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랜선여행] 국제친선전람관은 전시 지휘용 지하궁전?

김당 / 2020-11-27 15:51:35
김일성 "김정일 동지에게 줄 최대의 선물은 선물전시관"
"묘향산 암반 뚫고 지은 지하5층 궁전의 2개층은 비공개"
"평양-묘향산 고속도로는 인터체인지 없는 직통도로"

국제친선전람관에 진열된 선물의 수는 그때그때 다르다. 현재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에는 "140여개의 전시실들로 꾸려진 전람관에는 세계 188개 나라 당 및 국가, 정부수반들과 각계층 인민들이 삼가 드린 11만6천여점의 선물들이 대륙별, 나라별, 계층별, 년대별로 전시 보존되어 있다"고 돼 있다.

 

▲ 국제친선전람관의 외부와 내부 [우리민족강당 홈페이지]


하지만 북한의 과거 기록을 보면, 2006년까지는 김일성 선물관에 전시된 선물이 22만1411점, 김정일 선물관에 전시된 선물이 5만5423점으로 총 27만6834점에 이른 적도 있다. 당시 전람관 해설원들은 관람객들에게 "방이 많아 자칫 미로에 갇힌다"면서 "22만여점의 선물을 다 보려면 하루 8시간, 한점 당 1분씩 본다고 했을 때 1년 반 이상이 걸린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김일성 "김정일 선물만으로 묘향산 골짜기들 다 메우고도 남을 것"

 

국제친선전람관은 김일성 선물전시관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한 이후 김정일 선물이 늘어나자 전시관을 확장하고 정기적으로 또는 시대 상황에 따라 전시품을 변경해 진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일성은 1989년 6월에 전람관을 찾아 "김정일 동지에게 오는 선물을 밖에다 다 전시하자면 묘향산 골짜기들을 다 메우고도 남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전람관 확장공사를 하는 군인 건설자들을 직접 진두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내가) 김정일 동지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선물전시관이다"며 이렇게 말했다.

 

▲ 김정일 선물을 소개한 전람관 홈페이지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


"지금 나에게도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많은 선물들을 보내오고 있지만 김정일 동지에게 보내온 선물이 대단히 많다. 지금도 계속 보내오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 많을 것이다. 그것을 밖에다 다 전시하자면 묘향산 골짜기들을 다 메우고도 남을 것이다. 김정일동지 선물전시관을 직접 책임지고 건설하겠다."

 

김일성이 자신의 선물관을 지은 지 10여년만에 아들을 위해 별도의 선물관(별관)을 지은 것인데,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아들뿐 아니라 손자의 선물까지 별도의 전시실이 마련되었다.

 

2015년 8월 당시 전람관을 방문한 KBS 기자들에 따르면, 당시에는 186개국에서 보낸 선물 11만여점이 전시되었는데, 집권 3년 된 김정은 제1위원장에 대한 선물 전시실은 9개였다.

 

지난 5월 〈노동신문〉은 전람관에 새로 보충 전시된 선물 소식을 전했는데,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웬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 외에도 몽골, 시리아, 팔레스타인,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모리타니, 모잠비크의 국가수반이 보낸 선물들이다.

 

시기별로 본 묘향산 전람관의 선물 개요와 현황

 

김정일 선물관(별관) 건축 이후 북한의 책자와 기사를 기준으로, 시기별로 전람관의 선물 개요와 현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97년 〈조선관광〉(국가관광총국) 책자 기준

6층(높이 43.3미터) 연건평 2만8천평방미터. 본관(김일성 선물 10만점)과 별관(김정일 선물)

 

▶2000년 기준

174개국 국빈 선물 21만여점을 총면적 2만2천여평의 전시실 150개(김일성 100개, 김정일 50개)

 

▶2006년말 기준

김일성 선물은 179개국 22만1411점, 김정일 선물은 164개국 5만5431점(최대 건수)

 

▶2015년 8월 기준

186개국에서 보낸 선물 11만여점. 김정은 당시 제1위원장 선물 전시실도 9개

 

