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오래 살아 신이 된 인간들…축복과 재앙"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03-17 09:17:49
장수 시대 배경 '그래스프 리플렉스' 펴낸 소설가 김강
인공 장기로 생명이 연장된 근미래 사회적 갈등 추리
오래 사는 윗세대가 기득권을 끝까지 놓지 않으면?
"장수가 공동체에 축복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몸이 자동차라고 치면 말이지. …지금 내가 타는 자동차가 칠팔십 년 되었어. 이게 아무리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거잖아. 정상일 수가 없지. 운전을 잘 하지 못해서 난 사고는 어쩔 수도 없고 내가 감당할 몫이라 치더라도 부품이 낡아서 사고가 나는 것은 좀 억울하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 부품이라도 갈아야지.

▲근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꾸준히 현재의 문제를 탐색해온 소설가 김강. [김강 제공]

부정맥으로 고생하던 최만식 회장의 첫 인공장기는 심장이었다. 초기에는 주기적으로 배터리 교환을 했지만 생체 전류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충전이 가능해져서 더 이상 교환할 일이 없어졌다. 이후에도 만식은 간과 우측 콩팥을 인공 장기로 대체했다. 심각한 질환이 있어서 이식 수술을 받은 게 아니라, 오래된 장비를 새것으로 바꾸는 차원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자동차에 비유해서 말하곤 했다. 누군가 그에게 그 자동차는 언제까지 달리고 싶다는 거냐고 묻자, 만식은 '길이 있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달리는 것이 자동차의 본질이자, 운명이기 때문이라고.

김강의 장편소설 '그래스프 리플렉스'(아시아)는 심장 콩팥 간 췌장 등 대부분의 장기를 인공으로 교체 가능해 백삼사십세까지는 너끈히 살 수 있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수명이 연장되는 여파는 그리 간단치 않다. 노인들을 위해 청장년은 언제까지 희생하면서 그들을 부양해야 할까. 더욱이 한 세대의 수명이 이렇게 연장되는데 그 세대가 움켜쥐고 있던 기득권을 놓지 않는다면, 그 아래 세대는 어떻게 해야 될까.

87세 최만식은 실버산업으로 돈을 버는 대기업 '올더앤베러' 창업주이자 현직 회장이다. 그의 장남과 아내는 사고로 죽었다. 사고 때마다 현장에 둘째 아들 52세 필립이 있었다. 만식은 필립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만년 부하 노릇인 아들에게 만식은 '너의 세상이 오거든 너의 뜻대로 하라'고 하지만, 그 세상이 저절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필립은 안다.

팔순에 접어든 김영권은 최만식의 지원으로 영산시에서 5선 의원으로 군림하는 정객이다. 그의 아들 인호가 지역구 관리를 도맡아 하며 아비가 할 일을 대신한다. 김영권은 국민기본소득을 부결시키고 노인 기본소득으로 바꿔 통과시키면서 노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노인 표가 있는 한 그가 선거에서 패배할 일은 없다.

최만식이 납치돼 온몸의 인공 장기들이 적출된 시체로 발견된다. 중고 인공 장기를 노린 업자들의 소행이 의심되지만, 범인은 쉬 드러나지 않는다. 김영권마저 뒤이어 승용차가 물에 빠져 익사체로 발견된다. 이들은 왜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을까. 소설은 이 과정을 추적해나가면서 인간의 본원적인 욕망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명이 연장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찬찬히 들여다본다. 첫 소설집에서부터 꾸준히 근미래를 배경으로 작품을 써온 김강을 전화로 만났다. 그는 경북 포항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안목으로 보건대, 실제로 소설에서처럼 인공 장기가 가능한 시점은 언제일까.
"그건 예측하기 힘들다. 실제로 개발이 된다 하더라도 사람에게 적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언제라고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인공 장기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수명은 연장될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 소설의 근미래는 40~50년 후쯤이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생명 연장은 최선의 꿈이다. 그렇긴 하지만 그게 진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인가에 대한 것들도 소설의 고민 안에 들어 있다. 어르신들이 때 되면 가야지라고 하는 말들이 어쩌면 지나온 인류 역사에서 의미가 있는 말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급증하는 노령 인구를 복지 차원에서 배려하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노인 복지가 젊은 세대 앞길을 막는다고 보는가.
"노인 복지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이 전제돼서는 안된다는 시각이다. 누구나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세대의 수명이 연장될 때, 그러한 환경에서 그들이 지니고 있던 것을 놓지 않으면 아래 세대는 어떻게 해야 될까 들여다보았다. 한 세대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오래 산다면 나이가 들어가는 그 아래 세대는 계속 아들 세대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인간의 욕망이 움켜쥔 것들을 쉬 놓게 하지 않는데, 이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고민을 해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최만식은 젊은 '안나'를 '마이걸'로 삼아 임신까지 시킨다. 안나의 오빠 '노마'는 로봇관리사로 일하다 필립의 지원으로 최만식의 회사에 입사한다. 만식은 아들 필립에게 '사람들의 시선, 순리 따위'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들에 신경 쓸 것이었으면 애초에 인공 장기 따위 이식받지 않았다. 나는 벌써 죽었지. 나는 안나의 피부, 가슴, 엉덩이를 보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게 사랑이라면 안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게 징그러운 노욕이라면 노욕이겠지. 노욕이면 또 어때. 나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진 것뿐이다. 안나도 내게서 받고 싶은 것을 받을 것이고. 우리는 서로 주고받은 거다. 너는 다를 줄 아느냐?

