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이별도 슬픔도 영롱하게, 휘파람새처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07-06 21:01:53
8번째 시집 '두루미의 잠' 펴낸 최두석 시인
꽃과 새들 찾아 눈 맞추며 시의 언어로 살려
보다 가까이 접근해 길어낸 달라진 폭과 깊이
"생태도감의 딱딱한 지식, 생명의 말로 전달"
얼어붙은 임진강에서/ 잠자는 재두루미들을 본다/ 불침번을 제외하곤/ 모두 깃 속에 머리를 묻고/ 웅크린 채 잠자는 재두루미들// 이윽고 날이 밝자/ 목을 세우고 깃을 털고/ 울음소리로 간밤의 안부를 묻더니/ 몇 마리씩 무리에서 벗어나 자세를 잡고서는/ 빙판을 차고 날아오른다// 잠은 떼로 모여 자고/ 먹이터는 가족끼리 찾는 재두루미가/ 시차를 두고 차례로 날아오른다/ 어느새 이백여 마리의 재두루미가/ 감쪽같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_'임진강 재두루미' 부분

▲5년만에 새 시집을 펴낸 최두석 시인. 그는 "꽃 나무 풀 새 곤충들의 생생한 모습에서 활기를 얻는다"면서 "그들의 숨결과 맥박이 시의 호흡 속으로 나도 몰래 스며들기를 기원한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사위는 어둑신하다. 해는 떨어져 희미한 빛만 여울목을 비춘다. 그 얕은 물 위에서 잿빛 두루미들이 집단으로 서로 몸을 기댄 채 잠을 청한다. 시인은 그 모습을 강변 벼랑 위 나무 뒤에 숨어서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그 숨죽인 숨결로 시인은 저 시를 길어 올렸고, '다른 부족의 신성한 제의를 몰래 훔쳐본 토템 시대의 이교도처럼 마구 가슴이 뛰었다'고 시집 뒤에 썼다. 최두석 시인이 5년 만에 펴낸 8번째 시집 '두루미의 잠'(문학과지성사)이 그 시집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저 두루미들은 다리 하나는 들어서 깃 속에 숨긴 채 외다리로 잠을 청했다. 살얼음이 끼는 여울목에서 잘 때는 외다리를 교대로 짚어줘야 발이 얼어 죽는 수난을 피할 수 있는데, 잠깐 졸다가 방심하는 어린 새끼들도 있다. 그는 '한탄강이 쩡쩡 얼어붙는 겨울밤/ 여울목에 자리 잡은/ 두루미 가족의 잠자리 떠올리면/ 자꾸 눈이 시리고 발목도 시려온다'('두루미의 잠')고 썼다.

최두석 시인은 첫시집 '대꽃'(1984) 이래 '성에꽃'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꽃에게 길을 묻는다' '투구꽃' '숨살이꽃' 들을 펴내며 대체로 꽃을 매개로 생명들을 품어왔다. 동학농민들이 대꽃으로 묘사되고, 일터로 나가는 만원버스 유리창에 입김으로 그려진 '성에꽃'을 포착하는 '사람들 사이에 피는 꽃'을 보다가, 꽃이라는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흐름으로 나아갔다. 그가 천착해온 꽃들은 그들 나름의 모양과 속성과 생태를 시 속에 드러내며 말미에 시인의 각성과 느낌을 끌어내는 형태로 시집 속에 자욱하다. 이번 시집도 이러한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되, 꽃보다 새들이 더 많이 포진한 점이 눈에 띈다.


"그동안에는 사진을 찍지 않고 관찰만 하다가 이번 시집부터 카메라를 활용했어요. 꽃이나 생명이 있는 것들을 보는 것 자체에 집중하면서 그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카메라를 쓰지 않았거든요. 사람의 접근을 쉬 허용하지 않은 새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망원렌즈로 볼 수밖에 없고, 꽃등에가 가루받이 하는 걸 보려면 사진을 찍어야 하더라고요. 사진을 찍고 자세히 관찰하면서 개안했어요. 살아 있는 생명들을 만나는 폭과 깊이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펼쳐졌다고 할까요?"

