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또 다른 기회의 땅"
"인공지능, 예술 분야의 인간 창작력 넘어설 수 없어"
"메디치 효과처럼 예술의 섞임 상상할 수 없는 결과 낳을 듯"
"공정한 디지털 플랫폼 형성과 다양한 화두 제공하려"
"상식의 목소리 내는 음악을 잘하고 싶은 작곡가일 뿐"
젊은 날 사랑에 운 적이 있다면 이문세·임재범·인순이·김광석·신승훈·성시경·임창정·박진영·엄정화·김건모·조성모·김조한이 부른 사랑의 노래는 잠 못 드는 밤의 위안이었을 것이다. 기타라도 칠 줄 안다면 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는 떠난 이를 추억하며 부르기 딱 좋은 노래였다.
모두 작곡가 김형석이 만든 노래들이다. '나는 가수다'나 '복면가왕' 등에 등장한 그는 여지없이 푸근한 옆집 아저씨다. 하지만 그는 지금 세계를 강타하는 K-POP의 뼈대가 형성되는 199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대중음악사에 가장 많은 거름을 뿌린 이 가운데 한 명이다.
"피디라고 불리는 게 제일 좋다"는 그는 2018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음악 박람회 '미뎀'에서 아시아 대표 작곡가로 빌보드 아시아 지사장 '롭 슈월츠'와 연설했다. 2015년에는 현존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인 '폴 길버트'가 수학한 美 MI(Muscians Institutue)에 개설된 '김형석 클래스'에 출강해 미래 세계 음악 주역의 스승이 되기도 했다.
이런 이력도 대단한 것이지만 그를 주목해야 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 최근 큰 화두로 세간에 회자하는 '메타버스' 등과 관련한 그의 혜안이다. '소의 해'가 저무는 지난 27일 오후. 디지털 혁명 시대를 맞는 문화예술계의 앞날이 궁금해 김 피디의 작업실을 찾았다.
녹음실에 들어서자 중앙에 놓인 '태권V'가 손님을 맞는다.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운 악기며 미술 작품들의 조화가 이채롭다. 자리를 잡고 숨을 돌리며 음악 얘기로 한 순배를 돌렸다. 잠시 후 김 피디는 "제2의 빅뱅이 시작됐다"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제2의 빅뱅은 '메타버스'다. 이런 신세계는 미래의 모든 문화예술에 큰 변화를 줄 것이다. 혹자는 이런 변화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기우다. 오프라인 이외에 또 다른 거대한 시장이 생기니 얼마나 좋은가. 두 시장은 분리된 것도 아니다. 활용하기에 따라 가능성은 무한대다. 활동의 제한도 없어 누구나 도전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는 이런 가상 공간의 출현뿐만 아니라 예술 활동을 디지털에 담을 수 있는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토큰)가 모든 예술 분야의 융·복합을 촉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NFT는 블록체인 기반에서 구현된다. NFT로 생성된 예술 작품은 자산적 가치는 물론이고 확실하게 저작권을 규정할 수 있어 여러 면에서 좋다. 이런 점은 예술 분야의 다양한 융·복합을 촉진할 수 있다. 정확한 저작권료 분배가 가능하니 협업도 활발해질 것이다."
김 피디는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어떤 예술 분야도 단독 생존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예술의 장벽이나 구분이 모호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피디는 "'메디치 효과'라는 말처럼 '서로 다른 것이 모여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변화를 확정하거나 예단하는 것조차 무리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번뜩이는 김 피디의 통찰에 한방 머리를 얻어맞은 듯 아찔했다. '예술의 섞임, 단독 생존 불가' 등의 도발적 설명은 협박처럼 다가왔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AI가 인간의 역할까지 대체하는 건 아닐까.
