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거짓말과 유머로 위로하는 구멍 뚫린 마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1-07-07 12:44:56
윤성희 여섯 번째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
상처를 지닌 이들이 견딘 시간의 결과 무늬
유머와 무심한 태도로 아픔을 그리는 배경
"우리는 너무 정색을 하고 사는 것 같아요"

윤성희의 소설을 대할 때는 정색을 하지 말 일이다. 요가할 때처럼 온몸에 힘을 빼고 복잡한 생각도 머릿속에서 덜어버리고 활자를 따라 눈과 마음을 편안히 맡길 일이다. 죽음과 상실과 아픔에 덜컥덜컥 걸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과거의 일이므로, 작중 화자들이 대부분 명랑하고 무심한 편이므로 그냥 다시 이야기를 따라가면 될 일이다. 그렇게 단편 하나를 다 읽고 나면 가슴 한 켠이 묵직해지면서 따스한 온기가 올라오는 듯하고, 다시 현실로 눈을 돌렸을 때 읽는 이의 고통과 불우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가벼워질지 모른다. 

▲ 2016년부터 써 온 단편들을 모아 새 소설집을 펴낸 윤성희. 그는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는 동안 빨려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구멍들을 들여다보았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윤성희가 5년 만에 단편 11편을 모아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문학동네)을 펴냈다. 이번 소설집을 두고 어느 후배는 '다크 버전'이라고 놀렸다는데, 실제로 편편에는 '센'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첫머리에 배치된 단편 '여름방학'부터 간단치 않다. '병'자 돌림 오빠들을 따라 지은 '병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화자는 퇴직하던 날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아버지가 목을 매 죽은 이후로 내겐 두려울 게 없었다. 그때 나는 열아홉 살이었고, 말린 단풍잎을 책갈피로 쓰던 여고생이었고, 오 남매 중 막내였지만, 침착하게 부엌칼을 가지고 와서 아버지의 목을 죄고 있는 끈을 잘랐다. 시체가 된 아버지의 머리가 마룻바닥에 부딪치는 순간 이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겁나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센 화자의 상처를 윤성희는 저렇게 담담하게 서술한다. 오빠는 살인자가 되었고, 결혼할 뻔했던 남자와는 그의 어머니가 '발랄하고 구김 없는' 며느리를 얻고 싶어해 헤어졌다. 후일 아내를 잃은 그 남자가 찾아와 같이 도시락 싸서 공원에 놀러가자고 했을 때 여자는 조용히 말했다. '그러지 마요.' 분수대 물줄기에 옷이 젖는다. 그녀는 말한다.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었다. 속옷이 비칠 것이다. 누가 보면 어때. 나는 창피해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여름방학 때는 누구나 물놀이를 하는 법이니까.' 어린시절 그리 들뜨던 여름방학을 인생에서 다시 한 번쯤 맞아야 되는 건 아닐까. 꼭꼭 여며두었던 자신을 풀어주고 용서해주고 사랑할, 그런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 아닐까. 

 

윤성희는 "등단 초기부터 제 소설에는 '위로'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는데 한때는 그 말이 부담스러웠다"고 후기에 썼다. 전화로 만난 그는 사람들 마음속에 뚫린 구멍들을 이번에는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쓸 때는 몰랐는데 묶어놓고 보니 확실히 센 이야기가 많긴 해요. 구멍이 뚫린 인물들을 너무 많이 다루어서 그 인물들의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던 거 같아요. 예전 같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의 아픔 같은 것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알고 있던 저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나, 그런 것들을 좀 더 질문하고 들여다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김승옥문학상(2019)을 안겨준 단편 '어느 밤'에는 아파트 단지에 방치된 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져 구조를 기다리는 노파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자신을 발견한 청년과 구조대가 오기까지 대화를 나누며 지난 생을 반추한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이 알기로는 우물에 빠져죽었는데, 사실 엄마는 찬장 안쪽에 약을 숨겨놓고 늘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엄마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동생과 사라졌다. 청년은 넘어져서 누워 있는 노파를 보며 뺑소니차에 죽은 여동생에 대해 말한다. 그 후로 그는 모든 것이 허무해서 사람들에게는 고시 공부중이라고 거짓말을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안한다고 했다. 노파는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든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청년에게 '지금은 술래를 피해 얼음이 된 거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곧 누군가 땡하고 외쳐줄 거라고, 얼음땡 놀이란 그런 거라고' 말해주었다. 청년도 말한다. '조금 있으면 구급대원이 도착할 거예요. 그러면 제가 땡이라고 말해줄게요.' 

