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어떻게] 연금개혁, 기본소득 등 새 복지제도와 병행해야

임항 / 2023-03-17 09:53:32
강남훈 "기본소득은 목적세 신설 통해 재정중립적으로 실시"
내는 돈·받는 돈 암산 가능하게 설계해야 조세저항 극복 가능
연금개혁의 큰 그림, 공적연금제도의 틀 뛰어넘는 것이어야
국민연금 개혁은 대선 공약이었다. 여야 후보 모두 약속했다. 갈 길은 멀다. 공회전하다 이제 겨우 시동이 걸렸을 뿐이다. 게다가 안갯속이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안에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국민연금에는 '용돈연금', '세대착취', '기금고갈','제도붕괴' 등의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불신이 크다. 이런 불신을 해소하고, 저부담·고수익 구조 탓에 미래 세대에게 지워질 부담을 덜어주는 게 연금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연금보험료를 올려서 연금기금의 재정안정 방안을 마련해도 지금처럼 심각한 노인빈곤을 완화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재정안정과 더 확실한 노후보장은 상충하는 목표다. 눈을 돌려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그러면 모두를 만족시킬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 국민이 내는 세금과 사회보험료의 역할분담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공적연금제도의 구조조정, 연금 사각지대 해소, 노후보장 강화 등 과제를 제시하고 해법을 모색해 본다. 

30년 후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민생활은 어떻게 될까. 예측 가능한 변수를 바탕으로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는 바람직한 미래상을 국가 비전이라고 불러보자. 정치권과 언론의 담론에서 이 같은 장기 비전이 사라진지 오래다. 장기적 큰 그림이 없는 부문별 개혁 프로그램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위해 성장을 하고 개혁을 하는가. 제4차 산업혁명과 기술변화, 인구감소 및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대응, 그리고 대외 정세의 흐름을 반영해 정치체제의 개편, 인권과 민주주의의 확대, 바람직한 복지제도와 문화를 아우르는 큰 그림을 제시하는 정치인을 볼 수 없다.

연금개혁, 큰 그림이 필요하다: '노인과 젊은이의 안전판' 비전선언부터 

연금개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재섭 서울신학대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공적연금제도의 도입 목적은 국가주도로 세대간, 계급 간 연대와 협력을 담보하여 국민들의 노후 삶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근로세대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치고 안심하고 도전하고 가정을 꾸미며 살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공적연금 본래의 목적과 기대를 국민들에게 심어주지 못하고 기금고갈이니 재정파탄이니 하는 극단적이고 부정적 모습만을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입해 왔다. 그것이 우리의 상상력을 제약하여 우리나라 연금정책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고 정책실패를 불러왔다. (중략) 그래서 노인들이 안전하고 존중받는 삶을 누리는 것은 물론, 젊은이들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치 있는 일들에 도전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꿈과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안전판을 만들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 <연금개혁, '해명과 책임' 그리고 '큰 그림'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23년 3월6일>

그렇다면 연금개혁을 위한 큰 그림은 공적연금제도의 틀을 뛰어넘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지금 이 땅의 보통 청년이 아이를 낳을 꿈과 용기를 가지려면 믿을 만한 연금제도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세부 항목들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 경쟁교육 체제의 혁파와 사교육비 감축 등까지 뻗어가겠지만, 한마디로 경쟁만이 아니라 협력과 공정성에 바탕을 둔 경제 및 사회제도의 구축이 아닐까 한다. 그 출발점은 세제개혁과 더 유연하고 따뜻한 복지제도가 될 것이다.

초기 기본소득의 유형: 전국민 기본소득, 자율선택 기본소득

세제개혁을 통해 새로운 재원을 확보했을 때 도입할 수 있는 새 복지제도 가운데 하나로서 기본소득을 살펴보자.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 '기본소득의 경제학'(박종철출판사, 2019)에서 하나의 기본소득 재정모델로서 전 국민에게 1인당 월 30만 원을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기본소득은 아동수당을 완전히 대체하고, 기초연금은 15만 원 이내에서 대체하며, 기초생활 보장대상자 중 생계급여는 15만 원 이내에서 대체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절감되는 돈을 감안하면 전 국민에게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주는데 170조 원이 든다. (4년 전 나온 책이라 제도상 금액에 지금과 차이가 있다.) 

강 교수는 비례적으로 부담하는 목적세로서 시민소득세, 환경세, 토지세 등을 신설해서 이 금액을 충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소득세 공제제도를 폐지함으로써 60조 원을 절감하면 100조 원 남짓만 확보하면 된다. 거둔 만큼만 그대로 지출하는 재정중립 원칙아래 국민들이 이 목적세를 통해 낸 돈과 받는 돈을 암산할 수 있도록 하면 '세금폭탄'이나 '재정환상'과 같은 정치적 공세를 돌파할 수 있다고 강 교수는 말했다. 누진세가 아니라 소득비례 세율로 하더라도 이 재정모델의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전체가구의 82%가 순수혜가구가 되고, 18%가 순부담가구가 된다. 득 보는 사람이 더 많고, 국가채무도 늘어날 일이 없으므로 대다수 국민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 증세 필요성을 어떻게 잘 설득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하승수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는 저서 '배를 돌려라'(한티재, 2019)에서 만 18~64세사이의 시민들이 기본소득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선택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하 대표의 기본구상은 이렇다. 만 18세가 되지 않은 국민에 대해서는 아동수당과 청소년수당 지급을 확대해 나가고, 만 65세가 넘은 사람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을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한다. 만 18~64세에게 지급되는 자율선택 기본소득으로는 이 긴 생애주기 동안 똑같이 5400만 원이 주어진다. 이 돈을 가령 월 150만 원씩 3년 동안 받을 수 있다. 학업을 재개하거나, 직업을 바꾸는 등 생애 전환기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월 50만 원씩 9년 동안 받는 것도 가능하다. 월 10만 원씩 45년을 받아도 물론 된다.