▶2020년 전람관 홈페이지 기준

188개 나라 당 및 국가, 정부 수반들과 인민들이 선물한 11만6천여점을 140개 전시실에 대륙별, 나라별, 계층별, 년대별로 전시 보존

 

▲ 국제친선전람관을 찾은 북한 학생들(2007년 8월) [조용경 블로그]


기자는 2000년 10월에 국제친선전람관과 향산호텔을 방문한 적이 있다. 174개국 선물 21만여점이 총면적 2만2천여평의 전시실 150개(김일성 100개, 김정일 50개)에 진열해 놓은 때였다.

 

평양의 기점인 김일성 광장에서 묘향산까지의 거리는 160km인데 당시 왕복 4차선 고속도로에서 마주치는 차량은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북한은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었다. 기자를 초청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에서 내준 벤츠 승용차로 숙소인 평양 양각도호텔에서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 계곡에 있는 전람관까지 2시간만에 도착했다.

 

4톤짜리 철문 열고 '지하궁전' 내부로 들어가보니

 

▲ 국제친선전람관(2호관) 정문 입구 [조용경 블로그]


6층짜리 콘크리트에 한옥 청기와 지붕의 본관과 2층짜리 별관으로 구성된 전람관의 정문 양 옆으로는 두 명의 위병이 지키고 서 있는데, 구리로 주물된 육중한 청동 출입문이 방문객을 압도했다. 높이 4m, 두께 10cm쯤 되는 철문의 무게는 4톤에 이르지만 여성들도 가볍게 열고 들어갈 수 있게 설계돼 있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람관 중앙 홀엔 김일성 주석의 실물 크기 밀랍상이 서 있다. 전람관 입장 때는 가방과 소지품을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 흡연은 물론, 전시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진 촬영도 불가이다. 내부로 들어갈 때는 오염되지 않도록 신발 위에 덧신을 신어야 한다.

 

전람관은 지상이 아닌 지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전람관은 나무를 하나도 쓰지 않고 지었지만 나무로 지은 것처럼 보이며, 창문은 하나도 없지만 있는 것 같이 보이는 특색 있는 건물로 실내온도를 연중 섭씨 20도 정도로 유지하고 빛과 습도를 자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한다.

 

관람을 마치고 오른 6층 전망대에서는 묘향천이 흘러내리는 묘향산의 계곡과 산을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향산을 전망할 수 있는 누대(樓臺)에 오르면 이곳에서 김일성 주석이 읊었다는 시(詩) '묘향산 가을날에'의 감흥에 잠기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북한 당국은 "절세위인들에 대한 끝없는 칭송과 흠모의 마음을 안고 국제친선전람관으로 수많은 참관자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선전한다. 평양의 만경대 혁명사적관과 마찬가지로 전람관에는 학생, 군인 등 단체 관람객들이 쇄도해 관람을 원하는 단체들은 하루 전까지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한다. 북한 인민에게는 전람관 관람은 일종의 '성지 순례' 코스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여행 플랫폼인 트립어드바이저에서도 국제친선전람관은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광명소 베스트 10'으로 기록돼 있다.

 

미국인의 '악의 축' 여행과 조용경 부회장이 본 '지하궁전'

 

미국인 스콧 피셔는 2007년에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북한과 이란, 이라크 3국을 여행한 경험을 〈악의 축 세계여행(Axis of Evil World Tour)〉이란 책으로 출간했는데, 피셔 씨는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예배당이나 이슬람 성전 비슷한 종교적 장소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썼다.

 

기자도 김일성 밀랍상을 보고 그런 느낌을 가졌는데, 기자보다 더 날카로운 시각으로 전람관을 관찰한 방문객도 있다. 포스코건설 부사장 등을 지내 건축물에 대한 안목과 식견을 가진 조용경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이다.

