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하면 가스관 불용화하나

김당 / 2021-12-24 10:08:10
우크라이나는 왜 유라시아의 화약고가 되었나③ 에너지 무기화
러-독일 직통 천연가스관 둘러싼 '수 싸움'과 '에너지 무기화'
블링컨, '러'의 우크라이나 침공시 직통 가스관 '불용화' 으름장
러시아에서 벨라루스, 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가스관'의 가스 공급이 나흘째 중단됐다. 당장 유럽은 러시아발(發) 난방비 폭등과 가스 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사가 카라(Kara) 해에서 유정 테스트를 하고 있다. [가즈프롬 홈페이지]

러시아는 유럽연합(EU) 가스 수요의 40% 정도를 공급하고 있으며, 야말-유럽 가스관은 러시아 가스의 유럽 수출을 위한 주요 수송로 가운데 하나다.

야말(Yamal) 반도는 러시아 북쪽 끝의 핀란드 옆 위치한 툰드라 지역으로 서유럽 전 지역이 50년간 쓸 수 있는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말-유럽 가스관을 이용하는 러시아와 폴란드 간 장기 가스 수송 계약은 지난해 종료된 뒤 연장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Gazprom)은 야말-유럽 가스관의 수송량을 지속적으로 줄여오다가 지난 21일부터 공급을 중단했다.

다만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는 다른 수송로인 브라더후드(Brotherhood)와 소유즈(Soyuz) 같은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과 발트해 해저를 관통해 독일로 연결되는 '노르트 스트림(Nord Stream)' 가스관 등은 정상 운영되고 있다(아래 러시아-유럽 잇는 가스관 루트 지도 참조).

러시아, 21일부터 4개국 통과 '야말-유럽 가스관' 공급 중단

가즈프롬은 노르트 스트림 가스관을 통해 하루 1억7천만㎥,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을 통해선 하루 1억900만㎥ 정도를 유럽으로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가스공급을 제한하면서 유럽 내 가스 가격은 고공행진을 계속해 심리적 경계선인 1천㎥당 2000달러 선을 훌쩍 넘어서며 연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번 사태 전까지는 지난 10월의 1900달러가 사상 최고가 기록이었다.

이에 유럽에 본격적으로 겨울 추위가 닥치면 천연가스를 이용하는 전력 생산 차질로 인해 블랙아웃(정전 사태)이 일어나고, 난방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가즈프롬은 유럽 소비자들의 구매 신청이 줄었기 때문에 야말-유럽 가스관을 통한 가스 공급을 줄였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설명한다.

▲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을 방문해 러시아 최대 규모의 열생산 시설인 1만1800MW 용량의 복합 사이클 가스 터빈 장치가 가동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가즈프롬 홈페이지]

블라지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연례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유럽의 가스 값 급등은 러시아 때문이 아니라면서도, 서방에서 제기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과 관련해선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안보 보장을 서둘러 제공하라고 촉구했다.

푸틴은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면 우크라이나에 나토 무기가 배치될 것"이라며, 나토의 안보위협론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EU 내에선 러시아가 지난 9월 완공한 발트해 해저 관통 러시아-독일 직통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에 대한 독일과 EU 당국의 가동 승인을 압박하기 위해 가스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즈프롬이 100% 지분을 보유한 '노르트 스트림2' 가스관 주관사인 '노르트 스트림2 AG'는 지난 9월 초 독일 당국에 가스관 가동 승인 신청 서류를 제출했으나 승인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독일 당국은 지난주 말 노르트 스트림2이 내년 상반기까지 승인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 우크라니아와 틀어지자 발트해 경유 우회 가스관 개발

▲ 러시아-유럽 잇는 가스관 루트 [Nordstream 2-사실과 신화]

이처럼 우크라이나 문제의 해법을 어렵게 하는 또다른 장애는 미국∙EU∙러시아∙우크라이나에 걸쳐 있는 '에너지 무기화'를 둘러싼 신경전과 신경제안보 이슈이다.