▲김강은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만 소설을 쓴다"고 적었다. [김강 제공]

소설 제목 '그래스프 리플렉스'(Grasp Reflex)는 생후 2~3개월 영아의 손바닥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 아이가 꼭 잡는 '쥐기 반사' 혹은 '파악 반사'라고 일컫는 의학용어이다. 생명 유지를 위한 원시 반사의 일종인데, 인간의 본능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노욕을 자제하게 만들 제도적 방안이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통상 영화나 소설들을 보면 갑자기 어떤 대혼란 시기 이후에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각성을 해서 다 같이 절제하는 사회를 구현해놓기도 한다. 사실 그런 것들은 전체주의적인 관점이다. 다 같이 각성하자고 말한다고 가능한 일도 아니어서 소설에서도 답을 제시하진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아들 인호가 차기 총선에서는 자신에게 지역구를 물려줄 것을 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타진하자 김영권은 말한다. '네가 앉으려는 자리에 주인이 없는 것도 너의 운이야. 이미 그 자리에 누군가 서 있다면, 그것도 네가 맞서 싸울 누군가가 아니라면 너는 그 자리에 갈 수 없는 거지, 결코. 네가 너의 정치를, 그것도 훌륭하게 해내려면 그런 운도 필요해. 하지만 그런 면에서 너는 운이 없어. 일단 내가 비켜주지 않을 거니까. 내가 너의 아비이고 너보다 먼저 정치를 시작했으니까.'

노마는 최만식의 아들 필립에게 말한다. '죽어라 일하는 노예. 그 노예의 꿈이 뭔지 아세요? 신이 되는 거예요. 어렵지 않아요. 일찍 죽지만 않으면, 시간만 보내다 보면 저절로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고 신전에 들어가 있겠지요. …사실 얼마 전까지 형님의 아버지를 인조인간이라 불렀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형님의 아버지, 그러니까 최 회장님은 그저 단순한 인조인간이 아니에요. 신이죠. 힘이 아주 센.'

▲주중에는 의료 현장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고 주말에 짬을 내 집필하던 김강은 지난해 출판사 '득수'를 차린데다, 문학 전문책방 '수북'까지 열어 더 바빠졌다. [김강 제공]

-현실적으로 청년 세대가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치적인 각성 혹은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보는 건가?
"각성을 한다고 해도 세대 갈등의 문제는 아니다. 사실 소설 속에서 '노마'라는 청년을 살릴 것이냐 죽일 것이냐 고민을 했는데, 모든 문제를 근원적으로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의 문제 차원이지 세대 간의 갈등이 핵심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영원히 사는 것을 추구하게 만들고 그런 기술들을 개발해서 다시 적용하는 것들이 자본주의가 좇는 방향 아닌가. 청년들도 계층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다."

소설 말미에 인호는 최만식이 평소에 즐겨 하던 '누구나 마땅한 일을 한다'는 말을 필립에게 상기시킨다. 김강은 "소설 속 인물들의 욕망은 원래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그래스프 리플렉스'같은 것인데, 그렇다고 모든 행동을 합리화하는 변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5년 전 초고를 완성했지만 '오해'를 살까봐 대폭 수정했다. 1차 독자였던 그의 부친이 당시 '이거 꼭 책으로 내야 되나'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탓도 컸다. 그는 "한 세대가 오래 산다는 것이 공동체 전체에게는 축복인지, 축복이 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맺었다. 작가의 말.

제가 보는 세상과 당신이 보는 세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의 말에, 저의 물음에 조금 어처구니가 없어도 화를 내지는 마세요. 아니, 조금 화를 내셔도 됩니다. 제가 이해할게요.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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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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