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탄두 '넘버3'였던 우크라이나, '핵무기 포기'가 아니라 '장물' 판매 "우크라이나(Ukrine)에 가면 밭 매는 김태희를 도처에서 볼 수 있다"라는 철 지난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우크라이나에 미녀가 많다는 뜻이다.
이 농담은 시대착오적일지 모르지만, 지금도 포털에서 '우크라이나'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미녀'가 뜬다. 그다음 연관 검색어는 '러시아'이고, 요즘은 '전쟁'이 연관 검색어로 부상하는 중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에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만큼 가까이 와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외신은 물론 국내 언론에서도 내년 1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전쟁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보도되고 있다.
올렉시 레즈니코프(Oleksii Reznikov)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최근 '애틀란틱 카운슬'에 '유럽의 미래는 우크라이나에서 결정된다' 제목의 기고문을 싣고 "크레믈린궁을 다루는 유일한 현실적인 방법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리는 모스크바에 새로운 공세의 대가가 너무 높아서 고려할 수 없도록 확신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워싱턴 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의 한 정보 보고서는 러시아가 궁극적으로 이르면 이번 겨울 대규모 침공에 대비한 17만5000명 정도의 병력을 국경으로 이동시킬 수도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대명천지에 전쟁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예고되고, 일국의 국방장관은 국제사회에 침략에 대비한 지원을 호소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크라이나가 왜 유라시아의 화약고가 되었는지를 "형제 러시아(brother Russia)"와의 관계, 핵무기와 국가안보,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과 푸틴의 '레드 라인',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에너지 무기화 등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공국'은 러시아의 뿌리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러시아와 슬라브 민족의 발원지이다. 7세기 초부터 사방으로 분산해 이동하던 슬라브 민족 가운데 동슬라브 민족이 세운 최초의 봉건국가가 키예프를 중심으로 형성된 키예프 공국(Kyiv Rus)이다.
북부 발트해(Baltic Sea)에서 남부 흑해까지, 동부 볼가(Volga)강에서 서부 티사(Tisa)강에 이르는 지역을 영토에 편입한 키예프 공국은 그리스도교를 수용하고 비잔틴 문화를 도입해 문화적으로도 크게 융성하게 된다.
하지만 키예프 공국은 1223년부터 3차례에 걸쳐 몽골군의 침입을 받고 1240년에 멸망하게 된다. 이후 몽골 지배를 피해 많은 인구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동북부로 이주하면서 현재의 모스크바 지역이 슬라브 민족의 중심 지역으로 부상하게 된다.
키예프 공국이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러시아, 벨라루스 3국의 모태로 간주되는 배경이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에는 누가 키예프 공국의 적자(嫡子)인지에 대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후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지역에는 몽골,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 지배기를 거치면서 러시아인, 벨라루스인과 구별되는 우크라이나인의 독자적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어 16~17세기 우크라이나인 코작(Cossacks) 집단은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황제와 페레야슬라브 협정을 체결(1654년)하게 된다.
이 협정은 코작 집단의 자치를 인정받는 조건으로 러시아의 보호를 받는 것에 합의한 협약으로, 이를 두고도 러시아 학자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귀속된 것으로 해석하는 반면에, 우크라이나 학자들은 단순한 군사동맹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핵무기, 냉전 해체로 '서방 향한 창검'에서 '장물'로 둔갑
우크라이나는 볼세비키 혁명 이후 소비에트연방(소련)에 가입했으며 1954년 소련 정부는 페레야슬라브 협정 300주년을 기념해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이양했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하면서 1991년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연방을 탈퇴했다.
이때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이 서방을 향해 전진 배치했던 핵무기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176기의 핵미사일과 1804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러시아와 미국 다음의 '넘버3' 핵강대국이었다.
냉전 시기 서방과 인접한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맞선 바르샤바조약기구(WTO)의 군사거점이자 그 자체가 서방을 향한 창검이었다. 연방의 일원인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에도 핵무기가 배치되었지만 우크라이나가 단연 수위였다.
구체적으로 1804개 가운데 1240개는 탄도미사일 SS-24 46기(1기당 핵탄두 10개씩 장착), SS-19 130기(1기당 핵탄두 6개), 그리고 나머지 564개는 크루즈미사일에 장착해 장거리 폭격기로 실어 나르게 돼 있었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하자 1994년 12월 미국, 영국, 러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 등이 체결한 '부다페스트 안보보증 양해각서'(Budapest Memorandum on Security Assurances, 이하 양해각서)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모든 핵무기를 포기했고, 핵무기 해체의 대가로 경제적 지원과 안전 보장을 약속받았다.
이런 사실 때문에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이어 최근에 다시 전쟁 위기가 고조되자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한 대가로 강대국들이 안전을 보장한 양해각서가 '종잇조각'이 됐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선 양해각서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벨라루스, 카자흐스탄도 함께 체결한 것이다. 즉, 우∙벨∙카 3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하는 대가로 미∙영∙러 3국이 우∙벨∙카 3국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위협, 무력 사용에 대한 안보 보증을 약속한 양해각서인 것이다.
사실 우크라이나 핵무기는 옛 소련군 연합기동 부대가 관장해 오다가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지자 급거 철수하면서 팽개친 '버려진 물건'이었다. 비유컨대, 소련의 해체로 독립국이 된 우크라이나에게는 자고 일어났는데 마당에 '장물'이 떨궈진 셈이다.
