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호 비망록 9년 만 공개…'한명숙 뇌물' 재심으로 가나

주영민 / 2020-05-20 16:16:41
공개된 비망록엔 검찰의 '엮어넣기' 회유·협박 담겨
여권 '법원의 정치적 판결' 주장하며 재심 불씨 댕겨
"검찰 유리한 부분만 재판 활용" 재심 청구 가능성도
"검찰의 언론플레이는 마술사(수준)."

지난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의 핵심 인물인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는 감옥에서 작성한 '비망록'을 통해 당시 검찰 수사 행태를 이같이 표현했다.

'한만호 비망록'은 최근 뉴스타파와 MBC가 해당 내용을 보도하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한만호의 옥중 비망록이 9년 만에 공개된 것이다.

1200쪽 분량의 비망록에는 검찰의 회유와 뇌물 거짓 진술 강요, 법정에서의 진술 번복 과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 '한만호 비망록'은 최근 뉴스타파와 MBC가 해당 내용을 보도하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뉴스타파 캡처]

한만호는 옥중 비망록을 통해 검찰이 "한 전 총리가 유죄만 나오면 재기할 수 있게, 증언 며칠 안으로 출소할 수 있게 돕겠다"고 회유했다고 적었다.

2010년 4월부터 12월까지 70차례가 넘는 검찰 조사를 받은 한만호는 비망록에 검찰이 재판에서 핵심 증인으로 설 한만호에게 질의응답을 연습시켰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검찰이 재판에 대비해 "검찰 진술 조서를 제공해주고 구치소에서 공부하라며 매주 불러서 '시험 본다'고 테스트했다"며 자신을 검찰의 지시에 따르는 "강아지"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한 전 총리가 아닌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에게 돈을 준 사실을 검찰에 진술했지만 검찰이 덮었다"고도 털어놨다.

앞서 검찰은 지난 2010년 "한 전 총리에게 9억 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증언한 한만호의 진술을 토대로 한 전 총리를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심경 변화를 보인 한만호가 진술을 번복해 1심 재판부는 한 전 총리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동생이 한만호가 발행한 자기앞수표 1억 원을 전세 자금으로 쓴 것으로 드러나자 한 전 총리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고 양승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한 전 총리 측은 비서 김모 씨가 한만호에게 개인적으로 빌린 돈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여권을 중심으로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출소 당시 모습. [뉴시스]

재조사 촉구 목소리 커져…추미애 "검찰개혁 이뤄져야"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먼저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2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은 한 사람의 인생과 명예를 무참하게 짓밟았다"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것이 검찰과 사법부 정의를 바로세우는 길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어 "한 전 총리는 사법농단, 검찰 강압 수사의 피해자"라며 "옥고를 치렀고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박주민 최고위원도 "언론을 통해 검찰은 한만호 비망록에 대해 '허위 비망록 서류는 한 전 총리 재판 증거로 제출돼 엄격한 사법적 판단을 받은 문건이며 새로울 것도 없다'고 반응했는데, 검찰의 이런 반응이 타당하냐"고 가세했다.

그는 "사법농단 문건에도 한 전 총리 사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며 "상고법원 입법전략 BH(청와대) 설득 문건에도 해당 문제가 나와 있다"며 "당시 여당과 청와대 설득에 키가 될 수 있는 사건이 한명숙 사건이었다는 게 핵심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한 전 총리 사건을 두고 "검찰 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날선 비판을 제기했다.

추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당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 관행 문제를 질의하자 "우선 과거 검찰 수사 관행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라며 "절차적 정의 속에서 실체적 진실도 정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이런 사건을 통해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차원에서 검찰 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특정 사건과 연관성에 집착하기보다 그런 풍토를 개선하는 제도 개선을 위해 문제가 있는지 구체적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 전 총리 사건의 경우) 확정 판결이 있고 그럼에도 증인이 남긴 방대한 비망록을 보면 수사기관이 고도로 기획하고 수십 차례 수감 중인 증인을 불러 협박, 회유한 내용이 담겼다"며 "채널A 사건(검찰과 언론의 유착 의혹)도 유사하게 기획, 회유, 협박이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집요한지 알고 국민의 공분을 샀다"고 말했다.

추 장관은 "한 번의 과거사를 정리했다고 해도 (검찰이) 다시 그런 일을 안 한다는 보장이 없다"며 "끊임없이 거울을 들여다보듯 반복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게 저의 소신"이라고 강조했다.

▲ 1200쪽 분량의 한만호 비망록에는 검찰의 회유와 뇌물 거짓 진술 강요, 법정에서의 진술 번복 과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뉴스타파 캡처]

한명숙 사건 재심으로 이어지나…비망록 신빙성이 관건

한만호 비망록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년 전인 2011년 검찰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한만호를 위증 혐의로 기소하기로 하면서 사기죄 만기 출소를 앞둔 한만호의 감방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검찰은 한만호의 일기장과 재판 대비 메모 등을 확보했다.

당시 한만호의 변호사였던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만호의 비망록을 언급했다.

최 대표는 9년 전인 지난 2011년 인터뷰에서 "비망록에는 그동안 검찰이 한만호에게 무엇을 요구했고, 어떻게 사실을 왜곡하고 자신을 회유하고 협박했는지 과정이 상세히 적혀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만호 비망록을 기반으로 한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사건이 재심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한 전 총리 사건의 재심 청구는 지난 2015년 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언급하면서 공론화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12월 7일 자택 앞에서 MBN 김주하 앵커와 만나 "(한 전 총리에 대한)대법원 판결은 집행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이 오판이라는 이의도 제기를 못하나. 재심도 앞으로 청구할 계획이다"고 말한 바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2017년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 인사에 대해 정치보복을 하는 과정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희생됐다"며 '한명숙 정치자금 사건' 조작설을 제기한 뒤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

이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한만호 비망록을 근거로 한 전 총리 사건의 재심 청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나온다.

비망록 내용이 신빙성이 높아 보이고 정황상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검찰이 한 전 총리의 재판과정에서 자신들이 확보한 한만호 비망록에서 유리한 내용만 빼서 증거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재심에서도 한 전 총리에 유리한 부분이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일각의 해석이다.

재경지법 출신 한 변호사는 "재심에서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확정된 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며 "한만호 비망록의 신빙성을 담보할 수 있다면 상당 부분이 새로운 증거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주영민 기자 cym@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주영민

주영민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