미국과 EU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계기로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부여해 왔다. 하지만 전 세계가 에너지 대란으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는 가운데 러시아가 '에너지 무기화'를 꾀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유럽은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의 최대 천연가스 수출대상 지역이다. 소련은 1960~1970년대부터 천연가스 수요가 높은 서유럽에 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등 동유럽의 제3국을 경유하는 통과수송관을 건설했는데, 특히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은 그중 2/3가 통과하는 핵심 통로였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2000년대 초부터 친(親)서방 행보를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가스 공급 가격과 가스관 통과 수수료 등을 고리로 러시아와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천연가스를 중간에서 가로채고 있다는 의혹을 꾸준히 제기하며 2005~2009년에 수차례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을 잠그는 강경 대응을 취했고, 그로 인해 가스 수급에 차질이 생긴 독일을 비롯한 다수 유럽 국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우회하는 가스관 건설을 통해 수급의 안정성을 도모하고 기존의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의 역할을 축소∙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도 안정적인 가스 수급을 위해 추가 가스관의 건설 필요성에 공감했다.

▲ 러시아-독일 직통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2(Nord Stream2)는 지난 9월에 완공되었지만 가동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즈프롬 홈페이지]

그 과정에서 '노르트 스트림', '투르크 스트림' 등과 같은 발트해와 흑해를 경유하는 대안 루트들이 만들어졌다. 특히 2011년부터 가동된 '노르트 스트림'은 연간 550억㎡의 공급 용량을 가진 러시아-독일 직통 가스관으로 양국은 해당 가스관의 건설과 운용 과정에서 그 효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2014년 크림 사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가스 공급가격을 80% 인상하자 우크라이나는 불합리한 장기 가스 공급계약의 갱신을 요구하며 20억 달러에 달하는 가스대금 체납액 지급을 미뤘다. 이에 같은해 6월부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공급을 중단했다.

미국,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구실로 반대하지만 속내는?

이처럼 크림 사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간의 갈등이 깊어진 가운데 독일-러시아 양국은 2015년 '노드스트림'의 쌍둥이 가스관 건설, 즉 러-독 직통 파이프라인 '노르트 스트림2' 프로젝트 추진에도 합의하게 된다.

하지만 해마다 러시아에서 발트해를 따라 독일로 최대 550억 입방미터의 천연 가스를 가져오도록 설계된 '노르트 스트림2' 사업은 착수 단계에서부터 이해 당사자들로부터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우크라이나는 '노르트 스트림2'로 인한 자국 경유 100억㎡ 공급 가스관의 영향력 축소와 막대한 통과 수수료(연간 20~30억 달러)의 손실을 고려해 해당 사업 추진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폴란드를 비롯한 다수 동유럽 국가들도 가스 물류 비용 증가 등의 이유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러시아가 유럽을 잇는 파이프라인을 증설한 이후 천연가스 공급량 조절로 유럽을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는 국내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같은 국책 연구기관에서도 제기하고 있다.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인포그래픽

미국은 해당 사업이 러시아의 유럽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에너지 압력 수단을 강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유럽의 안보를 약화시킬 것이라며 반대했다.

즉, 노르트 스트림 2가 완성되면 유럽의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져 러시아가 유럽에 압력을 가할 수 있고, 기존의 우크라이나 가스관을 사용하지 않게 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거였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2019년 12월 해당 사업에 대한 제재를 부과함으로써 공정률 93.5%를 기록하며 순항하던 가스관 건설은 장애물을 만나 좌초할 위기에 봉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스관 건설에 관여하는 선박 제재를 담은 '유럽 에너지 안보 보호법'이 포함된 2020회계년도 국방수권법에 서명한 것이다.

