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작별 앞에 선 모든 이에게 보내는 편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05-11 20:12:43
중편 세 편 모아 연작소설 '작별 곁에서' 펴낸 신경숙
비극 겪은 화가가 작별 앞에서 보내는 세 통의 편지
온전한 작별은 되새겨도 응어리가 남지 않는 상태
"굶주린 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인간의 선한 마음"
"기다려 주셨나봐요.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 몰랐어요."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펴낸 재작년 팔월, 아버지가 작고했다. 아버지를 표제로 내세운 장편소설이 나온 지 5개월 만에, 그것도 아버지의 변고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어머니 때문에 들른 고향집에서 아버지가 먼저 홀연히 떠났다. 최근 중편 세 편을 묶어 연작소설집 '작별 곁에서'(창비)를 낸 신경숙을 만났을 때, 그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갑작스런 감정의 북받침에 당혹스러워하며 "아직도 제대로 못 보내 드린 것 같다"고 말했다.

▲중편 연작소설을 펴낸 신경숙. 그는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일들로 삶의 방향이 틀어져버린 사람들의 작별이 희미하게 서로 연결된 채 여기 있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아버지가 떠나기 3년 전에는 그의 절친 시인이 독일에서 떠났다. 젊은 시절 독일로 떠나 그곳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며 사막에 가서 발굴을 하곤 하던 그 시인과의 작별은 그에게 큰 상실감을 안겼다. 깊은 애도의 마음을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는 소설에 담았다. 2013년 '봉인된 침묵'을 쓰고 난 후 공교롭게도 그때부터 새로운 희망과 만남보다는 상실로 이어지는 흐름이어서, 이 두 편에다 중편 '작별 곁에서'를 덧붙여 연작소설집을 꾸렸다.

-오늘은 서른의 절반, 열다섯까지만 세고 전화를 끊었다네. 밤 열시에 맞춰 전화했을 때 또 신호가 가지 않으면 아침 열시에 맞춰 다시 걸겠네. 이해하시게. 이러다가 어느 날엔가는 선생에게 전화를 걸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날이 내게도 오겠지. 그러지 않겠나?

현역 장교로 뉴욕 UN 한국본부에 외교관 발령을 받아 서울을 떠난 남편을 따라 갔다가 발이 묶여버린 여자. 남편이 대통령을 살해한 중앙정보부장의 비서실장 출신이어서 10.26 이후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그녀는 모국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낯선 땅에서 '난파선'처럼 흔들리는 신세가 된 그녀는 모국에서 다녀가는 이들을 각별하게 대했지만, 떠난 뒤로는 연락이 두절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뉴욕을 찾은 '봉인된 시간'의 화가에게도 노시인은 태풍 속에서 줄곧 전화를 걸지만 불통이다. 

-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다시 이메일을 썼다. 너에게 가고 싶다고 그냥 너의 곁에 가만히 있다가 오겠다고. …생각이 날 때마다 전화를 걸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신호음뿐이었다. 너의 곁에 나는 있고 싶다. 딸 곁에 있어주지 못한 나여서 더 너의 곁에 있고 싶어.

뉴욕에서 거는 전화는 받지 않던 이 화가가 작별인사를 보낸 독일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지만, 이번에는 그쪽이 받지 않는다. 처지가 바뀌었다. 전화를 걸고 메일을 보내며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는 상황이 '봉인된 시간'에 이어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에서도 반복된다. 구체적인 여건은 다르지만 서로의 상태를 모르는 조건에서 어느 한쪽이 애타게 문을 두드리는 점은 같다. 신경숙은 "그 사람 인생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서로를 찾는 순간들"을 그렇게 썼다고 했다.

배에 실린 것을 강이 알지 못하는 것은 자명하다. 자신이 떠받치는 긴밀한 관계이지만, 배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강이 다 알아낼 도리는 없다. 화가는 가장 소중한 존재인 딸을 잃었다. 그 비극 속에서 뉴욕의 시인에게 응답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며 스스로 상처를 다독이는 과정에 있었다. 독일의 친구는 어떤 사정이길래 만나겠다는 화가를 굳이 만류했을까. 오랜 절친이어서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쓰는 것은 어찌보면 '확인하는 과정'일지도 모르는데 소설을 쓰다 보니 정작 모르는 게 많았던 것 같다고, 그래서 시인에게 많이 미안한 마음이라고, 신경숙은 말했다.