 

2007년에 방북한 조 부회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묘향산 지하궁전 국제친선전람관'이란 제목의 방북기를 남겼다. 방북해 전람관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이 관람기를 남겼지만 우상 숭배나 종교적 장소가 아닌 '전쟁지휘소' 같다는 소감을 남긴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에 기자는 조 부회장에게 왜 '지하궁전'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조 부회장은 근거로 두 가지를 들었다.

 

▲ 국제친선전람관 내부 [조용경 블로그]


첫번째 근거는 묘향산의 높은 산줄기 바로 아래에 입구 부분만 한옥 건물 형태로 만들고 나머지는 산을 파고 암반을 뚫어 지하에 5만평 5개층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중 2개층은 쓰지 않고 공개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전람관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들어가기 전에 카메라와 금속물질 등 일체의 짐을 보관케 하고, 전시물의 보존을 위해 사진촬영을 금지한다고는 했지만 그건 명목상의 이유일 뿐, 유사시 중요한 군사시설물로 사용될 장소의 보안을 위한 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근거는 평양~묘향산 직통 고속도로에 인터체인지가 없다는 점이다.

 

"평양에서 전람관이 있는 향산까지 가는 데 두 시간 남짓 걸리는데 원산으로 가는 분기점을 제외하면 인터체인지가 하나도 없는 이상한 고속도로였다. 그래서 이 지하궁전의 용도와 고속도로에 인터체인지가 없다는 사실 간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연관관계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 부회장은 이 두 가지를 근거로 '유사시 김일성·김정일 일가의 도피 및 전쟁지휘를 위한 지하궁전용으로 지은 건물'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평양~묘향산 고속도로에 인터체인지가 없다는 점은 기자도 미처 착안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람관의 '언터처블' 리무진과 전쟁기념관의 김일성 승용차

 

▲ 국제친선전람관에는 금주법 시대의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갱스터 영화 〈언터처블(The Untouchables)〉에 나올 법한 리무진 승용차들이 즐비해 있다. [국제친선전람관 홈페이지]


전람관에는 금주법 시대의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갱스터 영화 〈언터처블(The Untouchables)〉에 나올 법한 리무진 승용차들이 전시돼 있다. 스탈린부터 말렌코프와 불가닌까지 역대 소련 수상들이 김일성 수상에게 선물한 소련제 '지스'와 '짐'이란 리무진 승용차들이다.

 

조 부회장의 안목을 되새기니 기자가 전람관에서 봤던 김일성의 고급 승용차들과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6·25 전쟁 때 국군이 청천강변에서 노획한 김일성 승용차가 오버랩되었다.

 

기자는 6.25 전쟁 당시 6사단 7연대 1대대 1중대장으로서 압록강 초산까지 진격했던 이대용 장군(육사7기·예비역 준장)을 생전에 인터뷰한 적이 있다.

 

6사단 7연대는 북한군 침공 당시 춘천 옥산포 전투와 소양강 전투에서 북한군을 섬멸시킨 '춘천대첩'을 거두고, 며칠 뒤 충북 충주 인근 동락리에서 적 1개 연대를 궤멸시킨 정예 연대로, 6사단의 최선두에서 북진을 선도했다.

 

당시 6사단장은 뒤에 참모총장이 된 김종오 준장, 7연대장은 임부택 대령, 1대대장은 김용배 중령이었다. 김 장군은 참모총장 재임 중에 암으로 사망했고, 임 대령은 군단장 재임시 5.16 군사쿠데타에 반대해 집권 세력의 미움을 받아 고난을 겪었다. 김 중령은 7사단 연대장으로 부임후에 1951년 적의 박격포 사격에 전사했다. 3인 모두 6·25전사에 명장으로 기록된 태극무공훈장 수훈자들이다.