하 대표는 이 제도를 시행하는 데 연간 43조2496억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예산낭비를 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탈세를 없애고, 약간의 증세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 수준에 비추어 세금을 어느 정도 더 "올릴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면서 "문제는 세금을 쓰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복지는 돈이다.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하려면 증세와 세제 개혁이 불가피하다. 탑골공원에 앉아있는 노인들과 지폐 이미지. [UPI뉴스 자료사진]

다원적 복지제도, 중층적 연금제도의 완성

전 국민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 혹은 같은 금액의 노인대상 기본소득이 시행된다면 기초연금 예산은 일부를 최저보장연금으로 전환시켜 빈곤층 노인에게 최저 60만~80만 원의 공적이전소득을 줄 수 있다. 중간 소득층의 경우 기본소득에 소득대체율 40%의 국민연금, 그리고 그 가운데 일부는 퇴직연금까지 더해 1인 가구 최소생활비 124만3000원(2021년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 안팎의 돈을 확보할 수 있다. 고소득층은 기본소득과 국민연금, 그리고 일부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까지 합쳐서 적정생활비 177만3000원 이상의 노후자금을 쓸 수 있게 된다. 정부 복지와 민간의 공적연금, 사적 연금이 다 같이 만드는 중층적 연금제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장점 : 약자들의 도약을 위한 든든한 받침대

기본소득의 사전적 정의는, 모든 국민(또는 지역민)에게 개별적, 정기적으로 재산 유무와 노동여부에 상관없이 무조건 지급하는 현금 소득이다. 언급된 5가지 요건(개별성·정기성·보편성·무조건성·현금 지급) 가운데 세 가지 핵심은, 소득이나 재산조사가 필요 없다는 보편성, 노동여부나 일할 의사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무조건성, 가구의 경제 상황과 연계되지 않고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개인적 수급권이라는 점이다.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어야 하는 약자들에게 든든한 받침대를 제공한다. 형편없는 일자리를 거부할 자유가 생기는가 하면, 소득은 적지만 적성에 맞아 하고픈 일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는 또한 목표로 삼는 직업에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기간을 당당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준다. 

기본소득에 대한 반론과 쟁점: 어떤 수준의 복지를 지향할 지 합의 없어


"기본소득은 노동의욕을 꺾는다" "재원조달은 어디에서 어떻게 하느냐" "기본소득이 다른 복지제도를 대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제개혁이나 증세를 어느 정치인이 주창하겠느냐" 대체로 일리가 있거나, 적어도 면밀한 모의실험이나 시범실시를 통해 그 여파를 검증해 봐야 할 반론들이다. 해외에서는 좌파 진영은 기본소득이 기존의 공공부조제도와 공공서비스를 축소, 또는 폐지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걱정하는 반면, 우파 정치인과 일부 기업인은 바로 그 같은 수단으로서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경우도 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과연 우리나라가 국내총생산의 몇 %까지 복지에 할당할 수 있고, 그렇게 하려고 할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증세를 할 여력은 있지만, 꼭 선진국이나 OECD 평균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우리의 복지체제가 저(低), 중(中), 고(高)수준 가운데 무엇을 지향할 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범사회적 합의를 추구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일반시민 참여 확대하는 공론화 과정은 필수
 
그래서 개혁과정의 공론화와 시민 참여가 중요하다. 그러나 국회연금특위 주호영 위원장(국민의힘 원내대표)이 지난달 1일 제안한 '시민 500명 공론화위원회' 구성은 일정도 안 잡힌 상태다. 국민이 모두가 주인인 국민연금 개혁에서 공론화위원회는 각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무작위로 뽑은 국민들로 구성되는 정책배심원단이 전문가들로부터 쟁점별 설명과 찬반 토론을 보고 사안별 판단을 내리도록 하자. 여기에 지금처럼 연금 전문가뿐 아니라 재정전문가들도 참여토록 해서 정부 복지제도의 개편방향과 증세여부에 대한 합의도 마련해야 한다. 3~5차례에 걸친 이 과정을 TV 황금시간대에 생중계를 한 뒤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이런 모든 민심의 결과를 반영하여 노사정(勞使政)과 정치권이 종합결론을 내리게 하자.
 
세제개혁도 연금개혁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연금제도를 이렇게 십수 년마다 개혁하고, 5년마다 모수개혁이나 미세조정을 하는 긴 세월 동안 세제와 사회복지지출 체계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 아닌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는 개혁해야 하는 것이고, 기왕 하려면 서두르는 것이 정답이다.

KPI뉴스 / 임항 사회전문기자 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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