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도 팔수 있다는 자신감…섬 같은 청년들 이어주는 역할 하고파"

박지은 / 2023-03-10 18:43:48
[소소(笑召)한 인터뷰] 김포 책방 '게으른정원' 대표 이소현씨
"매너리즘, 번아웃…내가 마음이 아프구나 완벽히 인정했다"
"동네책방, 하나의 허브가 돼…섬같은 시민들 이어주는 역할"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엄청난 생존력 발휘할 수도"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합니다. 작은 것에 만족하면 행복은 널려 있습니다. 주변엔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적잖습니다. 이들에겐 시간과 풍경이 남들과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떨지 궁금합니다. UPI뉴스가 이들 얘기를 소개하는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얽히고 설킨 전깃줄 아래로 창고정리 플래카드, 'XXX보살' 점집 간판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책방 하나가 들어서 있다. 동네책방 '게으른정원'이다.

경기 김포 북변동의 오래된 골목 중간에 자리 잡은 책방 문을 열자 곳곳에 생명력을 머금은 식물들이 먼저 반긴다. 벽면을 가득 메운 책과 아기자기한 포스터, 정성스러운 쪽지들이 붙은 아늑한 공간은 문 하나를 두고 마치 시공간을 뛰어넘은 듯하다. 

'게으른정원'은 2020년 9월 문을 열었다. 작은 책방으로 시작해 현재는 청년들의 문화 허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책방 대표이자 기획자인 '차차(이소현·31)'를 지난 12일 오후 만났다.

▲ 양갈래로 땋은 머리, 살짝 눌러쓴 베레모 아래 반짝이는 눈. '게으른정원' 대표 이소현 씨가 지난 12일 책방을 찾은 기자에게 다가가 마치 오래 만나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있다. [김명주 기자] 

이 씨는 과거 한 언론사에서 인포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다 퇴사하고 가구회사 브랜드디렉터를 거쳐 3년차 책방지기를 하고 있다. 

직장생활에서 '번아웃 증후군'을 겪자 스스로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미련없이 회사를 나와 책방을 열었다. 그래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년을 응원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죠. 일단 해보세요. 엄청난 생존력을 발휘할 수도 있어요."

이 씨는 "여기서 만나는 손님들의 반응이나 눈빛이 저한테도 힘이 돼요. 다른 사람에게 힘을 받으면 제 부족한 부분이 채워진다"고 말한다. '섬' 같이 고립된 청년들이 서로 간의 체온을 나누자고 손을 내미는 이유다. 서로 몸을 맞대 추위를 이기는 펭귄처럼 용기내 함께 세상의 바다로 뛰어들자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펭귄학교'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하기도 했다. 펭귄학교는 지역 청년강사들과 김포시 청년지원센터가 연계해 진행한 '청년 동기부여 프로젝트'다. 청년 6명을 펭귄으로 지정해 삶에 긍정적 자극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펭귄은 청년에게 귀감이 될 만한 책방 손님 중에서 선정했다.

이 씨는 단순히 책만 팔지 않고 책을 매개로 사람과 소통한다. 독서모임 등과 함께 본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영업자가 알아야하는 브랜딩·마케팅·SNS 운영방식을 알려주는 강좌도 진행한다. 

직장인에서 한 책방의 대표이자 기획자로

▲ '게으른정원' 내부 모습. 식물과 포스터 등 아기자기한 소품과 가지런히 진열된 책들이 낡은 건물들이 만드는 바깥 풍경들과 대비된다. 12일 인터뷰 시간에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명주 기자]

ㅡ직장생활을 그만둔 이유는.

"영화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 교수가 해리포터에게 '네가 선택하는 것이 네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경직된 조직에서 매너리즘을 느끼며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마침 공방을 시작하던 지인에게 디자인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더 좋은 회사, 연봉보다 그 친구와 함께하는 비전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선택했다. 가구회사는 3년 동안 빠르게 성장했다. 밤을 새우고 출근한 적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거울 앞에 섰는데 내 모습을 보고는 소리내며 울었다. '나 진짜 아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완벽히 인정했다. 내가 할 몫 이상의 것을 하고 있다는 걸 느껴 일단 대책 없이 그만뒀다."

ㅡ왜 책방으로 택했나.

