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염무웅 "공정과 정의는 누구를 위한 욕망인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1-07-01 09:43:54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 펴낸 문학평론가 염무웅
미구에 닥칠 인류의 지옥을 대비하는 태도 탐색
'86세대'와 '2030세대'를 보는 안타깝고 미안한 시선
"터무니없는 자들이 공정과 정의를 욕망 달성에 이용"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 원로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누구의 어떤 발언이든 진영으로 편을 갈라 훼손하고 묵살해 버리는 탓이 크다. 여러 갈등으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신뢰할 만한 묵직한 목소리는 절실하다. 원로 문학평론가 염무웅(80)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이 팔순에 접어들어 최근 산문집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창비)를 펴냈다. 


산문집은 계간 '창작과 비평'의 초기 주역으로 한국문학 현장에서 대형 신인을 발굴하면서 고락을 함께 해온 문인들에 대한 회고(1부), 문학예술을 사회현실과의 연관 속에서 살핀 다양한 기고문(2부), 냉전 분단 통일 북한 등을 연구한 국내외 저작들에 대한 독서칼럼(3부) 등으로 구성됐다. 표제는 독일 음유시인 볼프 비어만(1936~)의 발언에서 빌려왔다. 

이념의 조국인 동독으로 넘어가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던 볼프 비어만은 '머릿속에서 구상한 낙원을 억지로 지상에 건설하려는 것은 지옥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뒤늦게 깨달은 뒤, 이념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를 막기 위해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서서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비어만의 발언은 작금 한국사회에도 곱씹어 적용할 만하다. 문학과 현실의 긴밀한 관계를 예술로 승화하는 리얼리즘 문학의 최전선에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온 그를 만났다.

▲팔순을 맞아 산문집을 펴낸 원로 문학평론가 염무웅. 그는 "지구의 환경과 인간의 현실이 지옥으로 화하지 않도록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은 이 세상 어디에 사는 누구라도 공유하는 게 옳다"고 썼다. [문재원 기자]


-근년 들어 한 시절 이상을 추구했던 이른바 '86세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들이 들린다. '머릿속 낙원을 억지로 건설하려는 것은 지옥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비어만의 발언이 이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

"86세대 중에서도 정치권에 진출해 그야말로 명예도 권력도 얻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기득권이 된, 상층부에 오른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눈에 띄는 게 그런 사람들이라 그렇지, (지난시절 민주화운동을 했던 이들 중에는) 낙오되고 죽은 이들도 있으며, 정신적으로 이상해지거나 육신이 고장난 사람들이 더 많다. 내가 늘 가슴 아픈 것은 운동이 치열할 때 동참하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면서 미안한 감정을 가졌던 사람들이 끝내 좋은 일을 하는 경우들을 볼 때다. 그들은 결국 그 나름의 양심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평생을 걸어야 하는 길을 찾았는데, 오히려 초장에 옳은 소리를 하고 자기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뒤로 갈수록 못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86세대 전체를 싸잡아서 비판하는 건 옳지 않다는 말씀인가.

"그렇게 생각한다. 비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비판해야지, 심각하게 더 썩은 이들이 작은 불공정이나 부정에 대해 떠드는 건 목불인견이다. 이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거의 99퍼센트의 소시민들이 일상적으로 검불이나 티끌 같은 잘못을 저지른다. 그것의 천배 만배 잘못을 저지르는 자들이 공정과 정의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공정이라는 기준은 공정하게 적용해야 한다.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사람들은 검불이나 티끌도 비판할 수 있지만, 터무니없는 자들이 그걸 비판하면서 자기들 욕망 달성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행태는 용납할 수 없다."

 

-왜 이상을 추구했던 이들의 초심은 오래 가지 못할까.

"자기 성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서 읽은 명심보감에 '하루라도 선(善)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惡)이 저절로 일어난다(一日不念善 諸惡皆自起)'는 글이 있다. 좋은 생각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그 다음날 그 옳은 생각을 기준으로 똑같이 사는 게 아니라 오늘의 욕망에 따라 또 다른 삶을 산다. 우리는 늘 타락의 가능성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한 번 깨달음에 이르고 한 번 자기 희생적인 좋은 일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그냥 한 번일 뿐이다. 늘 성찰해서 매일 새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다. 불교에서도 '문득 깨달아도'(頓悟), '끊임없이 닦아나가야'(漸修)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으면 도로 돌아간다."


