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최용대 "창작은 기존 것 새롭게 해석해 새로운 가지로 펼쳐내는 것"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 2023-02-23 01:28:58
글쟁이 꿈꾸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미술 입문
"내게 가장 큰 스승은 사실 그동안 해온 나의 작품들"
"작가가 새로운 것 한다는 건 무언가 새롭게 해석한다는 것"
"나는 화가랑 결혼했지 포장마차 아저씨랑 결혼하지 않았어요." 화가 최용대 아내의 말이다. 직업이야 귀천이 없다지만 평생 화가로 외길을 걸어온 그는 한때 포장마차라도 꾸려 살림에 도움이 되려 했다. 단호한 아내의 한마디는 잠시 본분을 잊은 그를 자책하게 했다.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은 가난이 일상이었죠. 전기장판도 없고 연탄 한두 장도 여유가 없어 한겨울이면 입김에 손을 녹이며 그림을 그렸죠. 새벽녘에 새마을 청소차가 지날 때쯤에야 잠을 청하곤 했어요. 맥주는 사치였어요."

그는 비 오는 날이면 포장마차로 달려가 소주 한 잔에 답답한 맘을 달래야 했다고 한다. 매달 20일, 어김없이 다가오는 작업실 월세 날은 말 그대로 공포에 가까웠다.

▲ UPI뉴스와 인터뷰하는 화가 최용대. [제이슨 임]

지난 15일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최 작가는 자기 작업실이 베르사유 궁전보다 못할 게 없다는 눈치였다. 집에 딸린 너른 작업실에 언제든 달려갈 수 있으니 작가로선 공간의 크기나 경제적 가치를 떠나 꿈이 이뤄지는 장소인 셈이다.

그는 늦은 나이에 미술 공부를 위해 1993년 프랑스로 향했다. 향수병을 달래가며 수년간 매달린 끝에 외환위기 복판이던 1998년 귀국할 수 있었다. 몇 해, 전시를 꾸리려 국내외를 뛰어다니던 그는 2004년에야 현재의 작업실이 있는 양평에 터를 잡아 직접 설계하며 자신의 성을 구축할 수 있었다.

문득 왜 그림이었냐고 물었다. 그는 본래 글쟁이를 꿈꿨는데 딱히 이유라기보다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미술에 입문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을 떠나기 전 경주에서 동료 예술가들과 소통하며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다. 뱀이나 개구리라도 튀어나올 듯한 가난했던 경주의 작업실. 밤이 되면 그는 용맹하게 신라 왕릉인 '상릉' 위로 뛰어올랐다. 별빛과 술에 취해 '명태'나 '엄마야 누나야'를 목 놓아 부르며 가난한 영혼을 달랬다. 역설적이게도 그때가 가장 호사스러운 순간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 Inner language 2022, Acrylic on Canvas, 130x130cm [제이슨 임]

늦은 나이에 도착한 미술의 본고장 파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입학 면접부터 난관이었다. 이미 작가라는 것을 알아본 면접관은 "왜 입학하려 하는가. 바로 파리로 가서 작가들과 교류하고 갤러리스트를 만나는 게 낫지 않은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본고장 미술의 본류를 접하고 자신을 다지려 그곳에 남아 수년간 세월을 낚았다.

그의 대개 연작들이 마치 굴비 두름처럼 궤를 같이하는 이유다. "작업하며 새로운 작품을 구상해요. 그것이 내 속에서 익고 차오르면 쏟아내는 식이죠." 그가 다작 작가는 아니지만 연이어 연작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다. 더러는 10년 세월을 한 주제로 이어온 경우가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숲 시리즈'다.

그는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가지인 추상화를 그리는 작가다. 추상화를 좇는 화가들이 언제나 화두를 다툰다. 그는 "화두라기보다는 나와의 싸움이다. 사실 추상화는 설명이 필요 없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 Inner language 2022 [최용대 제공]

그의 이런 예술혼의 출발점은 언제, 어디일까. 어린 시절 일찍 세상을 등진 형의 충격은 어린 예술혼을 뒤흔들었다. 뛰어난 그림 솜씨를 지녔고, 기타까지 잘 치던 팔방미인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 어린 최용대에게 충격을 넘어 삶의 본질을 생각게 하고, 예술혼을 깨운 사건이었다.

그의 작품 세계엔 여러 변곡점이 있었다. 유학 전 연 첫 개인전 3일째 되던 날, 그는 한방 맞은 듯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애써 작업한 작품들에 너무 많은 색과 표현들이 넘쳐나지 않는가. 자기 작품이 처음 객관적으로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런 각성은 프랑스 유학 시절엔 그가 색을 제거하는 과정에 집중하게 했다. "겨울나무가 어떤 면에선 혹은 철학적으론 더 본질에 가깝죠. 너무 많은 수사는 본질을 해칠 수 있거든요"라고 했다. 또 그에겐 이국땅에 던져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여러 번뇌가 숨을 죄어왔다.