"결론적으로 예술 분야에서 AI는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 물론 AI는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돌이켜 보자. 이세돌과 AI와의 대국을. 한판이지만 이세돌은 창의적인 한 수로 AI를 꺾었다. 대국이 반복되면 AI는 이런 수도 분석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강점은 언제나 창의적인 또 다른 '파격'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피디의 열변은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삑사리 예술론'도 생각해 보자. 인간은 애초 불완전하기에 창의적이다. 이런 불완전한 존재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낳을 수 있다. 새로운 세계관과 스토리 텔링으로 체계화하는 예술 활동에서 '삑사리'를 낼 수 있고 '파격'적인 결정할 수 있는 건 오직 인간만이 가능하다. 또 예술의 화두는 언제나 시대정신이다. AI가 무슨 혜안으로 시대정신을 논하겠는가."
다시 가상세계 메타버스 이야기로 옮겼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라도 이를 감상할 상대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가상 공간은 모든 이에게 기회를 준다. 시공간을 초월해 세계적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메타버스다."
大작곡가의 디지털 세계 예찬은 끝이 없다. 메타버스, NFT로 이어지는 그의 식견이 놀랍다. 이런 새로운 디지털 생태계에서 활동할 그의 역할론이 궁금했다.
"이제 50대 중반이다. 사실 나와 내 또래는 젊은 세대처럼 가상 세계에서 24시간 사용자일 순 없다. 나는 어쩌면 중간에 낀 세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행운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많이 했다. 결론은 나와 우리 세대의 역할은 이런 미래 플랫폼을 구축하거나 이와 관련한 다양한 화두를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주안점을 두는 것이 있다.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될 수 있는 플랫폼에 대한 화두다. 부차적인 고민도 많다. 사실 나조차 대변혁의 시대를 예측하긴 어렵다. 어디까지 변할지 궁금하고 때론 두렵다."
NFT가 저작권의 관리 신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NFT는 그 자체로 원작자와 수요자의 직거래를 가능하게 한다. 사용 이력도 기록할 수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현재의 저작권 신탁방식의 변동은 불가피하다. 저작권자가 저작권 단체에 작품을 신탁하고 저작권료를 분배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의 저작권 신탁방식은 오프라인 분야에 있어선 더 확장되거나 정밀해질 것이다."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그의 미술 분야에 대한 식견도 놀라웠다. 그저 책이나 귀동냥으로 얻은 내공은 아닐 터다. 그는 사실 120여 명의 여러 분야 아티스트가 참여한 '아트펌팩토리'의 수장이다. 성공한 유명 작곡가가 낯선 미술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건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술시장은 독특한 카르텔·보수·폐쇄·독점적 구조가 똬리 튼 곳이다.
"디지털은 폐쇄적이고 전통적인 구조를 깰 수 있는 몇 안 되는 중요한 수단이다. 개인적인 인연으로 중국 작가인 웨민쥔(岳敏君, Yue Minju)의 한국 독점권을 맡게 됐다. 웨민쥔은 세계 경매 시장의 양대 산맥인 美 '소더비'에서 최고가로 작품이 거래되는 세계 유명 현대 미술가다. 그의 전시를 위해 국내 굴지의 미술관, 갤러리와 미팅을 가졌는데 그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당신이 왜? 이 작가를 핸들링하지?'라는 것이었다. 사실 충격이었다. 이런 폐쇄적인 시장에서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라고 낙담도 했다."
