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푸틴의 전쟁'과 '칸의 전쟁'

김당 / 2022-03-17 16:34:01
ICC prosecutor issues official request to Russia
국제형사재판소 칸 수석검사, 러시아에 공식 조사요청 전달
우크라이나∙폴란드 방문조사…젤렌스키 대통령 화상면담조사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가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적대행위에 가담한 모든 이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면서 러시아 연방에 공식 조사 요청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수석검사가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키이우)와 폴란드 난민수용시설 등을 방문해 다양한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ICC 누리집]

카림 A.A. 칸(Khan) ICC 수석검사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러시아 연방이 이 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나는 러시아 연방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공식 조사를 요청한 사실을 공개했다.

'푸틴의 전쟁'에 칸 수석검사가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도 17일 ICC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발(發)로 "칸 수석검사가 성명에서 우크라이나 분쟁의 모든 당사자가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면서 러시아에 조사를 요청한 사실을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이어 "크렘린궁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고려할 때 러시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근거가 있다는 칸의 말을 단호히 부인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2일 ICC 회원국 39개국은 ICC에 러시아의 전쟁 범죄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이에 칸 수석검사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를 일으켰다고 볼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며 조사 개시를 밝혔다.

▲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수석검사(오른쪽)가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키이우)를 방문해 드미트로 쿨레베 외교장관과 이리나 베네닉토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과 화상면담조사를 하고 있다. [ICC 트위터]

칸 검사는 이날 성명을 발표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서증 문서, 디지털, 법의학 조사를 하고 드미트로 쿨레베 외교장관과 이리나 베네딕토바와의 면담 조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화상회담을 한 사실도 공개했다.

칸 검사는 "(화상회담에서) 우리는 적대 행위가 국제인도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하고 민간인을 분쟁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견해에 일치했다"면서 "나는 국제법 위반 혐의를 철저히 조사할 수 있도록 모든 관련국과의 협력을 확대할 용의가 있음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폴란드의 메디카 난민수용소에서 적대 행위로 인해 강제로 피난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있었다"면서 "폴란드 정부의 고위관리들과 협력해 잔혹한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집단행동의 기반을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칸 검사는 구체적으로 "공격이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병원을 포함한 민간인 대상으로 하는 경우 등은 ICC에서 조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범죄"라면서 "이러한 적대 행위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정규군, 민병대, 자위대 등 제복을 입거나 무기를 휴대함으로써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추가 법적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우크라이나 상황과 관련된 내 사무실의 작업은 항상 '로마 규정'의 기본 원칙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수행될 것"이라며 "우리는 (러시아를 포함해) 갈등의 모든 당사자와 소통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러시아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인 ICC는 국제 사회에 심각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해당 국가가 기소할 수 없을 때, 그 개인을 수사하고 처벌하는 유일한 상설 국제기구다.

ICC가 다루는 범죄는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살해) △전쟁범죄(war crime) △반인도적 범죄(crime against humanity) △침략범죄(crime of aggression)의 네 가지로 국한돼 있다.

다만 침략범죄의 경우 ICC가 사법권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

ICC 기반이 되는 로마규정(Rome Statute)에 따르면 침략범죄에 대해 ICC가 사법권을 갖기 위해선 두 국가가 모두 회원국이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ICC에 수사를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모두 ICC 비회원국이며,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외의 '전쟁범죄'나 '반인도적 범죄'의 경우, 비회원국이어도 해당 국가가 ICC의 관할권을 인정하면 ICC는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이 경우 ICC는 해당 영토에 대해 관할권을 갖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해 러시아의 고위 관계자들을 기소할 수 있다. 다만 범죄 성립과 처벌은 별개의 문제다.

▲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수석검사가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키이우)를 방문해 이리나 베네닉토바(앞줄 왼쪽) 우크라이나 검찰총장과 함께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ICC 트위터]

칸 검사장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현장조사를 하는 사진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등 매우 의욕적으로 관련 조사를 하면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기소돼도 처벌까지 이어지긴 어렵다고 분석한다.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하거나 기소를 해도 회원국 밖에서 이를 집행할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2002년 ICC가 설립된 이후에도 제노사이드와 내전 등 전쟁범죄는 끊이지 않았지만, ICC가 단 한 번도 '살아있는 권력'을 처벌하지 못한 이유다.

더욱이 푸틴 대통령의 경우 군사강국 러시아의 지도자인 만큼 처벌이 더 쉽지 않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 이틀만인 2월 26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분쟁 소송신청서를 제출했다.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는 최근호에서 "ICC가 분쟁 발생에 이렇게 빨리 대응한 적이 없고, 일반적으로 행동이 느린 ICJ도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소송을 시작했다"면서 "(이들의) 특별재판 노력이 성공할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이들의 전례없는 대응은 푸틴이 예상치 못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포린 어페어즈'는 이어 "일반적으로 러시아 편을 드는 권위주의 국가들조차도 러시아의 법적 지위를 방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어떤 국제법적 기관도 러시아의 침공을 막거나 되돌릴 수 없을 것이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25년 경력의 칸 변호사는 지난해 2월 뉴욕에서 열린 로마 법령 제19차 당사국 총회에서 국제형사재판소 수석검사로 선출되었다.

'푸틴의 전쟁'에 국제법의 이름으로 참전한 칸 수석검사는 유엔 사무차장으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이라크에서 IS의 잔혹 범죄를 수사하는 유엔 전문 조사팀(UNITAD)의 특별고문이자 조사단장을 역임했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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