 

당시 북진한 7연대의 선두에는 김용배 중령의 1대대가 섰고, 1대대의 선두에는 역시 선임인 이대용 대위의 1중대가 앞장을 섰다. 최강 부대가 공격의 선봉에 서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다. 북진로 여기저기에서 북한군이 버리고 도주한 트럭들을 노획해 자체적으로 기계화 연대가 된 7연대의 1중대는 1950년 10월 22일 13시40분, 묘향산 기슭의 청천강 여울목 도하지점인 원참(院站) 마을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이대용 대위는 북한군과 그 지휘부의 당황한 심리와 패전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청천강 물속과 강변에 세단 22대, 트럭 70여대 등 100여 대의 자동차가 주인을 잃은 채 즐비하게 버려져 있었다. 당시만 해도 남한에서 세단 승용차를 타는 사람은 3부요인을 포함해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22일 국군 6사단 7연대가 평양 동북방 약 100km 지역인 청천강변에서 노획한 1948년 소련에서 생산된 ZIS-110 리무진 '김일성 승용차'. 이후 복원돼 현재 전쟁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전쟁기념관 홈페이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북한 최고위층이 도주하다가 버린 22대의 고급 승용차 중에는 김일성 승용차와 북한군이 전쟁 초기에 서울에서 노획해 간 주한 미국대사 무초의 승용차도 있었다. 7연대는 나중에 이 차를 무초 대사에게 돌려주었고, 김일성 승용차는 태평양을 건너는 우여곡절 끝에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었다.

 

그 직후 갑작스런 중공군의 개입으로 7연대는 뿔뿔이 흩어져 후퇴하는 쓰라린 아픔을 겪었지만, 김일성과 북한군 전쟁지휘부 역시 퇴패하면서 청천강 여울목에 타던 승용차까지 버리고 묘향산 기슭에서 산길로 도주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청천강은 중국의 '지정학적 저항선'이자 북한의 '심리적 마지노선'

 

그런 점에서 묘향산 기슭을 타고 흐르는 청천강은 여전히 중국의 '지정학적 저항선'이자 북한의 '심리적 마지노선'일 가능성이 크다.

 

안기부 대북공작원이었던 흑금성 박채서씨에 따르면, 중국은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자국 인민과 자산 보호를 명분으로 조선(북한)의 남포와 원산을 잇는 북위 39도선 이북을 중국 인민해방군이 무력 점령하는 이른바 '병아리(小鷄, 샤오지) 계획'을 갖고 있다.

 

동맹국인 미국과 한국 또한 비슷한 작전개념을 갖고 있다. 북한의 남침과 전면전을 상정해 '공세적 방어전략'과 대북 선제타격 및 무력통일 방안을 담은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7(OPLAN-5027)'에서도 원산~청천강은 작전 반경의 중요한 축선이다.

 

5단계로 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작계 5027'은 북한군이 전면 남침할 경우 방어 작전을 펼치는 한편, 3단계부터는 대규모 기동부대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을 공격하는 '전방방어전략(Forward Defence Strategy)'을 채택하고 있다.

 

과거 한미연합 UFL(을지 포커스렌스 훈련)이나 한미연합사 정치군사연습(Political Military Game)에서는 청천강~원산 축선까지만 진격할 것을 고려하는 미군과 4단계 격멸작전에 따라 청천강~원산 축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진격해야 한다는 한국측의 견해가 맞서기도 했다.

 

당시 한미연합사의 '폴-밀 게임'에 참여한 한 예비역 장성은 "5027 부록에 의해 미국은 청천강~원산 선에서 한·미 연합군의 진격을 멈추게 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은 이 축선 이상으로 진격하면 중국군이 참전해 세계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한미연합사는 해마다 실병 기동훈련을 통해 격년마다 '부록' 형태로 작계를 수정하는 등 작전 계획은 주변국 상황과 적의 전력 및 전략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한다. 군사1급비밀인 한미연합사 작계 내용은 알 수 없지만, 6·25전쟁의 경험과 중국군 '병아리 작계' 및 한미연합사 작계 5027의 얼개에 비추어볼 때 묘향산 기슭의 지하5층짜리 지하궁전은 유사시 김정은 전쟁지휘소로 쓰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음은 '묘향산 동굴 속의 국보급 골동품' 편이 이어집니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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