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집권 10년 동안 2019년 신년사만 '원전' 언급

김당 / 2021-02-01 17:45:48
문재인, '중재자' 자임한 2018년 '북원추' 의사 전달 개연성
김정은, 文 만난후 '원전' 언급…美와 '노딜'로 끝나고 사라져

1일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북한 원전' 검토 및 삭제 논란과 관련해 상반된 시각의 헤드라인 기사로 1면을 장식했다.

 

▲ 2019년 1월 1일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정은 위원장. 이때 처음으로 '원자력발전'을 언급했는데 발표 형식과 부드러운 이미지 연출에도 공을 들여 처음으로 자신의 집무실 서가에서 앉아서 신년사를 발표했다. [노동신문 캡처]


조선일보는 2019년 12월 1일 산업부 공무원이 삭제한 '북한 원전' 관련 17개 문건 가운데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 방안'(이하 '북원추'로 줄임) 문건에 대북지원 방안이 구체적으로 담겼다고 보도했다.

 

'북원추' 문건에 담긴 지원방안은 △과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경수로를 지으려던 자리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 △비무장지대(DMZ)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 △신한울 3·4호기를 완공해 북한에 송전하는 방안 등 세 가지이다.

 

앞서 SBS '끝까지 판다' 탐사보도팀이 공개한 검찰의 공소장과 '범죄일람표'에 따르면, 이 '북원추' 문건은 남북 1차 정상회담(2018. 4. 27, 판문점)과 2차 정상회담(2018. 5. 26) 사이인 2018년 5월 14일에 작성돼 2019년 12월 2일 01시 16분경에 삭제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감사원은 2020년 산업부 감사를 진행하면서 해당 문건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SBS '끝까지 판다' 탐사보도팀이 공개한 검찰 공소장의 '범죄일람표'의 '북원추' 관련 문건 


이와 관련 산업부는 31일 "아이디어 차원에서 만들어진 해당 보고서 안에 '내부 검토자료이고,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돼 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 공식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겨레는 복수의 여권 관계자를 인용해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이동저장장치(USB)에는 야당 주장처럼 '원전 건설 제안'이 아닌 '화력 등 전통적 방식의 발전소 건설 및 지원방안'이 들어 있었다고 보도했다.

 

즉 당시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장 1층에 마련된 환담장에서 '한반도 신경제구상'이 담긴 USB와 책자를 전달했고, '신경제구상'에는 화력 등 전통적 방식의 발전시설 건설 및 지원 방안이 포함된 대북 에너지 지원대책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두 기사가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착시현상'일 뿐이고, 두 기사의 사실관계가 서로 충돌하지는 않는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신경제 구상'이 담긴 USB를 건넨 시점(4월 27일)은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이 포함된 '북원추' 문건이 작성된 시점(버전 1.1은 5월 14일, 버전 1.2는 5월 15일)보다 20일 가량 앞선다. 문건 작성 시점상 USB에는 '북원추' 문건이 담길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북원추' 문건을 만든 시점이 산업부가 월성 원전 1호기의 경제성 평가가 나오기도 전에 '가동 중단' 방침을 정하고 밀어붙이던 때라는 점이다. '북원추' 문건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닌 '내부 검토'임을 인정하더라도 '내로남불'이나 '이율 배반'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물론 굳이 USB가 아니어도 구두로 의사를 전달할 수도 있으며, 그외도 '북원추' 문건을 북측에 전달할 기회와 수단은 많았다. 1·2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문 대통령의 특사단이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으며, 9월 평양 정상회담도 열렸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이다. 김 위원장은 2012년에 공식 집권한 이후 2013년에 첫 신년사를 발표한 이래 2019년까지 7회 발표했다(2020년은 2019년 연말부터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기간과 겹쳐 신년사를 생략했고, 올해 2021년 신년사는 '친필 서한'으로 대신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3년, 2014년, 2015년(맨위 왼쪽부터), 2016년, 2017년, 2018년(위 원쪽부터)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캡처]


UPI뉴스가 김정은 위원장의 7년치 신년사를 전수 분석한 바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원자력발전'을 언급한 것은 2019년 1월 1일 딱 한 번뿐이다.

 

김 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전력공업 부문에 대한 국가적인 투자를 집중하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라의 전력 문제를 풀기 위한 사업을 전국가적인 사업으로 틀어쥐고 어랑천발전소와 단천발전소를 비롯한 수력발전소 건설을 다그치고 조수력과 풍력, 원자력발전 능력을 전망성 있게 조성해 나가며 도, 시, 군들에서 자기 지방의 다양한 에네르기(에너지) 자원을 효과적으로 개발·이용하여야 합니다."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의 발언은 '어록'으로 기록되어 다양하게 변주된다. 실제로 2019년 신년사의 '원자력발전' 언급을 계기로 노동신문에는 '다양한 에네르기(에너지) 자원'을 거론할 때마다 이 어록이 반복적으로 실리곤 했다.

북한은 수력과 화력 발전소뿐인데 전력설비 노후화 등으로 전력이 절대 부족해 남측에 전력 지원을 최우선적으로 요청해 왔다. 만성적인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은 이로 인해 김일성 시대부터 풍부한 우라늄과 농축 기술을 활용한 원자력 발전에 관심을 보였다.

 

UPI뉴스가 입수한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작성한 '남북 경제협력 추진방안과 협상전략'(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월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해 5월 남북 경협의 중요한 축으로 전력사업을 상정하고 △발전용 무연탄 지원 △북한의 노후 발전소 성능 복구사업 지원 △소용량 화력발전소 지원 △남한 전력의 대북 송전 △북한내 송배전 시설 확충 등을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당시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대북 전력지원을 '중대 제안'으로 북한측과 협상해 6자회담에서 도출한 합의에 핵의 평화적 이용과 대북 에너지 지원을 포함시킨 바 있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김정은 위원장이 2012년 집권 이후 그동안 신년사에서 한번도 언급하지 않던 '원자력발전'을 하필 2019년 신년사에만 언급했는지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통일부도 2019년 당시에 이미 특별한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조명균 당시 통일부장관은 그해 1월 1일 밤 KBS 신년기획 '한반도의 미래를 묻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자리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전력난 해소 방안으로 '원자력 발전'을 거론한데 대해 "앞으로 비핵화 협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신년사에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해 주목을 받았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 '비핵화'를 구체적으로 지도자의 육성을 통해 밝힌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특히 이때는 발표 형식과 부드러운 이미지 연출에도 공을 들여 처음으로 자신의 집무실 서가에서 앉아서 신년사를 발표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2019년 이후로는 신년사나 당대회 등에서 원자력 발전을 언급하지 않았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비핵화 조건'과 함께 '북원추'도 사라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전직 국정원의 한 간부도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북원추'를 검토했을 개연성은 크다"고 말했다. 결국 남북 간의 소통이 원활했고 문 대통령이 북미 비핵화 협상의 '중재자'를 자임한 2018년에 비핵화를 전제로 '북원추' 문건이나 그런 의사를 김정은에 전달했다는 것이 '합리적인 의심'이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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