염무웅은 이번 산문집에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부정적 외피 자체가 아니라 외피 안에 들어 있는 순수한 영혼들의 불타는 갈망이며 그것을 찾아내어 북돋고 키워야 한다"면서 "청년들은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체가 되어 그렇게 해야 하고, 또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어른들에게 강하게 협조를 요구해야 한다"고 썼다. 그는 나아가 "소수의 승리자와 절대다수의 패배자들로 구성되는 사회를 구조적으로 혁파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실력에 맞게 기득권체제에 맞서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년들에게 "불의에 대한 저항 없이는 자아의 실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깨달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즈음 이른바 2030세대의 보수화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2030세대가 정말 그러한지, 욕망에 휘둘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기성세대가 그렇게 만들었다. 제대로 취업하고 안정되게 먹고 살기 위한 것에 너무 간절하고 촉박하게 목을 매달고 있어서, 그들에게 뭐라고 똑바로 정신 차리고 살아라 말하는 것이 너무 미안한 마음이다. 안심하고 먹고 살도록 만들어주고 그런 말을 해야 하는데… 소련 해체 이후 먹고 살기 위한 살인적인 경쟁 때문에 옛 체제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꽤 있다고 한다. 브레즈네프 시대까지는 강제로 주어진 직업은 있었지만 당장 먹고 사는 걱정은 안 해도 됐으니까. 어느 쪽이 더 무서운 지옥일지 모른다. 강제가 더 지옥인지, 경쟁이 더 지옥인지."

 

-우리는 어떤 '지옥' 앞에 있는가.

"우리 앞에 놓인 최대의 지옥은 기후 위기, 생태 위기 같은 지구의 미래다. 이미 회복할 수 없는 분기점을 지났다고도 하고, 아직 여유가 좀 있다고도 하는데 우리가 합심해서 지구의 위기를 극복하는 건, 상당히 힘들다고 본다. 전문가들 견해에 따르면 여섯 번째 지구의 대종말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다섯 번에 걸쳐 지구의 생명이 자연재난 때문에 멸종됐다고 한다. 이번 위기는 급속한 산업화로 인간이 자초했을 가능성이 크다. 50여년 후에 탄소제로시대를 이루어도 이미 회복 불가능할 거라고 한다. 우리 개인들은 언젠가 죽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맞긴 어렵지만 담담하게는 맞이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류 전체로도 다가오는 종말을 담담하게 맞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종말의 과정이 순탄해야 된다. 지금 관찰할 때는 급격한 종말이 올 것 같다. 그게 지옥이다. 빈부 격차와 양극화는 얼마나 급속하게 진행됐는가. 인류의 0.1퍼센트만이 거대 부를 갖고 나머지들은 종처럼 빈곤 속에 살아가는 약육강식의 세상이야말로 진짜 지옥이다."


염무웅은 속초에서 태어났다. 3·8선이 그어진 이후 북쪽에 속한 속초에서 살던 그의 부친이 남쪽, 그 중에서 경북 봉화의 깊은 산골 '춘양'으로 식솔을 데리고 남하했다. 그의 둘째 외삼촌은 강릉에서 취직해 살다가 전쟁이 터지자 부모를 찾아 간성으로 올라갔고, 부모는 외아들을 찾아 내려왔다가 이산가족이 됐다. 매형은 해방 후 속초에서 일본인 교사들이 물러간 학교에서 교장을 맡았다가 수복 후 부역자로 몰려 평생 직업도 못 가지고 살았다. 작은 아버지는 아버지와 이념적으로 갈라서서 월북했다. 분단의 상처를 지닌 수많은 가족 중 일원인 그가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각별하게 기울일 수밖에 없는 조건인 셈이다. 2005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 당시 6·15민족문학인협회 남측 대표단 단장도 맡았다. 

▲2024년 개관 예정인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으로 재임 중인 염무웅은 "이미 수집해 쌓여 있는 자료를 정리하고 보존하는 데 필요한 예산 확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재원 기자]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통일의 열망을 자제해야 한다고 썼다. 어떤 배경인가.

