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헌 한국예총 회장 "창립 60년 새원년···예술계 처우 개선에 최선"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 2022-01-14 21:58:12
[UPI뉴스 인터뷰] 이 회장 "처우개선, 법제화된 틀 만드는 게 중요"
"지역 문화 분권 필요…모든 시군구에 문화재단 설립 의무화해야"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문화예술 유니언' 출범해 실질적 권리 추구"
"예술가의 삶은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 위한 자본이자 문화 식량"
"누군가는 해야할 역할에 최선···언젠가 오롯한 화가로 돌아가려"
한국 문화예술 발전에 적잖은 힘을 보태온 한국예총이 설립 60주년을 맞았다. 예총은 1962년 임인년 '국내 예술 문화발전과 예술인의 권익 신장 등의 목적'으로 설립됐다. 사람으로 치면 올해로 환갑이다. 예총 산하엔 '한국건축가협회' '한국국악협회' '한국무용협회' '한국문인협회' '한국미술협회'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연극협회'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한국음악협회' 등 내로라하는 예술 대표단체가 포진해 있다.

이런 한국 예술의 본산을 이끄는 이는 '제24대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거쳐 2019년 당선된 이범헌 회장이다. 이 회장의 본업은 화가다. 본업을 잠시 접어두고 예술단체장으로 나선 지 벌써 여섯 해다. 임기의 반환점을 앞둔 이 회장을 지난 11일 서울 목동 '대한민국예술센터' 20층 한국예총 사무국에서 만났다.

▲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범헌 회장이 지난 11일 서울 양천구 대한민국예술인센터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언젠간 오롯이 예술가로 돌아가겠다는 임인년 생 이 회장의 예술 사랑은 극진했다.

이 회장은 이날도 연거푸 이어지는 여러 회의 주재로 쉴 새 없었다. 집무실 벽면에 걸린 이 회장의 분홍빛 그림은 엄동설한에 때아닌 봄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이어진 몇 마디에 '실무형 단체장'이란 인상을 받았다. "과거엔 단체의 권위나 명예보다 회장 활동이 미비했다. 특히 역동적인 조직 운영이나 정책 선도에 있어 많이 부족했다. 나는 회장이기 전에 한 사람의 예술가다. 아무래도 현장 실정을 잘 아니 해야 할 일도 많다. 사실 예술은 직업적인 측면에서 인정받기 쉽지 않다. 창작을 위해 평생 온 힘을 기울이지만 상당수 예술인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 회장은 인터뷰 일성으로 '직업적 가치로의 예술'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도 작심한 듯 한결같다. 예술인의 처우개선, 복지 등에 관한 이야기가 태풍 같다.

그는 예술인의 환경 개선을 위해선 단연 '법제화된 틀'이 중요하다고 했다. "미술협회 이사장 때부터 문화예술진흥법, 예술인고용노동법, 예술인권리보장법, 예술인복지법, 조세물납법 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힘을 보탰다. 또 관련 시행령 등이 현장과 괴리 없도록 힘쓰고 있다."

이 회장은 "이 가운데 '예술인고용노동법'은 예술 분야가 직업으로 인정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예술가는 언제나 프리랜서였는데 '특수 창작인'이란 이름으로 인정받게 됐다"며 "과거엔 언감생심 '4대 보험'은 꿈도 못 꾸었지만 이젠 고용 보험이라도 혜택을 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과거 여러 이유로 침해받은 창작의 자유를 근원적으로 보호하자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삼성 '이건희 컬렉션'이 계기가 된 '조세물납법'도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세금을 낼 수 있게 돼 주목할 만하다. 예전엔 창고에 불이 나면 창고는 보험이 적용됐지만 보관한 미술품은 보험 대상이 아니었다. 모든 창작예술품에 법적·경제적 가치가 부여됐으니 큰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이 회장은 올해야말로 현장의 목소리를 정치권에 전할 입법의 최적기라며 "아예 바쁜 일정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대선과 지방선거 등 굵직한 선거 많다. 여러 대선 후보자를 만나 예술계에 필요한 현안을 전달하고 있다. 누군가의 선거운동을 도우려는 것이 아니다. 미래 정부나 지자체를 이끌 주요 후보군에게 문화예술계의 실질적인 목소리를 전하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지역 문화 분권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제안된 지방 분권으로 예술계의 가장 큰 단체인 '문화예술위원회'가 나주로 갔다. 문화 분권은 수도에 모인 중요기구를 지역에 분산하는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각 지역의 문화예술 창달을 도울 수 있는 지역 자체의 기초를 다지자는 것이다."

▲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범헌 회장이 지난 11일 서울 양천구 대한민국예술인센터에서 UPI뉴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그는 구체적인 실행안도 꺼내 들었다. "예를 들어 광역시도에는 문화재단의 설립 의무가 강제조항으로 있다. 상대적으로 시군구에는 강제조항이 없어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다. 문화 분권을 위해선 모든 시군구에도 문화재단 설립을 의무화해야 한다. 그나마 설치된 문예회관, 시·도립 미술관 등 예술단체의 운영도 효율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지역 예술가의 직접적인 운영 참여가 가능한 할당제 같은 제도화가 필요하다. 사실 우리의 현실은 지역 문예회관 건립에서조차 주인공인 예술가는 설계부터 도태되거나 분리되고 있다."

