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인도적 체류자, 단순노무만 허용…취업제한 완화해야"

강혜영 / 2020-06-20 10:18:53
법무부 매뉴얼서 '취업 제한없다'지만 실제론 단순노무만 허가
난민 인정자와 달리 직업교육·노동상담 등 노동권 보장도 못받아
"고향에서의 경력이 뭐든 간에 한국에서 인도적 체류 자격으로 머무르고 있다면 단순노무 이외의 다른 직종 취업은  꿈도 꿀 수 없어요."

2018년 제주도로 입국한 30대 하일 씨는 예멘에서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한국에서 제약 관련 직종에 취업하고 싶었으나 인도적 체류자로 분류되면서 해당 분야 취업 길이 막혔다. 그는 2019년부터 천안의 화장품 생산 공장에서 단순 노동자로 일하다가, 1년짜리 계약만 체결이 가능해 올해 들어서는 김포의 페인트 생산 공장으로 옮겨 일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입국한 자밀 씨 역시 예멘에서 법학과 공학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인도적 체류 자격을 얻으면서 공사 현장의 단순 노동직밖에는 취업 선택지가 없었다. 올해 들어서는 서산의 공장에서 2~3개월간 단순 노동직으로 일하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와 함께 일하던 오마르 씨 역시 고향에서는 영어 교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 관련 분야 취업을 원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2018년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 난민 신청자 484명 가운데 대부분인 412명은 인도적 체류 자격으로 받고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난민 인정자와 마찬가지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으로 한국에 들어와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지만, 난민 인정자와는 달리 단순노무직종에만 종사할 수 있는 등 취업에 제약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직업훈련, 노동상담 등 각종 취업 지원 제도의 사각지대에도 놓여있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인도적 체류자에게도 난민에 준하는 체류 지위를 부여하고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2018년 12월 17일 오후 제주에서 체류하는 예멘 난민 심사 대상자가 체류 허가 신고서 작성을 마친 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2000여 명의 인도적 체류자, '단순노무' 직종으로 취업 제한

2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19년 8월까지 2만6000명에 대한 난민인정 신청 심사결정이 종료됐다. 이 가운데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사람은 총 2145명,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964명이다. 2018년에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 난민 신청자 중 단 2명만 난민 인정을 받았고 대부분 인도적 체류자 지위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

난민법 제2조 3호는 인도적 체류자에 대해 '난민에는 해당하지 아니하지만, 고문 등의 비인도적인 처우나 처벌 또는 그 밖의 상황으로 인하여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 등을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인도적 체류자에게 부여된 체류자격은 기타(G-1) 자격으로 매회 1년의 범위 내에서 체류기간을 연장받을 수 있다. 해당 체류 자격은 원칙적으로는 취업이 제한돼 있으나 난민신청자, 인도적 체류자 등은 체류기간 상한 1년 범위 내에서 허가를 받으면 취업이 허용된다. 난민법 제39조의 '법무부 장관은 인도적체류자에 대하여 취업 활동 허가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적 체류자가 실제로 종사할 수 있는 직종은 단순노무직으로 제한돼 있다. 법무부 매뉴얼 상으로는 취업을 할 때 사행행위 영업장소, 유흥주점 등을 제외하고는 직종 제한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비전문취업(E-9)에 해당하는 분야에만 취업을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자등록증 발급 또한 불가능해 자영업에 종사하지 못한다.

법무부 출입국사무소 관계자는 인도적 체류자의 취업 범위에 대해 "단순 노무 분야만 취업이 허용하고 있는 게 맞다"고 인정했다. 그는 "동남아 국가에서 한국어 시험을 어렵게 통과한 사람들이 겨우 비전문분야인 단순노무 직종에 일할 수 있게 되는데 난민 신청을 통해 인도적 체류 지위를 얻었다고 해서 얼마만큼 취업 범위를 허용하는 것이 맞는지 등을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난민과 같은 처지인데 취업 관련 지원도 전혀 못 받아

인도적 체류자는 취업 지원 등의 제도적 사각지대에도 놓여있다.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인도적 체류자는 직업연계∙상담∙직업훈련 등의 지원제도에서도 완전히 배제돼 근로계약서 미지급∙임금체불∙산업재해∙차별대우 등의 노동문제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으나 노동권에 대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19년 인도적체류자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인도적 체류자 42명 가운데 2명을 제외하고는 직업 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한 사람은 없었다. 노동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과거 임금체불, 산업재해, 퇴직금 미지급 등의 피해를 보았음에도 상담을 받지 못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김연주 난민인권네트워크 변호사는 "인도적 체류자는 단기간 단순노무직 취업을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한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장기간 정주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는 곧 생계와 안정적인 삶, 사회와의 통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현행 취업허가 절차를 개선하고 관련 정보제공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재정적 지원도 받지 않고, 각종 지원 제도에도 배제된다"며 "한국의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노동 상담, 직업훈련에 대한 연결이 필요며 난민 인정자들과 마찬가지로 모국에서의 학력, 경력 단절이 발생하지 않고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는 취업 기회 보장…"원칙적으로 취업 가능한 체류 자격 부여해야"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인도적 체류자에게도 직업선택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의 경우 난민 인정자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인도적체류자 지위에 해당하는 보충적보호자 모두 거주권을 부여받고 취업기회를 보장받는다. 취업허가도 불필요하며 취업, 자영업, 인턴쉽, 자원활동 등에 있어 법적 제한이 없다.

독일 역시 난민과 보충적보호자는 내국인과 동일한 조건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자영업도 포함된다. 취업교육 등 노동사무소에서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고 대학 등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다.

난민인권네트워크 측은 G-1 체류자격이라는 이유로 인도적 체류자들이 채용 연계를 거부당하는 등 체류 지위가 불안정하다며 우리나라도 인도적체류자에 걸맞은 체류자격을 신설하고, 난민 인정자에 준하는 처우를 보장해야 하고 강조했다.

김연주 변호사는 "인도적체류자도 안정적인 취업이 가능한 유형의 체류자격을 보장해야 한다"며 "난민 인정자에 대해 보장되는 학력 및 자격인정제도와 직업연계 및 직업훈련에 관한 정책에도 인도적 체류자를 포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KPI뉴스 / 강혜영 기자 kh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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