이에 당시 메르켈 독일 총리와 러시아는 "노르트스트림2는 EU의 주요 5개 에너지 그룹이 각각 최대 9억5천만 유로를 투입한 파이낸셜 프로젝트로 유럽의 장기적인 에너지 안보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면서 미국이 정치적인 이유로 상업적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노르트 스트림2 AG'는 누리집에 '사실과 신화' 코너를 만들어 "노르트 스트림2가 유럽을 러시아에 더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러시아와 유럽은 서로 상호 의존적이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또 유럽의 가스 시장 모니터링 데이터를 제시하며 "유럽의 가스 시장은 지난 10년 동안 공급자가 더는 혼자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수 없는 구매자의 시장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러시아가 가스관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오히려 순수한 상업적 파이프라인 프로젝트가 러시아를 악마화하고 다른 천연가스 공급 또는 운송 솔루션을 홍보하거나 보호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인 이유로 공격을 받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 20억 달러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노르트 스트림2'만으로 유럽의 가스 수요를 충족하거나 우크라이나 경유 공급량을 대체할 수 없으며 우크라이나 경유관은 계속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즈프롬측은 "2018년에 2,000억m3 이상을 유럽(비EU 국가 포함)에 공급했는데 그 중 870억m3가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공급되었다"면서 노르트 스트림2가 연결되면 우크라이나가 모든 운송량을 잃는다는 것은 잘못된 가정이라고 덧붙였다.

'나쁜 거래'라던 미국이 독일과 뜻밖의 합의문 발표한 배경

▲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Gazprom)은 야말(Yamal) 반도에서 앞으로 100년 이상 가스 생산 작업을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가즈프롬 홈페이지]

트럼프 행정부 당시 미국은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로는 '노르트 스트림2' 문제를 셰일 가스 생산을 계기로 가스 순수출국으로 전환한 자국의 유럽에 대한 가스(LNG) 수출 확대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한 측면이 컸다.

바이든 정부도 비슷한 맥락에서 전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해 지난 5월 '노르트 스트림2' 사업에 대해 경제제재를 부과했다. 제재에 앞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 파이프라인을 "나쁜 거래(bad deal)"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유럽과의 갈등을 회피하려는 형식적인 제재에 그쳤다는 분석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당시 메르켈 총리의 반발을 샀고 지난 6월 제네바 미-러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추어 지난 7월 21일 미국과 독일 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원, 유럽 에너지 안보와 우리의 기후 목표 달성에 관한 공동선언"이라는 합의문을 발표한 것은 '뜻밖의 결정'이었다.

양국 간 합의의 골자는 미국은 '노르트 스트림2'의 완공을 양해하고, 그동안 부과된 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향후 러시아가 에너지(가스)를 무기화할 경우 독자적·집단적 제재 부과를 지지하고, 동시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과 패권 유지를 위해 트럼프 시기 이완된 동맹 네트워크의 복원을 모색해온 바이든 행정부가 유럽의 핵심 동맹국인 독일에 상당한 양보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독일은 관련국의 반발을 감안해 공동선언에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적 통일성에 대한 지지를 명문화했다. 또한 양국은 2024년 이후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의 운용에 대한 지지, 우크라이나의 녹색 에너지 전환을 위한 10억 달러의 기금 조성 같은 지원책들을 명시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상호의존의 지렛대'는 하나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연일 '노르트 스트림2'를 거론하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블링컨 장관의 언급은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바이든에게 노르트 스트림2'에 대한 제재 철회를 요청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조건부'로 이를 수용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즉,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 '조건부'는 없던 일로 된다는 얘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러시아의 돈줄인 '직통 가스관'을 잠글 수도 있다는 신호인 것이다.

(참조 문헌: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Gazprom) 및 노르트스트림(Nord Stream)2 누리집 자료,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 및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의 러시아∙우크라이나 관련 기사, 미국과 독일의 'Nord Stream2' 합의가 주는 교훈(장세호-오일석), Nord Stream2 건설의 배경과 완공 가능성(정선미) 등 논문)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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