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안전사고에 당국 뒷짐…'박송희 규정' 마련하라"

권라영 / 2020-06-16 17:43:40
박송희 씨, 2018년 공연 조연출로 일하다 숨져
"관계자 항소 무책임…예술인 안전장치 시급"
2018년, 故 박송희(당시 23) 씨는 성악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다. 그는 졸업한 뒤에 독일 유학을 떠나려는 계획을 세웠고, 비용에 보태기 위해 경북 김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오페라 '달하, 비취오시라' 조연출직을 맡았다.

'달하, 비취오시라'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한문위)와 김천시, 김천문화예술회관이 공동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한문연)와 호남오페라단이 공동주관했다. 그러나 이 공연은 막을 올리지 못했다. 박송희 씨는 무대에서 일하다 약 7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2년이 흘렀지만 박송희 씨 사망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관계자들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천문화예술회관 무대감독은 유죄를 선고 받았으나 항소했고, 김천시 역시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80%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항소했다.

▲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故 박송희 씨 사고사망사건 항소취소 및 관련 기관들의 사과와 배상,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가운데가 故 박송희 씨의 사진. [권라영 기자]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故 박송희 씨 사고사망사건 항소취소 및 관련 기관들의 사과와 배상,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예술인연대,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서울경기인천강원분회,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문화예술위원회가 '故 박송희 씨 사고사망사건 해결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이번 기자회견을 주최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아버지 박원한 씨는 당시에 대해 "아침에 출근하면서 송희 방을 들여다보고, 잠결에 뒤척이는 아이에게 김천에서 잘하고 오라고 인사를 했다"면서 "부스스 눈뜨고 흔들어주는 손, 그것이 의식 있는 딸의 마지막 모습인 줄 꿈에도 몰랐다"고 울먹였다.

그는 "사고가 발생하고 난 뒤 오페라단 측에서 먼저 119를 불러 후속조치를 나름대로 한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지만, 그 당시 김천문화예술회관에 소속돼 있는 공무원들은 한 게 도대체 없다"면서 "중환자실에 찾아와서 죄송하다는 말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정말 책임감 있게 이 일을 처리해주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다면 법정소송까지 가지 않을 마음이 있다면서 최선을 다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면서 "그런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김천시청이나 한문연, 한문위 등 관계자들로부터 먼저 사과의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故 박송희 씨 사고사망사건 항소취소 및 관련 기관들의 사과와 배상,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故 박송희 씨의 아버지 박원한 씨가 발언하고 있다. [권라영 기자]

예술인연대 권용만 대표는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말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인간"이라면서 "잘못했다고 판단해준 법원의 결정에 오히려 항소하는 김천시청의 행위는 부끄러움과 염치를 모르는 짓"이라고 강조했다.

신정욱 전국대학원생노조 지부장은 "노동자에게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면서 "작업 중에 노동자가 일부 실수를 하더라도 본인이 안전하게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이 사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최소한의 안전교육도 없고, 장치도 없고, 수칙도 없는 작업장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사과하는 사람도 없고 재발방지대책에 대한 논의도 없다는 점"이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되물었다.

김주현 전 국립오페라단 음악감독은 1988년 서울대학교에서 공연 준비 도중 사고로 숨진 성악과 학생을 언급하며 "30년 동안 더욱 민주화됐고 고도화된 우리 사회는 그때보다 더 처참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의 문화예술회관은 운영과 제작이 분리돼 있으며, 한낱 대관시설에 불과하다"면서 "사고를 예방하지도, 보상하지도 못하고 단지 책임이 없는 사고만 존재한다"고 꼬집었다.

▲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故 박송희 씨 사고사망사건 항소취소 및 관련 기관들의 사과와 배상,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권라영 기자]

이날 비대위는 관련 기관들이 박송희 씨와 유가족에게 사죄할 것과 예술가들에게 안전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안전수칙을 담은 '박송희 규정'을 만들 것 등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김천시는 재판 결과에 승복하고 항소를 취소하라", "한문연은 무대 위 사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 "한문위는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보상하라"고 외쳤다.

박원한 씨는 "바람이 있다면 우리 딸아이와 같은 이런 사건, 사고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고, 만약에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면서 "우리 송희의 사고를 기점으로 해서 무대에 서는 모든 분들이 안전에 대해서는 전혀 부담 갖지 않고 공연에만 열중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KPI뉴스 / 권라영 기자 ry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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