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운명이 한국계 유권자에 달렸다

김당 / 2020-12-18 17:49:40
미국 조지아주 상원 2석 결과에 따라 바이든 운명 좌우
바이든이 존경하는 DJ의 손자 김종대의 대(代) 이은 연대
공화당 한인 정치인들도 애틀랜타 가서 공화당 지원 유세

문재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지난 11월 12일 첫 전화통화를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통화 사실을 알리며 "앞으로 바이든 당선인과 코로나 및 기후변화 대응을 포함해 세계적 도전과제에 대처하기 위해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관저 접견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전화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두 정상 간 통화는 연결시간을 포함해 16분으로 알려졌다. 양측 통역 시간을 빼면 두 정상의 발언 시간은 8분, 문 대통령의 발언 시간은 4분으로 추산된다.

 

문 대통령은 4분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번이나 꺼낸 것으로 전해진다. 바이든이 김대중을 존경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일부러 꺼낸 계산된 발언이었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시절인 1983년 당시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과 교유하면서 그를 존경해왔다.

 

김대중에 대한 바이든의 생각은 2007년에 펴낸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Promises to Keep)〉에 담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대화에 잘 드러나 있다.

 

"당신 친구 김대중은 (나를 만났을 때)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나요?"(조지 W. 부시 대통령)

 

"노벨평화상을 받고 한국에 민주주의를 가져온 사람 말씀이죠? 그는 제 친구가 아니라 존경하는 사람입니다."(조 바이든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

 

상원 외교위원장과 부통령을 거쳐 지난 15일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된 바이든 당선인의 운명이 한국계 미국 유권자에 달렸다. 더 범위를 좁히면, 미 조지아주 주도인 애틀랜타시를 포함한 애틀랜타 메트로에 거주하는 한국계 미국 유권자에 달렸다.

 

애틀랜타 한인회 집계로 최근 메트로 애틀랜타(Metro Atlanta: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거주 생활권)의 한인 인구는 9만~10만 명으로 추산된다.

 

미국 동남부의 중심도시인 애틀랜타의 한인 사회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계기로 성장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기업과 한국인이 몰려들자 서울에서 룸싸롱 같은 유흥업소들까지 진출했을 정도다. 이후 인접주인 앨라배마 주에 현대자동차 공장이 들어서고, 조지아 주에 기아자동차 공장이 들어서자 그 협력업체 직원들과 방문객들이 늘면서 한인 사회가 2차로 확장되었다.

 

이어 최근 수년 동안은 LG, SKC 같은 한국 대기업의 사업장이 건설되고 대형 마켓 같은 편의시설이 한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들어선 가운데 한인 커뮤니티가 폭넓게 형성돼 한인 교회만도 300개에 이른다.

 

미국 동남부 6개 주를 관할하는 총영사관도 애틀랜타에 있다. 대한항공이 매일 1회 논스톱으로 대형기를 띄우니 한국을 오가는 교통편도 편리하다. 애틀랜타가 L.A와 뉴욕에 이어 한국인들이 영어를 전혀 못해도 일상 생활에 별로 지장이 없는 대도시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특히 최근 수년 간에는 애틀랜타가 기후가 좋고 물가가 싸고, 주택 가격은 뉴욕∙L.A의 절반이나 3분의1 수준으로 알려지면서 다른 대도시에서 집을 팔고 이주해오는 한인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한인 인구가 늘자, 애틀랜타 한인들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등록운동을 펼쳤다. 투표를 통해 한인 사회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11∙3 대선을 1주일 앞둔 10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은 '바이든 1곳만 팔 때…하루 3곳 뛴 트럼프, 3500㎞ 날아갔다'는 제목의 기사로 대조적인 선거운동을 부각시켰다.

 

▲ 지난 10월 27일(현지시간) 미국 대선을 1주일 앞두고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선거연설을 하는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 [AP 뉴시스]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은 미시간, 위스콘신, 네브래스카 세 곳에서 유세를 펼친 반면에,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는 조지아 한곳만 팠다. 이 네 곳은 4년 전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이긴 곳이다. 대선을 1주일 앞두고 트럼프는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와 네브래스카를 오가며 수성전을 펼친 반면에, 바이든은 공성전을 펼친 셈이다.

 

조지아주는 수십 년 동안 공화당 강세지역이자 남부 '선 벨트(sun belt)'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주다. 1992년 이후 빌 클린턴 후보(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준 적이 없다. 4년 전 힐러리도 트럼프에게 득표율 5.1%p 차이로 졌다.