김 피디는 "이런 우연한 미술과 만남을 계기로 여러 작가와 인연이 쌓이기 시작했다. 고구마 같은 이런 인연의 줄기가 현재의 '아트펌'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아트펌에는 팝아트·파인아트·그래피티·사진 등 다양한 분야 아티스트들이 함께한다. 처음엔 그저 좋은 정보를 나누는 동아리였지만 여러 작가가 함께 만든 NFT 작품이 플랫폼에서 완판되는 것을 보며 '아! 이게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고상우·찰스장·이세현·노준·천대희·김민경 작가 등의 작품 수백 점의 에디션이 솔드아웃된 것이다." 이런 성공으로 '밀크' 가상화폐 발행사인 '키인사이드'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분야의 작가들이 모여 작업을 하니 불협화음이 있진 않을까. "모든 예술가는 비슷한 철학적 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공통분모는 교류의 끈이다. 재미있는 점은 서로 분야가 달라 오히려 라이벌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에겐 이런 협업에 어려움이 있다. 음악 외에 현대 미술사나 조류도 알아야 하니 곤란할 때도 있다. 답은 매일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그는 NFT 콘텐츠의 성패를 위해선 기획사의 중요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초기 시장이라 여러 면에서 좌충우돌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기획사의 역할론이 필요하다. 기획사는 특히 단순한 중간 매개자가 아닌 '액셀레이터'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김형석 피디는 작곡가 이전에 '노느니특공대엔터테인먼트'를 이끄는 비즈니스맨이다. 메타버스나 NFT 등 디지털에 대한 깊은 성찰은 자신의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에 적용됐다. 그에게도 가장 중요한 화두는 역시 메타버스와 NFT다. 그는 메타버스 내에서 활동할 가상 플레이어인 사이버 밴드를 준비 중이다. 사이버 밴드 #402호(사공이호)는 MZ를 겨냥해 다양한 콘텐츠로 탄생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엔 국내 정상급 음악 프로듀서, 스토리텔러, 아트디렉터, VFX프로듀서 및 제작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MZ세대의 불안함이나 '언더독' 정서를 차용해 세계관과 커뮤니티를 연동할 것이다. 이들의 일상생활이나 악기 연주, 공연 실황 등은 전부 디지털화된다. 이 IP는 NFT와 메타버스 사업의 원천이다. 세계관을 하나의 유니버스로 정립해 디즈니플러스 등 OTT에도 출품할 계획이다. 물론 이런 모든 콘텐츠의 최종 종착지는 NFT다."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후배 뮤지션에 전하는 고견도 아끼지 않았다. "음악을 잘하기 위해선 스케일, 화성, 리듬 등 모든 것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마치 언어를 습득하듯이. 어떤 면에서 음악은 기술 종목이다. 실력이 있어야 생각도 표현할 수 있다. 나중엔 창의력이지만. 특히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어떤 협업으로 나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줄까'하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외부와의 교류도 필요하다. 인문학적 견문까지 넓힌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창작 영역은 결국 인문학적 성찰에서 비롯된다."
김 피디는 평소 생각을 숨기지 않는 타입이다. 민감해 보이는 정치 소신이나 활동도 숨기지 않아 때론 곤욕도 치렀다. 'MB 블랙리스트'에 올라 복면가왕에서 하차한 사건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최근엔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 후보의 아내인 김건희 씨의 사과 동영상에 깔린 그의 작품 'I believe'에 대해 "사용을 허하노라"라는 코믹한 멘션을 날려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는 혁명보다는 혁명가를 좋아한다. 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에 움직인다. 나를 보통 진보 쪽 사람이라고 한다. 사실 내게 진보 건 보수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정치가도 아니다. 그저 음악을 잘하고 싶은 작곡가다. 그러기에 세력을 모을 필요도 없다. 그동안 SNS를 통해 논란이 된 여러 이야기는 사실 지극히 상식적인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였다. 이런 말들이 때론 왜곡되고 확장됐다. 엄청난 정치적 견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올 한해 어땠는지 물었다. "올해 제일 잘한 일은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제일 잘못한 일도 사업을 시작한 일이다. 제일 기대하는 일도 사업이고 제일 걱정하는 일도 사업이다." 너털 웃음이 이어졌다.
그는 10년 후 은퇴를 꿈꾼다. 그가 말하는 은퇴 후는 음악만 할 수 있는 때를 뜻한다. 과거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김형석 피디는 가수 임재범의 노래를 듣고 "마치, '나만 가수다'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삽시간에 시중에 퍼져 유행어로 회자했다. 두어 시간의 인터뷰 끝 김형석 피디에 대한 촌평으로 패러디한다면 한마디로 "마치, '나만 디지털 전문가다'라는 느낌?"
"I Believe 나에게 오는 길은 조금 멀리 돌아올 뿐이겠죠."
그가 쓴 불후의 명곡 'I Believe' 가사다. 그가 말하는 디지털 세상이 '빅뱅'처럼 왔다. 어떤 이에겐 '조금은 멀리 돌아올지도' 모른다. 미지의 새로운 우주에 선구자로 발을 디딘 김형석 피디. 그가 말하는 신세계에서 신명나게 예술혼을 펼칠 예술가들을 상상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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