소비에트연방을 구성했던 15개 독립 국가들이 소련의 붕괴로 심각한 혼란에 빠져든 혼란기여서 러시아는 '버린 물건'을 회수하고 싶었지만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위험한 장물'을 놓고 치열한 수싸움을 전개했다. 러시아는 원소유권을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원소유권자는 러시아가 아닌 소련임을 내세워 연방의 일원이었던 자국에도 연고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NATO는 혼돈기의 러시아에 '위험한 장물'의 관리를 맡기는 게 꺼림칙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위험한 장물'을 언제 팔아먹을지 모를 우크라이나에 맡겨 둘 수도 없었다.
그래서 블랙마켓을 통한 테러리즘에 이용될 가능성을 염려한 미국과 영국이 중재에 나서 러시아 및 우∙벨∙카 3국과 함께 부다페스트에 모여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물론 공짜가 아니었다. 미 클린턴 행정부는 핵무기 소유권 이전이 아닌 관리 차원에서 120억 달러의 보상금을 내걸고 '장물' 회수 작업에 나섰다. 미국은 3억 달러의 우크라이나 민생 안정기금도 약속했다.
이렇게 해서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핵무기는 국제기구 감시하에 러시아로 운반돼 해체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즉,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안보 보장 약속을 믿고 핵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돈을 받고 '장물'을 넘긴 것이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법적 구속력 없는 메모랜덤
문제는 이후 1999년 러시아에 과거 소련 붕괴는 잘못된 것이고 러시아는 1991년에 독립을 쟁취한 14개 국가들을 다시 편입해야 한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등장했고, 반대로 우크라이나에는 2004년 오렌지 혁명을 거치면서 친(親)서방 정권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소련 붕괴 이후 폴란드∙체코 등 동유럽 국가를 NATO로 끌어들인 미국은 2004년에 발틱 3국과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나머지 동유럽 국가들까지 나토에 가입시켰다. 이렇게 되자 불안해진 우크라이나는 인근 조지아와 함께 나토 가입이 절실하게 되었다.
그런데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친서방 반정부 시민운동)이 발발하자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로 도주하면서 러시아에 군사지원을 요청했고, 이때 푸틴 대통령은 정규군 대신 민병대를 침투시키는 이른바 '회색지대 전략'을 통해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크림반도를 빠르게 장악해 주민투표를 거쳐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러시아 처지에선 우크라이나 정부가 NATO 가입 신청 등 친서방 노선을 공식화하자, 러시아가 60년 전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우크라이나에 이양했던 전략적 요충지를 다시 빼앗은 것이다.
크림반도의 항구도시 세바스토폴 특별시(러시아 측은 세바스토폴 연방시)는 러시아 흑해 함대의 주둔지로 유명하다. 시리아 내전 당시 러시아 지원 무력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또한 러시아는 이때 친(親)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2개주(도네츠크주, 루간스크주)의 분리독립을 배후에서 지원하면서 우크라이나는 끝없는 내전으로 빠져들게 된다. 1만3000명 이상의 사망자와 난민이 속출한 이 내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4년 5월 당시 반군 점령지역(2개주의 40~45% 면적, 주민수 320만 명)은 러시아의 비호 아래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강행해 자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 및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PR) 정부를 수립한 상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와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서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약속했던 미국과 영국은 민병대를 앞세운 푸틴의 '회색지대 전략'에 제대로 된 군사적 대응도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당해야 했다.
양해각서는 "유럽안보협력회의 최종의정서의 원칙에 따라 기존 국경에서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을 존중한다"(제1조),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에 대한 위협이나 무력 사용을 자제한다"(제2조) 등으로 돼 있다. 서명국에 대한 군사 지원의 법적 의무를 부과하진 않고 있다.
이때와는 반대로 미국이 인권 문제로 벨라루스에 제재를 가하자 벨라루스 정부는 미국의 제재가 양해각서 3조("유럽안보협력회의 최종의정서의 원칙에 따라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의 주권에 내재된 권리를 보장하고 자국의 이익에 종속되도록 고안된 경제적 강요를 삼간다")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스크(벨라루스) 주재 미국대사관은 보도자료를 내 "이 양해각서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동유럽의 인권 침해에 대한 조치와 양립할 수 있다"고 답했다. 미국 정부도 밝혔듯이, 무엇보다도 이 양해각서는 국제협정이나 국제조약이 아닌 '메모랜덤'이어서 당사국에 의무를 강제하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다.
양해각서의 서명 당사국인 미국∙영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에 항의하며 비자 발급 중단과 해외자산 동결 등 외교·경제적 제재 카드로 압박했지만 푸틴은 꿈쩍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의지는 한층 강해졌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서두르는 것도 양해각서만으로는 안보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레드 라인', 즉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으로 간주하고 있다.
푸틴은 나토가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거나 러시아 국경 인근에 무기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법적 구속력 있는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EU는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안보 논의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한편 EU 정상들은 16일(현지시간) 유럽의회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지지를 거듭 강조한다"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군사적 침략은 막대한 결과(massive consequences)를 초래할 것이며, 그에 대한 대응으로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러시아에 경고했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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