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의 인사이트] 전기 헤프게 쓰는 대한민국, 후손들 삶이 좀먹는다

임항 / 2023-05-24 13:59:28
전기 헤프게 쓰는 한국…전기요금 너무 싼 탓
전기낭비, 후손 생존권 야금야금 갉아먹는 짓
송전원가 반영, 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해야
전기요금도 인상 5개년 계획이 필요한 시대
"전기로 난방을 하는 것은 생수로 빨래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에너지 전문가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전기는 석탄, 등유나 LNG(액화천연가스) 등을 태워서 만드는 제2차 에너지이자 고급 에너지다.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60% 정도의 에너지가 대기 속으로 사라지고, 최종 에너지인 전기는 송전 과정에서도 5~30%가량 유실된다. 그 전기로 다시 난방을 한다면 당초 발전연료로 썼던 기름으로 난방을 직접 하는 것에 비해 비용대비 효율이 3분의 1 정도로 낮아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급에너지인 전기를 너무 헤프게 쓴다. 자기 집에서는 안 그러지만, 대중교통이나 다중이용시설에서는 '덥다'거나 '춥다'는 목소리가 큰 사람의 기준에 맞춰서 과잉냉방과 과잉난방이 이뤄진다. 시내버스와 지하철은 5월부터 때 이른 냉방 탓에 겉옷 한 벌을 더 입어야 할 정도로 춥다. 내가 전기료를 안 내는 공공시설만 그런 게 아니다. 여름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놓은 점포가 문을 열고 장사하는 한국 특유의 광경은 아무리 단속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콩(석탄, 석유)으로 만든 두부(전기) 값이 콩 값보다 더 싸기 때문에" 빚어지는 왜곡이다. 

▲ 서울 시내 한 건물의 전력량계. [뉴시스] 

이달 초 한전이 발간한 '2022년도 한전 편람'에 따르면 주거부문 전력요금의 경우 한국을 100으로 놓고 볼 때 일본 221, 영국 262, 미국 127로 한국이 가장 싸다. 산업부문도 일본 154, 영국 197, 미국 76으로 미국 다음으로 저렴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전기 낭비가 심하다. 국민 1인당 전기소비량은 2020년 기준 9826㎾h로 전 세계에서 캐나다, 미국에 이어 3위에 이르는데다 전세계적 추세와는 정반대로 조금씩 늘고 있다. 2021년에는 1만330㎾h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유럽인들이 겨울철 실내에서도 외투를 입고 지내고, 여름철 주택과 승용차에서도 어지간하면 냉방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당혹스럽다. 

그래서 더 본질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전기낭비를 통해서 우리 후손들의 생존권을 야금야금 좀먹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외면한다. 요금인상을 하더라도 지금처럼 당장의 물가고와 민생 차원의 걱정만 들먹일 일이 아니다. 후손들의 삶을 연관시켜서 전기요금에 더 적극적인 의미부여가 필요하다. 즉 우리 후손도 지구에서 자연의 혜택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우리가 당장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시그널(신호등)이 필요하다. 

예컨대 앞으로 5년간 매년 10%씩 인상, 또는 10년간 2년에 한차례 7%씩 인상과 같은 장기계획을 밝혀야 한다. 전기사용에는 비싼 페널티가 따른다는 시그널을 주는 게 중요하다. 이런 시그널은 국민들의 에너지 사용 습관을 바꾸기도 하겠지만, 특히 전기난방기기 관련업계를 위축시키고, 절전기술 관련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등 국가 전체의 탄소 배출량 절감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산업용 경부하요금과 농업용 전기요금처럼 원가보다 훨씬 더 싸게 파는 용도별 전기요금을 폐지하는 것이다. 특히 근년에는 전기를 특히 많이 쓰는 시간대 구분이 불분명해지는 등 경부하요금제의 취지 자체가 상당히 무색해졌다. 기업농들이 주로 쓰는 농업용 전기에 대한 큰 폭의 교차보조도 형평성 논란과 도덕적 해이가 너무 크다. 

다만 관련업계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이 역시 예컨대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장치산업은 그동안 자체공정의 폐열을 활용한 자가 발전시설을 갖추고, 전력 및 자동화 기술을 융합한 '공장에너지관리시스템(FEMS)'을 구축해 갈 수 있다. 농가에는 전기사용 실적에 따라 상한액 한도 내에서 현금이나 바우처로 에너지보조금을 당분간 주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  

산업용, 주택용, 일반(상업)용, 교육용, 농업용 등 용도별로 다른 전기요금체계를 전압을 기준으로 한 요금체계로 바꾸면 전체 요금인상 부담이 각 부문별로 크게 달라진다. 즉 산업용과 농업용은 큰 폭으로 오르고, 주택용과 일반용은 작은 폭으로 인상해도 된다. 이런 요금체계의 변화에 대해서는 정부의 상세한 대국민 설명이 필요하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지역별 차등요금의 도입이다. 우리나라는 발전소의 지역편중과 전기수요의 수도권 편중이 너무 심하다. 즉 화력발전소는 충청남도와 인천의 해안지역에, 원자력발전소는 동해안의 해안지역에 각각 몰려 있다. 시골 바닷가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 반도체업계에 보내기 위한 고압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이 지금도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자살하는 농민도 나왔다. 에너지 부문에서는 제3공화국의 개발독재체제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마침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지난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전기의 생산은 지방에서 하고, 소비는 수도권에서 이뤄지는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전기요금을 지역별로 다르게 책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2021년 기준 지역별 전력 자급률을 보면 인천이 242.99%로 가장 높고 충남 227.92%, 부산 197.54% 순이다. 반면 서울과 경기의 전력 자급률은 11.3%와 61.62%에 그친다. 그런데도 전기요금은 모두 같아 발전소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불만이 이어졌다.

경기 남부지역에 세계최대 규모로 조성하려고 하는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10GW규모의 신규 전력을 어디에서 확보하려고 할 것인지가 정부 의지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일반적 원전 10기의 발전용량에 해당되는 막대한 전기를 먼 곳의 기존 발전소에서 끌어다 쓸지, 그런 장거리 전기를 비싸게 만들어 자체 열병합 발전소와 수도권 서해안 해상풍력단지 건설 등을 통해 가까운 곳에서 해결토록 할 것인지. 

▲ 임항 사회전문기자

KPI뉴스 / 임항 사회전문기자 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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