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윤정 대표, 세상에 '쿤스트코드'를 꽂다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 2023-05-25 20:44:44
"문화자본이야말로 국가 가치를 평가할 큰 잣대"
"배고픔이 능사 아냐…시대와 호흡해야 걸작 나와"
"한국적이고 독자적인 국제 페어 이끌고파"
당찬 이를 만났다. "노윤정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단출한 소개가 참신했다. 노윤정 대표는 10여 년 잡지 '미술과비평', 월간 '아트와이드'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언론인이지만 짬을 내 그가 선보인 수준 높은 전시는 업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짧지 않은 세월, 그는 미술계 다양한 현장에서 그렇게 그만의 가치를 발산하며 특별한 이력을 쌓아왔다.

그는 언론인이자 예술경영 최전선의 '전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가 내민 '쿤스트코드' 대표이사 명함은 그의 또 다른 자랑이자 도전이다. 1년 남짓 짧은 업력에도 유력한 여러 미술계 인사들은 쿤스트코드를 주목하고 있다. 향후 그의 팔색조 활동의 더 큰 진화가 그곳에서 이뤄질 거라 믿기 때문이다.

25일 UPI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화자본론'을 필두로 한국미술에 대한 노 대표의 혜안이 번득였다. 서사시같이 이어진 그의 예술경영론은 한국 미술계가 주목해야 할 화두이자 방향이었다.

▲ 문화기업 쿤스트코드 노윤정 대표가 25일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그가 처음 던진 화두는 아비투스(Habitus)에 기반한 '문화자본론'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저서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에서 '아비투스는 특정 사회나 문화에서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교육, 지식, 예술 등의 문화적 자원'이라고 정의했다. 노 대표는 "예술은 문화자본의 하나로서 국가, 기업, 개인의 사회적 위치와 성공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문화자본이야말로 국가나 기업, 개인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 가운데 하나"라고 역설했다.

그의 이야기는 아직 우리 예술계의 갈 길이 멀다는 얘기로 들린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는 한국의 선진국 대열 진입이나 BTS나 블랙핑크(BlackPink) 등 K-팝 성공신화에 환호하며 '용비어천가'를 남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뭔가 찜찜하고 개운치 않던 뒷맛은 이날 그의 말을 통해 해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사회학자 사라손튼(Sarah Thornton)의 저서 '걸작의 뒷모습'(Seven Days in the Art World)'을 인용해 "예술은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성, 인종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모든 영역은 예술에 영향을 끼친다"며 예술분야의 사회과학적 의미와 실존 당위성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이런 혜안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광이었다고 했다. 책 읽는 재미나 욕심에 더러는 책 여러 권을 펼쳐놓고 밤새 책장을 넘겼다고 한다. 단지 독서광이어서는 아니다. 그의 강점은 이런 외부 정보를 자신의 새로운 해석이나 주석으로 새롭게 정립하는 재주다. 그렇게 정립된 그의 학문적 자본은 그가 추구하는 예술경영의 기초가 됐다.

그는 현재 자신이 씨 뿌린 문화기업 '쿤스트코드'에 애정이 많다. 쿤스트코드가 자기 생각을 실행하고 구체화할 도구이자 수단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쿤스트는 독일어로 '예술'을 말하고 '코드'는 전원 플러그나 동일성을 말하는 코드로 중의적 의미로 쓰였다. 이런 네이밍은 예술과 세상을 연결하려는 그의 주체적 사고에서 발현됐다.

꿈도 당차다. 한국이 세계 미술계의 '헤게모니'를 쥘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현재의 이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그가 달려온 이유다. 그의 꿈은 돈키호테식 객기도 아닌 듯하다. 이어지는 촘촘한 계획들은 그런 꿈이 상상이 아니라 현실로 느끼게 했다. 그가 일반적인 갤러리 대표나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비평이나 늘어놓는 평론가에 안주하지 않는 이유일 터다.

그는 예술의 실존성에 대한 다양한 고찰이나 인문학적 사고와 방식론을 오랫동안 고심해왔다.