"그 시인이 어느 도시에서 저에게 꽃씨를 줬어요. 그중 하나가 정말 찬란하게 꽃을 피웠는데, 그게 금잔화였어요. 작별 앞에 서기 전에는 무심히 봤는데, 시인이 떠나고 난 뒤에도 다시 피어난 그 꽃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릴 때가 있어요. 왔구나… 이름을 불러보고, 바람이 휙 지나가고, 그러죠. 그 작품을 쓰던 때와 달리 지금은 혼란스럽거나 그렇지 않고 가만히 생각하게 돼요. 내 시간 속에 먼저 간 사람의 어떤 시간도 같이 섞여 있는 것 같다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이 온전히 내 시간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신경숙은 "내가 지금 살아 있는 시간 속에는 이미 간 사람의 시간도 같이 섞여 있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신경숙은 "온전한 작별이란 그 작별을 생각했을 때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그 순간을 응시하게 되는 상태일 것"이라며 "남아 있는 응어리가 없는 것, 그래서 그 작별과 함께 살아가는 상태가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이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신경숙이 가장 소중한 존재의 메타포로 상정한 '딸'은 작가에게는 '작품'의 다른 이름일 터이다. 그는 그렇다고 말한 바 있거니와, 딸을 잃어버린 고통은 전작 '아버지에게 갔었어'에도 공통으로 활용된 모티프다. 인도 작가의 전시를 보면서 잔인한 신들과 대적하는 인물의 태도는 인상적이다. 작중 화가는 '신은 늘 굶주려 있는 것 같아, 잡아먹힌다 해도 앞으로 나아갈게'라고 친구에게 다짐한다.

-굶주린 신, 배고픈 신, 만족을 모르는 신들을 오늘은 담담히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슬며시 냉소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처음 봤을 때는 마음이 뒤집히고 몸은 급히 어딘가로 떨어져내리는 것 같게 하던 형상들이 오늘은 그저 한낱 내 얼굴 같았다. 모든 것이 잊히고 사라진 후에도 남는 것이 있을까? 그렇게 남은 것들은 무엇이 될까?

표제작인 '작별 곁에서'에도 화가가 제주에 내려가 그곳에서 딸을 상실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았다. 딸을 혼자 두고 제주에 내려와 작업을 하다가 딸의 사고를 들었던 것인데, 그때 작업하던 모든 것을 팽개치고 제주를 떠난 이래 칩거하다가 다시 그 공간으로 돌아와 새로운 걸음을 힘들게 떼는 과정이다. 이 회복을 도와주는 이가 제주의 공간을 빌려준 '유정'이라는 여성이다. 신경숙은 실제로 제주를 수시로 찾아 몸과 마음을 달래곤 했는데, 그곳에서 많은 '유정'들을 만났다고 했다.

"굶주린 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거는 인간의 아주 선한 마음이거나, 인간이 지니고 있는 헤아릴 수 없는 그 감동적인 순간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 예상하지 못하는 어떤 순간순간들을 인간은 발현해내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굶주린 신에게는 그게 가장 두려운 거 아닐까 생각했어요. 자기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서 사는 거, 그렇게 순간순간들을 살아내는 것을 어떻게 신이 막겠나 그런 생각으로 쓴 문장들이에요. 신과 대적하는 게 아니라, 사실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하는 소리이기도 하고요."

▲신경숙은 "부서진 그 자리에서 다시 살아봐야 하는 것이 숨을 받은 자들의 몫"이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꽃이 지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눈보라가 칩니다. 엄마, 울지 마, 어느 결에 딸의 보드라운 숨결이 제 어깨를 덮고 따뜻한 이마가 제 어깨에 닿은 것도 같습니다. …바람과 먼지와 들꽃들이 일렁이는 이 황량한 벌판에 버려진 빈 항아리에 선생님께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모여 드는 게 느껴져 제 얼굴이 붉어집니다. 무엇을 그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날이 오기도 하는군요. …선생님, 어디로도 가지 마시고 저를 잊지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셔요, 조금만요.

딸을 잃은 화가는 마지막 중편에 이르러 오랫동안 미뤄왔던 편지를 '선생님'에게 쓴다. 다시 힘을 내 그려낼 이야기들이 항아리에 쌓이고 있다고,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쓴다. 늦게나마 편지를 보내는 대상인 '선생님'은 작별을 앞에 둔 모든 존재의 상징이라고, 신경숙은 말했다.

-배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위 알 수 없는 곳에 우리를 내려놓고 부서져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부서진 그 자리에서 다시 살아봐야 하는 것이 숨을 받은 자들의 몫이라는 말을 당신에게 하고 싶었는지도. 부서지려는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 독백형의 세통의 편지를 쓰게 하는 일뿐이었다. 다만 쓰는 동안 나 자신이 저쪽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일으키기도 했으니 읽는 당신도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를.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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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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