이 회장은 예술가도 생활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왕성한 예술 활동을 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총체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기존의 비영리 사단법인 형태보다는 문화 선진국인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예술 유니언(Union)' 형태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 지원금이나 재난지원금 혜택에서도 한동안 예술인은 소외됐다. 예술계의 큰 노력에 답한 문화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이해로 3·4차 재난지원에선 기초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뮤지컬이나 대중 공연 분야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문화예술 유니언'은 이런 문화예술계를 상황을 대변하거나 실질적인 권리 획득의 주요 창구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산업계의 노동조합 같은 형태로는 갈 수 없다. 문화예술 유니언을 통해 모든 예술인이 직접적인 4대 보험 혜택을 받게 해야 한다. 예술인은 자신의 권리를 찾거나 주장하는 데 능숙하지 않다. 현재 예술인의 의료복지 해결을 위해 관련 유니언 결성을 위해 여러 단체와 힘을 모으고 있다."

이 회장은 예술인의 삶과 직업 자체를 다른 시작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예술가의 삶은 자체가 사회 공헌이자 국격을 높이는 훌륭한 수단이다. 그들이 남기는 작품은 국가의 자산이다. 예술가의 삶은 헌법에서 말하는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를 위한 자본이자 문화 식량이다."

예총은 국내 최대 문화예술단체다. 전국 10개의 광역연합회와 125개의 지회가 촘촘히 연결돼 있다. 단체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예술인만 수십만 명에 달한다. 서로의 이해관계로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하기관뿐만 아니라 이청산 민예총 이사장과도 자주 소통하며 힘을 모으고 있다. '창원 공공 미술관' 건립 등은 함께 이룬 성과들이다. 협회 운영도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여러 단체가 모여 있으니 어려운 부분도 있다. 소통과 양보가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총회에서 단 한 차례도 언성 높이며 싸운 적이 없다(웃음). 총 14명의 부회장단이 있다. 10명은 당연직으로 지역 광역연합회 이사장들이 맡는다. 과거엔 나머지 4명의 부회장을 회장이 임명했다. 지금은 지역 추천을 받아 회장이 추인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인사권을 일부 내려놓았다는 뜻이다. 예총 회장직은 권력의 자리가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니 많은 권한이 필요 없다. 내려놓고 소통하면 못 통하고 안 통할 것이 없다. 지난 선거에서도 '회장 독임제를 폐지하고 집단지도체제를 하자는 공약을 냈다."

무엇보다 올해는 설립 60주년을 맞아 할 일이 태산이라도 했다. "코로나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10월에는 '미래 비전 선포식'을 개최하려 한다. 단체가 환갑을 맞았으니 새로운 출발을 알리려 한다. 말 그대로 올해는 새로 출발하는 원년이다. 새로운 60년을 위해 전진하겠다."

사실 그는 홍익대와 한예총에서 수학한 본업 미술작가다. 작품 활동은 어떻냐는 질문에 "공적인 삶을 살아야 하니 일단 접어 두고 있다. 꼭 출품해야 할 땐 잠을 설칠 수밖에 없다. 올해 열리는 베이징 비엔날레에 국내 5명의 작가와 초대됐다. 100호 크기의 큰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작가는 운명이니 짬을 내서라도 할 수밖에 없다."

집무실 입구에 걸린 독도 관련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이 회장이 그린 이 그림은 한동안 세간에 화제가 됐다.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것을 외치고 싶었다. 페북을 통해 많은 유명인이 지지를 표했다. 이들의 이름도 캘리그래피로 그려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NFT(Non-fungible token)로 전환돼 경매에서 6800만 원에 팔렸다. 판매액 모두 '독도지키미'로 활동하는 '독도아카데미와 독도협회'에 기부했다."

▲ 이범헌 회장의 '대한민국 독도' 작품 판화. [문재원 기자]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예전엔 골프나 아이스하키를 즐겼는데 요샌 바빠서 마땅한 취미도 없다"고 했다. 그래도 짬 날 때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뭐냐고 묻자 "시쳇말로 '멍 때리기'가 취미라면 취미다. 가끔 김영동·황병기의 창작국악이나 지금은 수도사가 된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노래를 듣는다"며 미소를 지었다.

업무 누적으로 압박감이 작지 않을 터. 이 회장은 좌우명인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처럼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 뒤에 그저 낮은 자세로 결과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신에게 스트레스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큰 단체를 이끄니 정치적 야심도 생기지 않느냐는 도발적 질문에 "가끔 TV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를 본다. 남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은퇴 후의 삶이다. 하지만 '나는 예술인이다'를 꿈꾼다. 온전히 그림에만 몰두할 그날, 그날이 온다면 더 족할 게 없다. 회장직은 어차피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역할이다. 주어진 자리니 최선을 다할 뿐이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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