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터렐, '내 안의 빛'을 찾아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5-06-12 10:56:09

개인전 'The Returns', 17년만에 '페이스갤러리'서 열려
특별 제작 신작 '웨지워크(Wedgework)' 처음 공개
"빛을 통해 인식의 전환 경험하길 바라"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82)은 60여 년 빛을 소재로 독특한 예술세계를 펼쳐온 거장이다. 어린 시절 "네 안의 빛을 찾아라"는 할머니 말씀이 그를 이끌었다. 이제 팔순이 훌쩍 넘은 그가 노구를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


이번 내한은 2008년 서울 토탈미술관 등 3곳에서 동시에 열렸던 개인전 이후 17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 때문이다. 타이틀은 'The Returns'다. 전시는 14일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 '페이스갤러리(PACE Gallery)' 시작한다. 1~3층 전관에서 펼쳐진다. 

 

이번 전시엔 특별 제작된 '웨지워크(Wedgework)'를 포함, 그의 대표적인 설치 작품 5점이 관객을 맞는다. 그 외에도 그가 오랜 시간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게 구현하고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 '로든 크레이터(Roden Crater)'의 구축 과정을 담은 사진, 판화, 조각 등 그가 빛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한 총 25여 점도 무대에 오른다.
 

▲ 한 관객이 제임스 터렐의 개인전을 관람하고 있다. [제이슨 임]

 

개막에 앞서 1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사람들은 다른 것을 드러내는 용도로 빛을 사용하지만 나는 빛 자체를 드러내고 싶었다. 빛과 공간을 사용해 인간의 지각(인지)을 바꾸는 것에 큰 관심을 두고 작업해 왔다"고 했다. 사실 국내엔 그의 국제적 명성 때문이 아니라도 그를 추종하는 이들이 이미 부지기수다.천정에 뚫린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s, 1974)', 시각적 착시와 공간 왜곡을 통해 관람자에게 무한한 공간과 깊이감을 주는 '간츠펠트(Ganzfelds, 1976)' 등 그의 대표작들은 이미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에서 상설 전시돼 수많은 관객에게 '어필'한 터다.

▲ '제임스 터렐'이 11일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제이슨 임]

 

제임스 터렐은 1960~70년대 '빛과 공간(Light and Space)' 운동을 대표하는 작가다.이 운동은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시작한 미술 흐름인데 빛과 공간, 지각의 경험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조형 방식을 탈피한 것이 특징이다. 자연광, 인공조명, 투명한 소재 등을 활용해 관람자가 직접 공간을 체험하도록 유도해 감각적이고 몰입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그런 그의 미술운동은 향후 세계 미술계의 다양한 설치미술과 미디어아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뿐 아니라 이제 미술사의 한 획이 된 '미니멀리즘'이나 '개념미술'에 연결고리를 제공했다.

▲ After Effect, 2022, LED lights, Site specific dimensions, Runtime: 79 minutes, Photo by Kyle Knodell [Pace Gallery]

 

제임스는 "빛은 사물을 비추기도 하지만 사물을 가리기도 한다"며 빛이 가지는 가치적 양면성을 설파하면서도 "빛은 사물성(thingness)이 있다"고 했다. 왜 그가 빛을 하나의 작품 소재로 여겨왔는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그는 초창기부터 소재라는 면에서 '빛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고심이 많았다고 했다. "(60여 년 전) 처음엔 네온 조명과 전기 저항 소자로 시작했다. 이젠 발광다이오드(LED)와 컴퓨터를 통해 그런 것들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으니 오래 살아 좋은 기회를 얻게 됐다"며 웃기도 했다.

▲ After Effect, 2022, LED lights, Site specific dimensions, Runtime: 79 minutes, Photo by Kyle Knodell [Pace Gallery]

 

그의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작품이 주는 명상적 태도' 때문이다. 대학에서 인지심리학을 공부한 이력이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의 빛의 향연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조물주의 그 무엇을 상상하게 한다. 그런 창조물을 관찰하는 관객은 필연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예기치 못한 '명상'에 빠져들기도 한다. 3층 전시관의 경우 암흑의 공간에 들어선 관객은 사각 테두리로 쏘아진 빛에 잠시 울렁거림을 느끼지만 사각틀 안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에 묘하게 빠져들며 '정지된 시간'을 느끼게 된다. 사실 모두 빛이 만든 환영일 뿐이다. 잠시 명상이 지나치면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눈치 빠른 관객들은 '홀로그램 우주론' 마저 떠올리며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런 허구이거나 환영이 아닐까'하는 막연한 철학적 의구심을 가지기도 한다. 

 

터렐의 설명은 간단하다. "작품 안에서 느끼는 혼란을 통해 우리가 어떤 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는지를 깨닫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스스로 현실을 어떻게 구축하는지를 배우면 된다. 그런 점에서 인식이 중요하다. 작품 안에서 더 머무르면 더 긍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작품이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의 존재를 조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신작 '웨지워크(Wedgeworks)'다. 이 작품은 20분간 여러 색의 빛으로 변하며 교차 투사된다. 평면의 빛이 공간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 확장하는 환영을 일으켜 몰입감을 배가한다.
 

▲ After Effect, 2022, LED lights, Site specific dimensions, Runtime: 79 minutes, Photo by Kyle Knodell [Pace Gallery]

 

그는 50년째 미국 애리조나 북부의 40만 년 된 화산 분화구에 구축하고 있는 '로든 크레이터(Roden Crater)'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이 작업은 분화구 내에 24개 관측 공간과 6개의 터널을 지어 맨눈으로 천체를 관측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언제쯤 마무리되느냐는 질문엔 "여기에 있는 분 중에 박사학위를 다 마치지 못한 분이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은 나에겐 마치 그런 것과도 같다"고 했다. 


그는 한국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금 한국의 문화는 어쩌면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로 부상하고 있다. K팝과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까지 모두 경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전시는 9월 27일까지 석 달 넘게 이어진다. 관람은 무료지만 네이버 예약 후 방문해야 한다. 작품 감상에 몰입하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관객의 사진 촬영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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