"가구회사에서 일할 때 제품 쇼룸을 책방의 형태로 기획한 경험이 있다.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는 걸 채워주는 게 책이다. 당시 내가 만든 공간에 와서 눈물 흘린 사람이 있었다. 이 공간이 너무 좋고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라고 했다. 당시 내가 만든 공간이 내 의도대로 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책방을 택하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ㅡ창업을 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

"두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길이든 갈 수 있을 거 같았다. 지인과 가구회사를 꾸려갈 때 별의별 걸 다해봤다. 마케터, 에디터, 기획자, 디자이너 4개 범주를 오고갔던 그 시간은 힘들었지만 큰 자산이 된 것 같다. 그만둘 때 '난 이제 돌도 팔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리적 한계 벗어난 책방의 이야기

ㅡ김포, 그리고 북변동으로 책방을 정한 이유는.

"월세 등 고정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최대한 고정비 적은 곳으로 가자고 생각했다.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어디든 본인과 비슷한 결을 찾아 취향 맞는 곳이면 오고자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손님들은 책방 밖과 안 분위기가 너무 달라 오히려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고 말해주곤 한다."

ㅡ책방을 처음 열던 때와 지금 달라진 부분이 있나.

"똑같다. 더 많은 점집이 들어왔다(웃음). 지인이 최근 근처에 빈티지샵을 계약했다. 앞에 식물 가게, 스테인드글라스 조명가게도 들어올 것으로 안다. 같은 거리인데 뭔가 이 공간을 새롭게 봐주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용기를 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친구들이 들어와서몇 개의 공간을 만들어주면 책방 손님들이 둘러볼 공간이 많아져 내 입장에서도 더 좋을 것 같다."

ㅡ책방에서 어떤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기획했나.

"초기에는 책만으로 소통하기에는 장벽이 있다고 느껴졌다. 김포시에 책 읽는 청년 현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책이 아닌 달리기 모임, 물 마시는 모임 등을 무료로 모집하고 진행했다. 내가 필요한 건 또래도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는 반응이 좋았다."

결국은 사람…'섬'같은 지역청년 이어주는 허브 역할 

ㅡ펭귄학교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이 지역에 '숨어' 사는 2030들도 많이 만난다. 세상이 취업과 창업을 강요하는데, 이 친구들에게는 동기부여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 안 되고 창업할 돈도 없어 무기력한 친구들이 많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인물처럼 '이렇게 살라'는 강요가 아니다. '비슷한 또래의 쟤가 저렇게 열심히 사네'하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 펭귄학교'를 기획하게 됐다. 당시 김포시 시장 자문가가 책방으로 와서 내 얘길 들은 뒤 시장 앞에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ㅡ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곳 같다.

"그렇다. 책방 프로그램에서 나도 좋은 인연들을 만나며 얻는 것도 많다. 그들끼리도 네트워크를 갖게 된다. 책방이 하나의 장, 허브가 되는 것 같다. 최근 북클럽 4개를 오픈했는데 제가 했던 북클럽 참여자들이 클럽장이 됐다. 책방은 상업 활동을 넘어 지역 내 시민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시민들이 지역을 사랑하게 된다. 관계가 없으면 동동 떠있는 섬같은데, 관계가 제대로 서면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준다. 동네 책방들에 따뜻한 시선과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한 많은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

▲ 이소현씨가 꼽은 인생책 '사랑의 목격'. 그는 "이 책을 읽고 사랑의 힘을 여실히 느꼈다. 요즘 많은 친구들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김명주 기자]

ㅡ책방을 앞으로 어떻게 가꾸고 싶나. 또다른 목표가 있다면.

"게으른정원이 잠깐 사라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간이 사라지더라도 늘 존재는 하면 좋겠다. 그래서 온라인 책방도 생각 중이다. 공간에 국한되지 않는 장소가 될 수 있게 구상 중이다. '장릉토요산책'이라고 문학작품을 낭독하는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다. 다양한 돈벌이 중에서 제일 행복한, 가장 의미 깊었던 수입이었다. 책을 말해주는 사람으로서 조금씩 더 입지를 만들어 가고 싶다."

ㅡ또다른 길을 택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두려움이 앞설텐데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한다. 막상 시작해보면 생각보다 엄청난 생존력을 발휘해 지속할 수도 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면 일단 시작해보고 주저할 바에는 빠르게 액션을 취해보자. 나 또한 스무살 때만 해도 책방해서 먹고 살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빠르게 실행으로 옮겨보고 내 몸을 써보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KPI뉴스 / 박지은·김명주 기자 pje@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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