 

하지만 바이든 선거캠프는 이 지역에 새로 유입된 젊은 인구와 흑인 투표율을 끌어올리고, 교외 거주 백인 중산층을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것이 D-7의 중요한 고비에 바이든이 하루 일정을 온전히 조지아에 쏟아 부은 배경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이 시간이 금인 마지막 주에 (트럼프의 텃밭인) 남부를 방문한 것은 도박"이라며 "조지아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한 결정은 선거판을 흔들어보자는 참모들의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전했다. 공영라디오 NPR도 "바이든이 공격 태세인 것은 분명하다"면서 "민주당은 올해가 마침내 이 지역에서 판을 뒤집을 수 있는 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민주당과 바이든은 조지아의 판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선거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 바이든의 1만4천표 차 역전 승리였다. 트럼프는 공화당 텃밭에서의 패배를 믿을 수 없어 공화당 주지사에게 3번에 걸친 재검표를 요구했다. 그러나 결과는 지난 7일(현지시간) 바이든의 1만2천표 차 승리로 최종 확정되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흥미로운 칼럼을 썼다. 그는 대선의 승패가 걸린 경합주이자 공화당 텃밭인 조지아에서 바이든이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을 기업 집중과 집값 안정, 그리고 고학력 젊은층의 집중이라는 인구 통계 특성에서 찾았다.

 

애틀랜타에 미국의 대표적인 물류기업(홈데포·델타항공·코카콜라)들이 위치해 있고, 고밀도 개발로 집값이 안정화되자 고학력의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든 덕분이라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고밀도 개발과 학위 취득은 함께 간다(Density and diplomas tend to go together)"면서 "고밀도 개발로 집값이 IT산업의 본거지인 샌프란시스코보다 20% 이상 저렴해져 대기업과 고급 인력이 지속적으로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캠프가 지난 3번의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조지아에 공을 들인 것은 인구 분포 변화에 따른 승산의 가능성을 읽었기 때문이다. 10만 명으로 늘어난 이 지역 한인 커뮤니티와 유권자 등록운동은 그런 인구 분포 변화의 중요한 한 축이었다.

 

게다가 한인 사회는 전통적으로 공화당보다 민주당 지지율이 높다. 미주한국일보가 지난해 6월 창간 50주년을 맞이해 실시한 '미주 한인 의식∙생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민권자의 지지∙선호 정당은 민주당 39.8% vs 공화당 16.5%으로 2배 이상 차이가 났다(지지정당 없음 40.6%).

 

지난 3번의 대선 기간에 메가 애틀랜타 한인 커뮤니티에 시민권자 5만 명이 새로 유입되었다면, 위 설문조사에 비추어 그중 2만 명은 민주당, 8천 명은 공화당 지지자로 추산할 수 있다(나머지 2만 명은 '지지정당 없음'). 1만표 차 승리에서 10만 명의 한인 커뮤니티가 바이든의 당락을 좌우한 '캐스팅 보트'이기에 충분한 까닭이다.

 

▲ 미 조지아주 한인 커뮤니티는 11.3 대선이 끝나자 마자 다시 내년 1.5 연방상원 결선투표를 위한 유권자등록운동 캠페인을 전개했다. 


어렵게 승리를 확정지은 바이든 당선인의 운명이 또 공교롭게 애틀랜타 메트로에 거주하는 한국계 유권자에 달려 있다. 지난 11∙3 대선과 함께 치른 상원 의석의 3분의 1을 새로 뽑는 선거에서 조지아주(2석)에서만 승패를 결정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4년 뒤에 다시 대선에 나올 거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바이든은 이번 대선에서 역대 가장 많은 득표수로 승리한 당선자가 되었지만, 트럼프 역시 역대 가장 많은 득표수를 얻은 패배자가 되었다.

 

트럼프는 여전히 막강한 지지세력을 가진 데다가 그의 영향력이 미치는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다. 고위공직자 인준과 탄핵 권한을 가진 상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을 유지할 경우, 바이든은 4년 내내 인사권을 제약받는 무기력한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공약으로 내건 '트럼프 뒤집기' 정책도 펼치지 못할 공산이 크다

 

민주당은 대선과 함께 치른 연방의회 상원 및 하원 의원 선거에서 하원은 가까스로 다수당을 유지했다. 하지만 전체 100석에서 35석을 새로 뽑는 상원에서는 공화당이 50명, 민주당이 독립당을 포함해 총 48명인 가운데 조지아주에서는 두 후보 모두 과반을 획득하지 못해 1월 5일 결선투표를 남겨둔 상태다.