고통스럽고 암담한 상황에서도 윤성희표 유머는 빛을 잃지 않는다. 노인들 대상 마술수업 첫날 선생님은 '마술에서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유머'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노파는 이제는 조금 알 것만 같았다고 윤성희는 쓴다. 윤성희표 작품들은 '소설에서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유머'라고, '마술'을 '소설'로 대치해도 무리가 없다. '얼음땡'이라는 유머는 기실 이 단편이 부리는 마술인 셈이다. 윤성희는 "유머는 시간을 거친 자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라면서 "슬픈 일을 겪은 사람들도 그 당시에는 경황이 없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제 소설을 보면 회상도 많고 긴 시간을 다룰 때가 많잖아요? 늘 시간에 대해 생각해요. 소설 속 주인공이 시간을 통과한다는 것은 결국 유머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죠. 신인 시절부터 생각한 부분인데 유머를 많이 넣으려고 하지만 요즘은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다시 열심히 유머 코드를 가동시켜 보려구요."

 

표제로 사용한 단편 '날마다 만우절'은 윤성희표 소설의 정점이다. 거짓말과 위로와 유머가 적절한 비율로 배합돼 간단치 않은 여운을 남긴다. 아버지와 싸우고 몇 년 간 말도 하지 않던 고모가 어느 날 떡을 보내온다. 수상히 여긴 아버지가 고모를 만나러 내려가는 길에 어머니와 나까지 동참한다. 고모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그래서 오빠 생각이 났다고 말하다가 거짓말이라고, 다들 속았다고 깔깔댄다. 그런 거짓말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태세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나게 된 사연의 이면을 털어놓고, 어머니는 다시 아버지의 허를 찌르는 그 이야기의 다른 이면을 발설한다. 아버지는 오늘을 '해마다 거짓말을 하는 가족의 만우절'로 삼자고 말한다. 그 말에 힘입어 고모가 '똑똑하고 빈틈없다고 말한' 조카인 나도 어떻게 결혼 직전에 남자에 배신당했는지, 어떻게 분풀이를 했는지 거짓말처럼 참말을 말한다. 결국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두의 이야기는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소설이라는 '거짓말'의 기능은 무엇일까.

 

"진짜를 말하려면 에둘러가는 길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소설이란 결국은 큰 길로 가는 게 아니라 샛길로 가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다시 샛길로 가다가 고속도로는 아니지만 겨우 국도 하나 발견하는 거라면, 샛길의 역할이 거짓말 같은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우회하는 길을 선택하면 꼬불꼬불하고, 거짓말이니까 길을 잃으면 어떠냐 싶기도 하고, 그래서 진심과 거짓 반반씩 섞으면 어때 하는, 저는 늘 조금 이런 생각 하거든요. 모든 사건이나 현상을 우리는 너무나 정색을 하고 대하는 거 같아요. 이렇게 조금 에둘러도 가고 다르게도 생각하고 길을 잃기도 하고, 정답이 없다고도 생각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윤성희는 "소설이란 그렇게 쓸모가 있는 장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썼다. [문학동네 제공 ©Jung Meenyoung] 

 

'블랙홀'에는 마을회관 화투판을 뒤집고 잔치판 먹거리에 농약을 타 살인미수로 수감되는 어머니가 나온다. 왜 지극히 평범하던 그녀가 그리 잔인한 실수를 하게 됐는지, 윤성희는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고 남은 가족들의 상태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고 했다. 누구나 마음속에 뚫린 구멍들을 지니고 있을 터이지만, 미세한 차이로 그 구멍이 드러내는 결과는 달라진다. 딸은 어머니 면회를 가면서 마당에 침을 뱉을 때의 표정 대신 다정하게 아이스크림을 권하던 어머니 모습을 애써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지방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안락사시켜 감옥에 간 '스위치'의 삼촌은 늘 이렇게 말했다. '스위치 같은 거야. 그렇게 이상한 놈이 되는 건. 버튼 하나로 왔다갔다하는 거지. 그러니 스위치를 잘 켜고 있어야 해.' 


이밖에도, 장례식장에서 연애를 도모하는 '네모의 기억', 뼈가 부러지는 것과 죽음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게 해주는 '여섯 번의 깁스', 눈꺼풀 하나만 들어 올려도 폭죽이 터질 처지의 식물인간 아이에게서 역설적으로 위로를 받는 '눈꺼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기약 없는 생을 살면서 아무도 미워할 수 없는 밤을 맞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밤' 등이 이번 소설집에 진설된 메뉴다. 윤성희는 "노년의 화자들은 살아온 내용이 켜켜이 쌓여 있어 쓰기 좋았다"면서 "이제는 좀 가벼운 이야기를 당분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윤성희의 '무심한 위로'는 계속된다.

 

"큰 상처도 무심한 듯 말하는 건, 주인공들이 이미 그 시간을 견뎠기 때문이 아닐까요.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른 후 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세계'가 궁금해서, 그래서 무심한 듯 일부러 쓱쓱 그리는 걸 겁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