"지금 상태로 통일되면 한반도는 어마어마한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체제다. 남한은 욕망이 들끓고, 북한은 남한 식의 자유나 욕망을 경험해보지 못한, 어떤 면에서는 무균사회에 가깝다. 이런 체제가 합쳐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양쪽 물의 압력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가운데 반투명 막을 거치해서 걸러야 한다. 남쪽이 가지는 미덕이 북으로 스며들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고, 보기에 따라선 봉건적으로 볼 수 있지만 북쪽의 전통적 미덕들, 그밖의 순수한 때묻지 않은 마음 같은 게 오염되지 않으면서 이쪽으로 천천히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남쪽이든 북쪽이든 어느 쪽에 의해서든 일방적인 통일은 절대 안된다. 북쪽이 쑥대밭 된다는 건 남쪽 전체가 쑥대밭 되는 거나 마찬가지다."


춘양에서 초등학교 6년을 보내고, 다시 공주로 이주해 그곳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경향신문 신춘문예(1964)에 문학평론이 당선돼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뒤 1967년부터 '창작과 비평' 편집에 참여, 백낙청이 미국에 박사논문을 마치러 떠난 1969~1972년까지는 홀로 '창비'를 만들었다. 이 기간에 황석영의 '객지'나 신경림의 '농무' 같은, 대형 작품을 발굴해 게재하는 성과도 이루었다. 이들처럼 후일 대성한 경우는 아니더라도 최창학 김춘복 최민 같은 많은 신인들에 문제작 발표의 기회를 주었다. 이후 1979년까지 창비에서 주간을 맡는 등 실무에 참여하다 덕성여대 교수시절 4년여의 해직 기간을 보냈고, 1980년 영남대로 자리를 옮겨 정년을 마쳤다.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초석을 다지는 중요한 시기에 문단의 최전선에서 복무했고, 엄혹한 시절에는 많은 문인들의 다감한 술친구였다. 이번 산문집 1부는 조태일, 천이두, 이호철, 김규동, 김용태, 김윤수, 채현국, 권정생 등을 추억하는 내용으로 꾸려졌다.

 

-리얼리즘 문학의 전방에서 중요한 소임을 수행했다. 회한은 없는가.

"잡지 일을 하다 보면 매일 문인들이 찾아와 술을 마시게 된다. 예전에 시골 문인들은 몇 달에 한 번 올라오지만 잡지 편집자 입장에서는 매일이다. 오면 그냥 보낼 수 없어 술을 마시게 된다. 원래는 술을 못하는데 그 일을 하면서 술꾼이 됐다. 90년대 들어 겨우 벗어났다. 그동안 술 때문에 읽고 싶은 책을 못 읽은 게 많다. 비평이론가라면, 이론과 사상의 깊이라는 게 단단하게 다져져야 하는데, 나름대로 틈틈이 읽고 생각하긴 했지만, 체계적으로 좀 더 깊이있게 못한 게 아쉽다."

▲염무웅은 문인들의 창작을 지원하고 문단 사랑방도 되살리기 위해 지난 3월 출범한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공동이사장을 맡았다. [문재원 기자]


지난달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이 선정된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으로도 재직 중인 그는 "고전부터 현대까지 망가질뻔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보존 처리해서 후손들에게 제대로 물려주자는 입장"이라며 "전시를 중시하는 관료들과 의견을 조율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도 벌써 7만5000점의 자료가 쌓여 있는데 이를 정리하고 보존할 인력이 부족한데도 정부의 예산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점도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팔순에 이르기까지 쉼없이 한국문학의 일선에서 복무하고 있는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 역할도 하고 있다.

양심수 시절 감옥에서 만난 이가 지어준 '익천'(益泉)이라는 호를 내세워 지난 3월 '익천문화재단 길동무'를 출범시킨 김판수(79·호진플라텍 회장)의 요청으로 이 재단의 공동이사장도 맡아 문단 사랑방을 되살리는 중이다. 서울 이수역 근처 '길동무'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언제든지 이곳에 들러 더불어 정담을 나누라"면서 "세상이 덜 시끄럽고 상식이 통하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맺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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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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