서울 강서구 우장산공원 인근 카페에서 만난 시인은 꽃과 새를 찾아 떠돌며 길어낸 시의 역정을 찬찬히 말했다. 삼별초를 최후까지 고수한 '김통정'을 다룬 작품으로 등단해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시를 쓰다가, 꽃과 새 같은 여타 생명들로 관심을 옮기게 된 배경에는 인간중심주의의 폐해에 대한 각성이 자리잡고 있다.

"처음 작품을 시작할 때는 너무나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들이 많던 시절이다 보니 사람에 좀 더 집중했다면, 요즘 와서는 물론 사람에 대한 관심도 계속 가져야 되겠지만 인간중심주의의 한계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휴머니즘이라는 게 사실 인간 외의 생명들 입장에서 볼 때는 굉장히 공격적인 거죠. 가령 새만금 같은 경우도 보면 거기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었습니까. 아우슈비츠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끔찍한 대학살이 자행된 거죠."

▲최두석 시인이 촬영한 동강할미꽃. 석회암 절벽 틈새에 피어나는 희귀종이다. 

그는 "청명하면서도 따사로운 봄날/ 꽃이 피고 새가 울 때/ 부러 새삼스럽게/ 더 즐거운 일 찾지 않으리/ 더 긴한 일 만들지 않으리"라고 썼듯이 틈만 나면 산과 물가로 생명을 찾아 떠났다. 지난해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직한 뒤로는 이제 쉽게 떠날 수 있지만, 그 전에는 짧게 피는 꽃들과 제때 눈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뻐꾹채'는 '이름을 알고 잎을 보기까지/ 잎을 보고 꽃을 만나기까지/ 각각 십여 년이 걸린 풀꽃'이었다. 그는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늘 일이 먼저였고/ 동강을 굽어보며 백운산에 오른 건/ 드물게 한가한 날을 택해서였다// 몇 번이나 뻐꾹채는 나의 한가한 시간을 외면하였다'면서 '뻐꾹채는 나에게 벼랑을 등지고 피는 꽃/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자에게만/ 싱그러운 어여쁨을 보여주는 꽃'이라고 호명했다.

그대와 함께 갔던 산길 걷는데/ 휘파람새 우네/ 말할 수 없이 간절한 노래/ 휘파람으로 부른다는 듯이// 휘이 후이잇 호로로로 후잇// 추억을 되새기며 산길에서 서성이는데/ 휘파람새 우네/ 숨 막히게 차오르는 그리움/ 휘파람으로 날려보낸다는 듯이// 휘이 후이잇 호로로로 후잇// 새잎 돋는 나뭇가지에 앉아/ 휘파람새 우네/ 이별도 우중충하지 않게/ 슬픔도 영롱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듯이.

'휘파람새' 소리를 들으면서 '이별도 우중충하지 않게/ 슬픔도 영롱하게 다스'리는 자세에 대해 생각한다. '밤낮으로 만나 빚은 절경/ 절벽을 수놓는 꽃// 댐을 막아/ 절경을 수장시키려던 시절/ 때맞추어 세상에 나타나/ 아름다움의 가치를 증언한'강할미꽃을 만나서는 '강은 한없이 젊고/ 그리움은 늙지 않는다고' 찬탄한다. '머리를 깃 위에 얹고 잠자던 고니 한 쌍이/ 유유히 호수 가운데로 헤엄쳐 나아가더니/ 순간적으로 물 차며 뜀박질하다가/ 바람 타고 날아오른다// 고니 날아간 자취 더듬으며 나는 하릴없이/ 바다 건너로 떠나버린 여자를 회상한다' 겉으로 보이는 평화로움과는 달리 저 새들의 생존을 위한 노력은 여느 생명들과 다를 바 없을 터이다. '백로와 숭어'에서는 생존을 위한 약육강식의 생태계도 엄정하게 드러낸다.