"개선문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외국인이에요. 저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생각은 서양화가인 그의 작품에 동양 정서를 스며들게 했다. 천정이 높은 그의 작업실 벽면엔 걸린 여러 작품 하단은 하얀 여백으로 마무리돼 있다. 동양미술에서 말하는 여백의 미다. 

▲ 화가 최용대의 양평 작업실. [제이슨 임]

수년 만에 그는 고국을 향했다. 하지만 혹독한 외환위기를 맞은 고국은 예술가에게 피난처일 수 없었다. 와신상담 끝에 맞은 21세기. 그가 부여잡은 주제는 '자연과 환경'이었다.

"유학 시절 베르사유 궁전을 지날 때 태풍에 쓰러진 거목을 본 적이 있어요. 나무에 감긴 붕대는 치유를 말하고 있었죠. 물론 태풍에 쓰러진 나무지만 우리 세계엔 그런 나무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관여로 다쳐 치유해야 할 수많은 자연과 대상이 있죠." 그가 새로운 연작을 시작하게 된 연유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숲' 시리즈다. 자연을 표상하는 주요 매개인 나무. 그는 나무를 가까이 혹은 멀리서 바라봤다. "처음엔 미니멀하게 접근했어요. 글자도 넣었죠. 나중엔 큰 전환을 맞아 숲 시리즈로 진화했어요. 물론 가장 오래 이어온 시리즈니 서너 번 변화의 단계를 더 거쳤죠."

▲ 화가 최용대가 지난 15일 양평 작업실에서 UPI뉴스와의 인터뷰 중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제이슨 임]

숲 시리즈는 처음 미니멀리즘을 거쳐 설치미술로 진화했고 나중엔 블랙 위주의 그림으로, 최종엔 회색 그림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그는 돌연 "사실 작업에 있어 가장 큰 스승은 그동안 해온 나의 작품들"이라고 했다. 자신의 작품이 가장 큰 스승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예술가의 책임이나 활동은 새로운 것을 찾거나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대미술은 1960년대쯤 이미 현재의 회화적 기술이나 개념 등이 모두 완성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말하자면 인간 사고로 만들 수 있는 현대미술 분야는 이때쯤 이미 모두 정립됐다고 봐야 합니다. 이 때문에 작가가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은 사실 무언가를 새롭게 해석하는 활동으로 봐야 합니다."

최 작가는 "그것을 위해 작가는 자기의 색깔을 가지고 변화하는 지난한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이것이 창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미 나온 나의 작품들은 가장 큰 스승인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가는 모두 다른 사람이다. 나라는 예술가도 내가 가진 본질과 내면과 꾸준히 소통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밤을 새우는 것"이라고, 최 작가는 부연했다. 

창조는 신의 영역이고 창작은 예술가의 영역인데 창작은 기존의 것을 새롭게 해석해 새로운 가지로 펼쳐내는 것이라는 게 최 작가 지론이다.

▲ '숲 시리즈' 설치 작품 [최용대 제공]

봇물 터지듯 예술론이 이어졌다. "최근 AI 관련 논의가 활발하죠. 하지만 예술과는 별개라 봐야 합니다. 예술작품의 핵심은 울림이죠. 시간과 장소, 빛에 따라 그 울림은 다양합니다. 그것은 AI가 만들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최 작가는 "역사적으로 신과 예술 영역엔 쉽게 칼을 댈 수 없었다. 이런 이유도 간단하다.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르는 것이 예술일 수 있다"고 했다. 역설적으로 모르니까 존중하거나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 작가는 "예술은 그 자체로 의미고 삶의 여백이고 여유"라고 했다. 예술은 AI가 만드는 정량화로 정의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와인 여러 순배가 돌자 최 작가는 말했다. "사실 결혼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만나다 헤어지면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데 처음부터 다시 리바이벌하려면 피곤하잖아요."

결혼생활이 그랬듯 최 작가는 화가의 길 40여 년을 외눈박이처럼 살아왔다. 가진 재주를 부려 주머니를 채우는 쉬운 길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리바이벌이 싫다'는 항변처럼 한번 투신한 미술 대신 다른 길로 리바이벌할 수 없었을 것이다.

▲ Inner language 2022 Acrylic & Pigment on Canvas 130x130cm [최용대 제공]

그의 작업실엔 그동안 활동 흔적이 여럿 남아있다. 한편엔 시인 김춘수의 유작인 시인과 함께한 시화집이 놓여있다. 계단을 오르자 그의 작품 '날기를 꿈꾸는 뿌아송'이 눈에 들어왔다. 뿌아송은 프랑스말로 물고기를 뜻한다. 화폭에 담긴 뿌아송은 과거 날기를 꿈꾸던 그의 자화상이다.

이제 그는 국내외 여러 갤러리가 찾는 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미 그는 창공 속에서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고 있는 셈이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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