"기존 방식은 여러 면에서 시대에 맞지 않아요. 일반 대중을 비롯해 상위 1%까지 포괄할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기저엔 학문적인 배경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해요. 최근 몇 년간 여러 유명 해외아트페어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어요. 언젠가 저도 새로운 글로벌 아트페어를 한국에서 주도하고 싶어요. 물론 유명 브랜드와 손잡고 국내에 론칭 하는 더 쉬운 길도 있겠지만 저는 더 한국적이면서 독창적이고 국제적인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명품은 작은 차이에서 결정돼요. 무언가를 목적없이 뒤쫓기보다는 조금 늦더라도 무언가 새롭고 다른 것을 찾아야 해요. 이런 간극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건 명품이라 불릴 수 있을 거예요."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올까. 오랫동안 익은 학문 배경과 실무능력에서 나오는 듯했다. 그가 이런 꿈들을 실체화하려는 건 앞서 역설한 '문화자본론'에 대한 실체적 행동으로 읽혔다.

작지 않은 꿈과 혜안들. 그의 이야기는 내면의 거대한 차크라의 문이 열려 뿜어져 나오는 기운처럼 당찼다. 큰 꿈을 이야기하니 그를 모르는 이들은 더러 노 대표를 몽상가로 오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는 사실 주변에서 탁월한 실무능력을 인정받는 현장형 리더다. "계획과 결과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과정은 정말 재미있고 행복해요. 빈 도면이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느껴지는 포만감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희열이죠."

노 대표는 애초 불문학을 전공했다. 어른들은 영문학도가 되길 바랐지만 그를 홀린 예술 언어인 불어는 단숨에 그의 진로를 바꾸게 했다. 예술가 '끼'를 타고난 것일까. 이후 그는 미술에 대한 호기심과 갈증을 숙명여대 대학원과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Regensburg University)에서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며 해소하고, 꽃 몽우리 같던 꿈을 활짝 피울 수 있었다. 이런 숙련의 시간을 거쳐 미술비평가로, 편집장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거다.

그는 "예술성과 상품 코드는 반드시 연결돼야 한다"며 도발한다. 예술계 인사가 꺼내기 힘든 담론을 훅 던졌다. 공공연히 꺼내지 못하는, 하지만 현실적이고 단호한 주제였다. 그런데도 그의 설명은 이우환의 단색화처럼 단순명료했다.

"현대미술은 개념 미술로 대변돼요. 학문적인 것뿐만 아니라 예술, 철학 등 모든 인문학 요소가 융합돼 있다고 봐야 해요. 특히 시대정신은 작품성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예요. 과거처럼 배고파야 걸작이 나온다는 말은 이젠 걸맞지 않아요. 과거엔 수십 년 어딘가에 고립되거나 틀어박혀 작품 활동을 해도 시대 변화가 적으니 나중에라도 그들의 작품이나 유작이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니 세상과 등진 채로 작품 속에서 시대정신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배고픔은 이제 능사라 할 수도 없어요. 세상과 소통하며 피를 토하듯 시대정신을 녹여낸 작품이야말로 하나의 '상품코드'로 발현될 수 있어요."

같은 맥락에서 그는 최근의 미술계 흐름 중 하나인 '미디어콘텐츠'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세상이 변한 만큼 다양한 예술적 수단이나 방법이 작가나 관객에게 수용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해외 전시를 둘러보면 아주 기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나 방식에 놀라곤 하죠. 더러 저런 작품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우리 관객은 어떤 반응을 할까라는 생각을 해요. 때론 회의나 의구심이 들어 안타깝기도 해요."

노 대표는 잠시 회상에 젖었다. "어릴 때 생일이 다가오면 신고 싶은 신발을 그림장에 그리곤 했어요. 세상에 없는 나만의 신발. 그런데 생일이 되면 매번 상상은 현실이 되곤 했어요. 사실 저의 바람을 눈치챈 어머니가 저 몰래 신발을 맞춰 놓으신 거예요. 나중에 철들고야 알게 됐죠. 상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언제나 누군가의 노고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노 대표는 2018년 '한국잡지언론상'에서 기자 부문을 수상했으며 '국제문예'의 23기 미술평론부문에서 당선됐다. 최근에 그는 21세기 현대미술의 화두인 '미디어아트'와 '화인아트'의 특별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화두는 '어떻게 상호 소통할 것인가'이다.

폭풍처럼 몰아친 인터뷰가 끝날 무렵 문득 노 대표는 어떤 색일까, 상상했다.

단호한 그의 결심과 꿈은 화이트와 블랙처럼 명료했고, 열정으로 프로젝트 현장을 누비는 모습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파스텔 색조처럼 느껴졌다. 외모와 달리, 때론 강한 '여전사'처럼, 때론 '작은 거인'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기를 뿜고 있는 노 대표. 그가 이제 세상에 '쿤스트코드'를 꽂았다. 그의 캔버스와 우주엔 어떤 빛의 그림이 켜질까.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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