔했으며 무안공항에서 벌어진 대참사는 다시 국민 모두를 큰 슬픔에 빠지게 했다.

구처럼 둥글지 못했던 갑진년 한 해. 올해 신 선생 작품들의 울림은 작지 않다. 천장에 매달린 그의 군집한 구들은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우리 사회에 '조화와 공존'이란 화두를 던지는 듯하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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