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신한철의 '구(球)체 소나타'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5-05-28 11:12:41

"구가 선보이는 다양한 조화와 공존 통해 완전한 공동체 꿈꿔"
개인전 'MICRO-COSMOS' 서울 종로구 아트파크서 6월22일까지

▲ 지난 25일 신한철 조각가의 개인전 'MICRO-COSMOS'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아트파크(ARTPARK) 갤러리에서 한 관객이 천장에 매달린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제이슨 임]

 

'구의 마술사' 신한철 조각가의 개인전 'MICRO-COSMOS'가 서울 종로구 아트파크(ARTPARK)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25일 전시관에 들어서자 바닥을 향해 끈으로 매달린 640여 구체가 이방인을 맞이했다. 전시관은 두 개 층으로 꾸며졌다. 각기 공간엔 물방울을 닮은 여러 구체가 서로 어우러져 벽에 매달려 있거나 얇은 지지대 위에 올라 마치 하늘로 달아나는 풍선을 잡아놓은 듯했다. 벽에 걸린 큰 원형틀엔 여러 개의 반구가 어우러진 조각도 마치 시계처럼 걸려 있었다.

▲ 벽에 걸린 신한철 작가의 다양한 구체 작품들. [제이슨 임]

 

신한철 작가는 "중력을 좀 벗어나고 싶었다. 구는 세상이다. 이것들은 모여 공존하고 같이 어우러진다. 사실 오랜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구는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포도송이처럼 모인 구체에 반사된 관객은 일견 다중 우주에 사는 자신을 만나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옆에 붙어 있는 구에 비친 모습은 왜곡된 무한 반복 형상이라 여러 생각을 들게 했다. 작가는 "구만 있다면 별 의미가 없겠죠. 다양한 크기와 형태는 미적 재현뿐만 아니라 관계성을 드러내죠"라고 했다. 둥근 형태에 세상을 담아내고 거기에 비친 세상을 다시 드러내며 감성과 이성의 공존을 보여준다는 얘기다. 

 

그는 30여 년간 구(Sphere)를 모티브로 작업해 온 달인이다. 구체 작품을 보면 '아니쉬 카푸어' 같은 해외 작가를 떠올리지만 사실 국내외를 통틀어 첫 실타래는 그가 풀었다. 그는 구를 통해 거대한 우주, 혹은 생명체를 만들고 있다. 이런 구는 서로 증식하며 하나의 큰 구조를 만든다. 외부의 타자가 자기를 응시하면 구는 여러 방식으로 그것을 반사하고 왜곡한다. 이런 방식은 타자인 관객에게 여러 철학적 상상을 하게 한다. 그중 핵심은 '관계'다. 개별의 구는 실존이지만 무더기로 어우러진 구들은 또 하나의 실존이다. 불교의 연기(緣起)와 맥이 닿는 부분이다. 연기란 모든 존재와 현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의존하고 조건지어져 생겨난다는 불교 근본 사상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없어진다는 원리다.

 

▲ 다중 우주처럼 관객을 비추는 작품. [제이슨 임]

 

이야기는 더 확대될 수 있다. 그런 실존은 서로 인식해야 가능하다. 마치 뚜껑을 열어 관측하기 전까지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서로 맞대지 않으면 쌍방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결국, 그의 구체들은 그의 설명이 없더라도 완전체인 '구'라는 매개를 통해 관객에게 본원적인 삶과 관계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보통 그의 작품을 보면 "중력을 거스르는 비눗방울 거품처럼 공중에 떠오른다. 경쾌함과 긴장감을 자아내며, 조각이 지닌 매스(mass)와 대비되는 새로운 감각을 일깨운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입구에 매달린 구체들은 오히려 중력을 거스르려는 것보다는 무극(無極)의 구인 지구를 향해 달려드는 작은 구들을 인위적으로 천장에 붙잡아 놓은 듯하다. 이런 해석은 완전체인 지구와 그를 추종하는 천장에 매달린 구체 쌍방을 이항대립적 해석인 완전과 불안전의 형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작은 구들도 '차이와 반복'을 통해 개별적 존재가치를 지닌다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철학적 메시지처럼 스스로 존립하면 무한한 가치가 있다는 얘기로 읽힌다. 말하자면 이 시대를 사는 개별적 인간 모두 각각의 구처럼 스스로 가치 있으니 스스로 삶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 관객의 모습을 반전시키는 신작. [제이슨 임]

 

전시의 제목에서 드러나는 표면적인 기획 의도는 "크고 작은 구가 모여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 다양한 갈등과 균열을 넘어, 조화와 공존 가능한 공동체를 꿈꾼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대에 처음 새롭게 등장한 그의 작품을 보면 또 다른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벽에 걸린 금빛을 띤 큰 원형 작품엔 수십 개의 볼록과 오목이 반구가 있다. 세상에 처음 소개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 반구들은 관람자의 모습을 반사한다. 볼록은 관람자를 바로 비추지만, 오목은 거꾸로 비춘다. 기존의 작품들은 관객의 모습이 조금 왜곡하더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처럼 비추지만 오목거울은 사진기 안쪽에 맺힌 상처럼 상하를 반전한다. 이런 의도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 작가는 "그렇네요"라며 웃기만 한다. 나중엔 아예 묵묵부답이다. 현대 미술은 재현을 목적으로 삼지 않은 지 오래됐으니 해석은 보는 이의 몫이란 얘기일 터다.

▲ 2층 전시관에 마련된 신한철 작가의 작품들. [제이슨 임]

 

이번 전시는 그가 불현듯 숨겨놓았을, 그가 설명하지 않은 여러 장치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관객도 작품에 반사돼 작품의 일부가 됐으니 작가 못지않게 해석에 있어 제법 권한과 지분이 있는 셈이다. 

 

▲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한철 작가. [제이슨 임]

 

이번 전시에선 그동안 많은 이들의 보편적 평은 접어두는 게 좋다. 그가 30여 년 빚은 구체가 만들어 내는 '소나타'엔 더 끄집어낼 여러 이야기와 철학적 사유가 흐르고 있다.

신 작가는 올 하반기 미국 마이애미로 향한다고 한다. 그의 구가 바야흐로 둥근 지구에 퍼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그의 구에 비친 벽안의 이방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이번 전시는 6월 22일까지 이어진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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