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굳지 않은 시멘트…학대 흔적은 굳어 평생 간다"

김광호 / 2021-02-17 10:10:12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 인터뷰]
"학대 가해자의 75%는 부모…가정 내에서 은폐 지속돼"
"지난해부터 학대 급증…코로나 사태 이후 경제난도 원인"
"학대 의심 징후 있으면 무조건 신고하는 시민정신 필요"

어른의 폭력 앞에 여섯살 아이는 무방비였다. 발견 당시 아파트 베란다에 철사줄로 묶인 상태였다. 가해자는 남이 아니다. 거긴 삼촌 집이었다. 아버지는 사고로 죽고, 어머니는 장애인이었다. 그래서 맡겨진 삼촌 집에서 아이는 굶고, 맞고, 방치됐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장이 전한 '하남 아동학대 사건'이다. 삼촌네는 아이 부모 재산에만 잔뜩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 주민의 신고가 아니었다면 아이는 진작 저세상으로 떠났을 것이다. 아동보호기관에 맡기고 "안심하라"며 돌아서는데, 고사리손이 옷깃을 붙잡았다. "여기는 삼촌이 못오는 거지요?" 가슴이 미어졌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충격적인 아동학대가 '정인이 사건'만은 아니다. 제2, 제3의 정인이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숱할 것이다. 끔찍한 아동학대 소식은 꼬리를 무는 중이다. 법망은 보다 치밀해졌다는데 어른들의 학대 광풍 앞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촛불처럼 위태롭다.

그렇게 분노하고, 처벌이 세지는데도 아동학대는 더 늘고 잔혹해지는 현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 회장은 UPI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사회의 총체적 무관심이 이런 괴물사회를 만들었다"고 개탄했다. "아동 학대 사례를 알고도 남의 집 가정사라며 고개를 돌리던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는 것이다.

이 회장은 아이들을 "굳지 않은 시멘트"에 비유했다. 그래서 "학대 흔적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24년 간 아동복지와 부모 교육을 강의한 아동문제 전문가다. 이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6일 서울 마포 협회 사무실에서 한 시간가량 진행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집계된 전체 신고접수 건수는 총 4만1389건. 전년 대비 약 13.7% 증가했다. 아동학대 사망자도 2014년 14명에서 해마다 늘어 2019년 42명을 기록했다.

▲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배근 회장이 16일 서울 마포 협회 사무실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아동학대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도 아동복지법 개정 이후 처음으로 아동학대 범죄 처벌규정이 생겼다. 이전에는 아동학대를 가정 문제로 치부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다가 2015년서부터 심각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학대로 사망한 아동의 75.6%의 가해자가 부모라는 점이다."

—도대체 어떤 부모들인가

"대다수가 경제적 어려움이나 부부간의 불화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정 내 문제들이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것이다. 특히 경제적 위기에 내몰린 가정일수록 가정불화가 잦고, 부모가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려 아이들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작년부터 아동학대가 더 증가한 것도 코로나 사태 이후 경제적 빈곤을 겪는 가정이 많아진 것과 무관치 않다."

이 회장은 "결국 가해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조기에 위기 가정을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 가정, 위기 가정을 찾아내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학대는 보통 형제·자매들 중 한 명에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그런 아이들을 미리 발견해서 부모로부터 분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기억에 남는 사례들이 있다면

" 2019년 3월 온몸에 골절상을 입은 뒤 발견된 생후 3개월 아이가 있었다. 의사 소견에 따르면 두개골, 흉부, 고관절 등 전신에 골절상을 입었으며, 영양실조까지 걸려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 경찰 조사 결과 양육부담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친모가 학대한 사건으로 드러났다. 다행히 학대 사실이 미리 발견돼 아이가 친모와 분리됐다. 그 덕분에 아이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

—관할 행정기관과 아동보호전문기관, 경찰의 협력체계가 제대로 작동 안 되는 것 아닌가

"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이 제정됐고, 68개 아동보호전문기관과 73개 학대피해아동 그룹홈이 설치되고 최근 전국 시군구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정인이 사건 이후엔 특례법이 보강되는 등 법이나 제도는 구색이 얼추 갖춰졌다. 그러나 아직 인프라가 부족하다. 전국 230여 시군구에 모두 아동보호기관이 있어야 하지만 아직은 기관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회장은 "특히 경찰(학대예방경찰관·APO), 시군구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네트워크가 공조가 잘 안 된다. 또 학대가 발견돼도 가정위탁시스템 등 구축된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UPI뉴스와 인터뷰하는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장. [문재원 기자]


—제도나 정책적인 부분에서 보완할 점은?

"아동학대는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아동학대 발생의 주원인이 부모의 어린 시절 학대받은 경험, 부모의 성격적 특성, 부적절한 부모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부모의 아동양육기술을 포함한 부모교육과 산전산후 예비부모 교육, 공교육기관의 부모교육 활성화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또한 빈곤과 실직 등 위기 가정에 대한 공적 부조의 확대와 지역사회의 아동 돌봄지원을 늘려야 한다."

—학대받는 아동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판단은 경찰과 전담 공무원의 몫이다. 최대한 빨리 신고를 해야만 학대받는 아동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폭행, 성폭력, 정서적 학대, 방임 등 다양한 학대에서 구원해주는 길은 주변에서 학대 아동에게 관심을 갖고 신고해주는 것 뿐이다."

이 회장은 "신고를 하면 혹여 해코지를 당할까 우려하지만 이제는 신고자가 법적으로 보호받도록 돼있다. 아직까지 아동학대 신고율이 20~30%밖에 안되는데, 어린이집 교사나 의사 등 신고의무자 외에도 시민들의 관심과 신고정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이들은 굳지 않은 시멘트와 같아서 학대를 한번이라도 받게 되면 어떠한 형태로든 흔적이 남는다. 평생에 무거운 짐이 된다. 이들이 성인이 되면 다시 아이들에게 학대를 반복하는 것이다. 요즘 같은 인구절벽시대에 아이들이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성장해 사회로 나가면 결국 우리 사회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회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학대를 받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주변의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학대 징후가 보이면 용기있게 신고해야 한다"고 재차 당부했다. "이같은 용기가 학대당하는 아이는 물론 학대 가해자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한말씀

"'어린이 한 명을 기르려면 온마을이 들고 일어나 힘을 합쳐야 한다'는 아프리카 격언처럼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별없이 국민적 관심을 갖고 보호하며, 우리 아이들을 밝고 씩씩하게 길러내야 할 것이다."

◆ 이배근은...

△ 용산고 △ 연세대 교육학 석사 △ 강남대 사회복지학 박사 △ UNICEF 조정관 △ Save the children 회장 △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겸임교수 △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 △ 국무총리실 아동정책조정위원 △ 서울시 아동학대사례 심의전문위원장 △ 여성가족부 청소년정책자문위원 △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2003~) △ 무궁화복지월드 상임이사(2015~) △ UN아동권리협약 한국NPO연대 회장(2019~)

 K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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