▲노랑부리백로와 어린 숭어가 생존의 길목에서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최두석]

노랑부리백로가 어린 숭어를 찍어 올려/ 부리 속에 집어넣는다/ 백로는 숭어를 보고 숭어는 백로를 본다/ 백로와 숭어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마주친다// 백로의 눈도 또렷하고/ 숭어의 눈도 또렷하다/ 백로도 숭어도 오직 보는 일에만 집중한다/ 기쁨이나 두려움은 눈빛에 스며들 틈이 없다// 숭어의 꼬리지느러미는 물방울 튀기는데/ 백로의 부리는 완강하고/ 강물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유유히 흘러간다.

백로와 숭어뿐이랴. '잉어가 몸부림칠수록/ 발을 손처럼 쓰는/ 물수리의 발톱은 살 속 깊이 박힌다//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 속에도 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순간이 있다' 수리부엉이가 자주 머무는 소나무 아래에는 멧비둘기 깃털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밤이면 소리 없이 다가오는 죽음/ 죽음이 늘/ 멧비둘기들의 삶을 단련하고 있다'고 '공릉천 멧비둘기'를 호명했다.

새들뿐이랴. 독을 품은 미치광이풀을 두고는 '미치광이풀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작은 요정의 종소리를 들으며 묻는다/ 얼마만큼 독을 품고 세상을 살아야/ 남에 휘둘리거나 미치지 않고/ 오롯하게 자신만의 꽃 피울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과하게 쓰면 독이 되는 '투구꽃'을 보면서는 '세상에 어떤 사랑이 독이 되는지 생각한다'.

▲최두석 시인이 아직 호명하지 못한 생명들은 여전히 많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생태도감은 지식은 전달하지만 생명의 말과는 거리가 있죠. 생태적 특성이 시 속에서 살아날 수 있도록, 이를테면 동강할미꽃이 절벽에서 제대로 필어 살 수 있도록 시로 호명하는 거지요. 생태담론이라는 게 이즈음은 누구나 거론하다보니 지겨운 얘기가 되는 느낌도 있어요. 아주 새로운 담론을 내놓을 수도 없지만 중요한 얘기인 것은 사실이구요. 귀한 생명체들을 시의 언어로 품어보자는 생각인 거죠. 가능한 한 다양한 생명체들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언어로 보주고 싶습니다."

달롱개 엄나무 호박꽃 노루귀 열목어 마타리 구절초 찔레 쪽동백 사슴풍뎅이 동박새 처녀치마 불두화 금강초롱 풍뎅이 민들레 얼레지 마가목 망둥이 연어 고라니 사스레피나무 명이 후투티 괭이갈매기 황조롱이 직박구리 족도리풀 홀아비바람꽃 복수초 뻐꾹나리 물봉선 투구꽃 박달나무 가시연꽃 청띠제비나비 조팝꽃 며느리밥풀꽃 천남성 꽃무릇 곤줄박이 도마뱀 고니 도라지꽃 두메부추 솔나리 솜다리 탱자꽃 숨살이꽃 함박꽃 개별꽃 짚신나물 앉은부채 쥐똥나무 산수유 애호랑나비 뿔논병아리 장다리물떼새 물꿩 연령초 깽깽이풀……

그동안 시제로 삼은 생명들은 일일이 호명하기도 벅차지만, 아직 시의 언어로 살려내지 못한 생명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시인은 "그것들을 언어 속에서 살아있게 하는 게 내 나름의 문학적 소명"이라며 "다리에 힘이 남아 움직일 수 있는 한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바라는 다음 생.

만약에 몸이 죽고 넋은 남아/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면/ 새가 되고 싶다// 흰 배와 검은 날개가 선명하고/ 부리와 눈이 붉게 빛나는/ 유부도 검은머리물떼새// 목도 짧고 다리도 짧아/ 웅크린 자세로 뒤뚱뒤뚱 걷는/ 갯마을 어부 같은 새// 갯바위에서 굴을 찍어먹거나/ 갯벌에서 동죽을 꺼내먹으며/ 물때에 맞춰 살면서// 봄이면 마음에 드는 짝과 함께/ 서해 무인도로 나가/ 바위틈에 알 낳아 품고 싶다// 가을이면 유부도 갯벌에/ 잘 기른 새끼들 데리고 돌아와/ 휘파람 불며 함께 춤추고 싶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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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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