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지친 이들이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라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5-07-03 10:42:39

조선·일본·오세아니아로 떠나는 삼전삼색(三展三色) 예술여행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특보가 발효됐다. 기상청은 당분간 체감온도가 최고 33도를 웃돈다고 한다. 해수욕장이나 계곡물에 첨벙 몸이라도 던지고 싶을 때다. 사실 이런 땐, 더위를 피하며 조용한 실내에서 예술과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면 여러모로 일석이조다. 그런 점에선 올해 상반기에만 국내외 관객 270만 명이 다녀간 국립중앙박물관은 단연 최고의 피서지다. 많은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단지 유물 감상에만 있지 않다. 세계 유수의 문화와 예술과 대면하며 지친 삶에 한 점 쉼표를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수준 높은 특별전들이 진행중이기도 하다. 세 특별전을 소개한다.

미술로 읽는 새로운 시대 '조선 건국기'


첫 번째 전시는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이다. 이번 전시는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후부터 16세기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시대에 펼쳐진 미술을 집중 조명하는 대형 기획전이다. 총 400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전시품은 단순한 유물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미술사적 흐름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이전 개관 20주년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에 전시된 공납 자기들. [국립중앙박물관]

 

당시 조선은 새로운 국가의 정치이념으로 유교를 세상의 근간으로 삼았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국가 체계를 확립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 시기의 미술 역시 정치와 철학, 종교와 미학이 복합적으로 융합된 결과물이다. 전시에 등장한 분청사기와 백자 같은 도자기는 보편적인 조선의 이상적인 미적 기준을 반영한다. 먹의 농담으로 사유의 깊이를 표현한 사대부들의 '수묵산수화'는 당시 글 꽤나 읽은 선비들이 가슴에 품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살펴볼 수 있다. 또 숭유억불 정책에도 여전히 민중과 엘리트 계층 모두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로, 금빛 찬란한 불화와 불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지배계층의 의도와는 별개로 여전히 불교가 조선에서도 큰 정신적 지분이 있음을 확인하는 대목이다.

 

이번 전시엔 당시 명불허전의 여러 작품들이 전시장을 빼곡이 채우고 있다. 그 가운데 꼭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 가운데 하나는 '사시팔경도'와 같은 국보급 유물들이다. 사시팔경도는 대체로 화첩(畫帖)이나 병풍에 이른 봄[早春], 늦은 봄[晩春], 이른 여름[初夏], 늦은 여름[晩夏], 이른 가을[初秋], 늦은 가을[晩秋], 이른 겨울[初冬], 늦은 겨울[晩冬]의 여덟 장면을 그린 걸 말한다. 조선 시대엔 이런 류의 그림이 일관되게 유행했다. 그 가운데 제일은 전시 무대에 오른 안견의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조선미술의 탄생'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전시는  박물관 내 특별전시실 1층에서 8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전시 중간인 7월 21일과 8월 4일에는 일부 전시품 교체를 위해 휴관한다.


▲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에 출품된 작품. [국립중앙박물관]

 

네 가지 감성으로 읽는 '일본의 미'


두 번째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쿄국립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이다. 이 전시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양국의 문화 교류 성과를 바탕으로 마련됐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일본 고미술품들이 대거 한국을 찾았다. 전시엔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한 주요 고미술품 62건 등이 무대에 오른다. 

전시는 '화려함(飾り)', '절제된 미(反飾り)', '감동(あはれ)', '유희성(遊び)'이라는 네 가지 감성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각각의 테마는 일본인의 미적 세계와 일상 속 사유를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도자기, 회화, 칠기, 직물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된 일본미술품은 시각적인 즐거움뿐 아니라 그동안 터부시했던 일본미술의 외형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일본인의 '정신성과 미의식'을 조망할 특별한 기회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전시는 8월 10일까지 박물관 내 상설전시관 3층 306호에서 무료로 진행된다.

▲ 카누장식 [Sandrine Expilly]

 

태평양의 신성한 바다, 오세아니아로 떠나는 예술여행


세 번째 전시는 '마나 모아나–신성한 바다의 예술, 오세아니아'다. 전시는 프랑스 '케브랑리-자크시라크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국제 교류 전시이기 때문에 한편으론 단편적인 전시로 볼 수 있지만 거대한 '오세아니아' 문화권을 탐구할 기회한 점에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전시 타이틀에 등장하는 '마나'는 만물에 깃든 신성한 힘을, '모아나'는 끝없는 바다를 뜻한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오세아니아인들은 바다를 단순한 공간이 아닌 삶의 기반, 조상과의 연결, 공동체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전시에는 18~20세기 사이 제작된 카누, 가면, 조각상, 악기, 장신구, 직물 등 오세아니아 전통 예술품 180여 점과 현대 작가들의 재해석한 여러 작품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입체적 구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관객은 작품 속에서 인간과 자연,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오세아니아 특유의 철학과 미학적 담론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섬과 섬 사이를 항해하며 쌓아온 이들의 지식과 예술의 흔적은 분열의 시대를 사는 현대 세계인에게 '공존'이라는 큰 화두를 다시 상기시키는 계기가 된다. 전시 공간은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듯한 동선으로 구성돼 관람 자체가 하나의 여행처럼 느껴질 수 있다. 전시는 9월 14일까지 특별전시실 2에서 이어진다. 수요일과 토요일은 야간 관람도 가능하다.

세 개의 특별 전시는 단지 시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무엇을 느끼고 사유해야 하는가'에 대한 심오한 담론을 던지고 있다.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은 단순한 피서지가 아니라 '정신의 온도'를 낮춰주는 공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엔 지난해 418만 명의 관람객 수를 기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제 세계 유수의 루브르, 바티칸, 대영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런 국립중앙박물관이 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특별한 유혹을 하고 있다. 그곳엔 지금, 예술과 힐링이 흐르고 있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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