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과 탈북민에 대한 공세 임박했음 보여주는 신호탄일까
'인간쓰레기 탈북자 찢어죽이라'…탈북민들, '낙인효과' 우려
일당독재 국가인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노동당원들과 주민들이 밑줄 쳐 가며 읽는 '국정 교과서'이다. 그 노동신문이 북한이탈주민(탈북민)에 대한 분노와 비난으로 도배를 했다.
지난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인 김여정의 담화 이후에 벌어진 현상이다.
그다음날인 5일 나온 노동당 통전부 대변인 명의 담화에서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제1부부장이 경고한 담화"라고 명시한 데서 알 수 있듯, 김여정 제1부부장은 사실상 통전부장으로서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남공작이 포함된 대남사업을 전담하는 통전부의 대변인은 담화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은 5일 대남사업 부문에서 담화문에 지적한 내용들을 실무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검토사업에 착수할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면서 "우리도 남측이 몹시 피로해 할 일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차(이제 곧) 시달리게 해주려고 한다"고 위협했다.
앞서 김여정은 담화에서 "있어야 시끄럽기밖에 더하지 않은 북남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한 북남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두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현재 통일부는 코로나19 여파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인력을 철수한 채 전화로만 북측과 교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북측이 관련 조치를 취할 경우 전화 교신부터 폐쇄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실제로 8일 오전에 개성공동연락사무소에서 남측 전화를 받지 않았다.
노동신문은 6일자 1면에 '우리의 최고존엄을 건드린 자들은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평양시당위원장 김영환'의 격문과 함께 평양종합병원 건설장 및 김책공업종합대학의 군중집회 보도사진을 실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노동신문 1면에 격문을 실은 김영환은 그다음날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13차 정치국회의에서 유일하게 정치국후보위원으로 보선(선임)되었다.
노동신문은 이외에도 1면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담화에 접한 각계의 반향'이라는 제하로 △800만이 격노한다(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박명진) △이 땅의 어머니들의 이름으로(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장춘실) △징벌의 쇠스랑을 억세게 벼려(황해남도 농촌경리위원장 주철규) △한몸이 그대로 폭탄이 되어서라도(김책공업종합대학 학생 오유일) 등의 격문을 실었다.
1면에 실린 보도사진을 보면 군중집회에는 △'탈북자'들을 죽탕쳐버리자! △'탈북자' 쓰레기들에게 죽음을! 같은 살벌한 구호가 등장했다. 2면에는 '적은 역시 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제목의 노동당 통전부 대변인 명의의 담화가 실렸다.
격문은 선동적이고 자극적이다.
"가는 곳마다 개종자들을 찢어죽이라는 함성이 뇌성처럼 터져 오르고 있다. 우리의 최고존엄을 우롱하려 드는 자들에게는 추호의 자비도 모르는 것이 우리 청년들의 기질이다. 남조선 당국자들은 이번 반공화국 적대행위의 대가가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죽어 널브러질 때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김청동 부위원장 박명진)
"우리의 목숨, 우리의 존엄을 우롱하려든 것이야말로 천벌을 받아 마땅할 죄악, 천추에 용납 못할 죄악중의 죄악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더는 참지 못하겠다. 이 하늘 아래, 이 땅 위에 나라도 민족도, 낳아 키워준 부모도 모르는 불망종들이 날친다는 것은 어머니들의 수치이다." (여성동맹 위원장 장춘실)
노동신문 8일자에도 각계의 반향과 일요일인 7일 평양과 개성 등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청년 및 직맹 단위 군중집회 소식과 관련 사진이 실렸다.
△억센 무쇠망치로 대결광신자들의 무분별한 망동을 단호히 짓뭉개버리자(중앙통신) △무쇠철마로 짓뭉개 버리리(철도상 장혁) △계급의 칼날을 서슬 푸르게 (중앙계급교양관 부관장 윤희옥) △천추만대에 씻지 못할 대역죄 (사회과학원 법률연구소 소장 홍철화) △개꿈을 꾸지 말라 (용천군 장산협동농장 관리위원장 김정철) △무자비한 복수의 징벌을 (고려성균관 강좌장 홍영삼) △파국적 사태의 장본인들은 죄악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 것이다(보도사진) 등이다.
격문은 더 선동적이고 자극적이다. 다음은 노동신문의 '남조선 당국과 '탈북자' 쓰레기들의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규탄하는 노동계급과 직맹원들의 항의군중집회'라는 스케치 기사에 담긴 구호들이다.
"자멸을 재촉하는 역적무리들을 송두리채 불태워 버리자!, 민족반역자이며 인간쓰레기인 '탈북자'들을 찢어죽이라! 등의 구호판들이 세워져 있는 집회장은 반공화국 대결광기를 부리며 미쳐 날뛰는 한줌도 못되는 인간쓰레기들과 남조선 당국자들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적개심을 안고 달려온 노동계급과 직맹원들로 차고 넘치었다." (개성에서 열린 노동계급과 직맹원들의 항의군중집회)
각계 반향을 담은 보도사진에는 평양기관차대와 애국편직물공장 같은 직맹 단위의 항의군중집회도 담겨 있다.
노동신문뿐만 아니라 내각 기관지 〈내나라〉에도 △노동계급의 무쇠망치로(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봉원익) △겨레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평양시 모란봉구역 북새동 전일주) 등의 격문이 실리고 있다.
"조국을 배반한 것도 모자라 우리의 신성한 최고존엄을 또다시 중상모독한 '탈북자' 것들의 대죄를 어떻게 용납할 수 있단 말인가. 짐승보다 못한 버러지, 추물들을 무쇠망치로 무자비하게 징벌하려는 것이 우리 노동계급의 한결같은 심정이다. 반역자들을 비호두둔한 남조선 당국자들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조선중앙통신 같은 '대외용'이 아닌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 실린 격문과 군중집회는 남측과 탈북민에 대한 공세가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하지만 8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13차 정치국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은 지금 평양에서 벌어지는 군중집회와는 동떨어지게 밝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이번 정치국회의에서는 나라의 자립경제를 더욱 발전시키며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일련의 중대한 문제들이 심도 있게 토의되었다. 주된 의제는 화학공업 발전과 평양시민들의 생활보장 문제였다.
조선노동당이 내건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김정은 위원장이 몸소 이끄는 인자한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과 김여정은 각각 선역(善役)과 악역(惡役)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셈이다.
연일 계속되는 군중집회에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긴장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혹시라도 재북 가족들에게 위해(危害)가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탈북민 학교의 한 관계자는 "탈북민들은 남북한 양쪽에서 겪은 일로 한(恨)이 많다"면서 "이번 일로 탈북민들에 대한 '낙인효과'가 더 우려된다"고 말했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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