 

현재 조지아주 상원의원 2명은 모두 공화당 소속이다. 지난달 선거에선 양당 후보가 과반을 획득하지 못한 가운데 1석씩 근소하게 우세했다. 공화당으로서는 결선투표에서 최소 1석을 이겨야 상원 다수당 자리를 지킬 수 있다.

 

결선투표에서 민주당이 모두 이기면 상원 다수당 자리를 탈환하게 된다. 의석수가 50 대 50 동률이 되지만 상원 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당선인)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은 백악관-연방상원-연방하원을 다 제패하게 된다.

 

이에 두 당은 상원 장악을 위해 조지아주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미 선거가 끝나자 마자 전·현직 대통령들까지 선거 운동에 올인한 상태다. 11∙3 대선에 이어 다시 애틀랜타의 한인 커뮤니티가 미국 정치권의 주목을 받는 배경이다.

 

현재 다급한 쪽은 다수당의 지위를 잃을지 모를 공화당이다. 최근 LA중앙일보에는 미셸 박 스틸 캘리포니아 연방하원 48지구 당선인(공화당)이 19일 애틀랜타를 방문해 조지아주에서 선거운동을 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캘리포니아주 연방하원 당선인이 자신의 선거구와는 동떨어진 애틀랜타의 한인회관에서 20일 한인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정견 발표 회견을 갖는 것은 조지아주 공화당 연방상원 선거캠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이날 행사에는 공화당 현역 상원의원들인 데이비드 퍼듀와 켈리 뢰플러가 모두 참여할 예정이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손인 김종대씨가 할머니 이희호 여사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김대중 평화센터 제공]


민주당 지지성향의 한인 커뮤니티에서 주목할 인물은 2017년부터 애틀랜타 근교의 클라크스턴(Clarkston)에 난민 청소년 교육 단체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Re'Generation Movement·이하 리젠)를 설립해 비영리단체(NPO) 활동을 하고 있는 김종대(34)씨다.

 

아내 최자현과 함께 리젠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전 국회의원의 장남이다.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이 딸만 셋이어서 사실상 장손인 김씨는 할아버지(김대중)와 할머니(이희호)가 돌아가셨을 때 영정사진을 품에 안은 손주로 각인돼 있다.

 

김씨는 할아버지 김대중이 미국으로 망명할 때 함께 온 아버지 김홍업이 미국에 체류할 때인 1986년에 태어났다. 8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은 앞서 귀국했지만 김홍업은 아버진 대신 인권연구소를 맡아 미국에 남아있을 때였다.

 

김씨는 1988년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초등학교까지 다녔으나 김대중의 손자라는 이유로 집단폭행을 당하는 등 학교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이에 중1 때 할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계기로 캐나다에 유학을 보냈고, 이후 미국으로 가서 카터센터가 있는 애틀랜타의 에모리대(Emory University)를 졸업했다. 에모리대 재학중 귀국해 군복무도 마쳤다. 할아버지는 그가 제대한 지 1주일 뒤에 돌아가셨다. 

 

졸업 후 에모리대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했으나 지금의 아내를 만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리젠을 설립해 동업자 겸 공동대표로 함께 다문화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을 '난민 2세대'로 정의한 그가 리젠에서 하는 활동은 크게 난민∙이민자 출신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 대화 공간의 제공, 그리고 평화 네트워크 활동이다.

 

▲ 김종대-최자현(맨오른쪽) 부부는 리젠의 공동대표로 함께 다문화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리젠 인스타그램 캡처]


특히 난민∙이민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 및 유권자 운동과 연관된 평화 활동은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명한 정치인의 손자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씨는 조지아주에서 난민과 이민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Coalition for Refugee Service Agency' 네트워크 일원으로 활동한다.

 

또 유권자운동의 한 방편으로 'Georgia Korea Peace Campaign'을 조직하고 'Korea Peace Now!'라는 풀뿌리 운동에도 참여하면서 상원∙하원의원 사무실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결의안과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설득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그가 상원의원 캠프에 들어가 본격적인 정당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문화 지원활동은 민주당의 정체성과 부합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외곽에서 범민주당 지원활동을 하는 것이다.

 

김홍업 전 의원은 "처음에는 안정된 직장을 관두고 NPO 활동하는 것을 걱정했지만 지금은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할아버지 대(代)를 이어 평화 운동하는 것이 대견스럽다"면서 "할아버지도 손자내외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친구(바이든)를 돕는 것을 보면 흐뭇해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당

김당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