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지키는 우리에게 빨갱이, 나라망신이라며 욕하기도"

김형환 / 2020-04-29 15:30:57
1600여 일 소녀상 지킴이 참여 김지선 씨
활동가 30여 명과 돌아가며 24시간 지켜
"소녀상처럼 나도 묵묵히 싸워 나갈 것"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가 발표되자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로부터 이틀 뒤 청년들은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지킴이 활동은 1600일 가까이 이어졌다. 약 4년 4개월의 세월을 함께한 대학생들은 졸업해 사회로 진출하기도 했고 당시 고등학생들은 대학생이 되어 그 뒤를 이었다.

▲ 4월 28일 서울 종로 수송동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에서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는 희망나비 김지선 대표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지원 기자]

지난달 28일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서울 종로 수송동의 '평화의 소녀상' 주변은 평화로웠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와 '위안부인권회복실천연대'는 이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위안부피해자법'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소녀상 옆에서 진행했다.

이들은 약 1시간 동안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이었다", "수요시위는 중단해야 한다", "소녀상은 반일감정을 조장하니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지켜봤던 '소녀상 지킴이' 희망나비 김지선 대표(21·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나요. 역사 왜곡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에요."

김 대표는 이런 일이 간혹 발생한다고 말했다.

"소녀상 옆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다'라고 말도 안되는 말을 하는 사람이 간혹 있어요. 이 사람들은 저희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해요. 심지어는 그런 사람들이 소녀상에 앉아서 언론 인터뷰를 하려고 해요. 소녀상은 역사문제에 대해 바로 알기 위해 있는 곳이고 민족의 자존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소녀상에 앉는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돼요."

대학 휴학 중인 김 대표는 올해로 4년째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4월28일 서울 수송동 한 카페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는 소녀상 지킴이 활동가 김지선 희망나비 대표. [김지원 기자]

—어떻게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시작하게 됐나

"소녀상 농성이 1년째 되는 날, 아마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 시위가 한참 일어날 때다. 날이 정말 추웠는데 사람들이 진짜 많이 모였다. 소녀상 주변에 오순도순 모여 구호도 외치고 문화제도 하고 영상도 함께 봤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집회라는 자체를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근데 그때 경찰이 불법 집회라며 해산을 요구했다. 그때 대표였던 언니가 '내가 소녀상 공동행동 대표니깐 나를 잡아가라'고 말했다. 그때 위안부 문제가 언젠가는 해결될 문제라는 나의 생각이 변했다. 싸우는 언니, 오빠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하는구나 느꼈고 그 이후로 계속 참여하다 보니 4년이 흘렀다."

—소녀상 지킴이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나

"소녀상 농성을 하는 단체는 '반아베반일청년공동행동'이 정식 명칭이다. 이 가운데 '희망나비', '진보학생연대' 등 대학교 동아리들이 들어가 있다. 24시간 내내 철야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원래 농성 텐트를 설치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도 그렇고 1500일 넘게 아무 답도 안하고 있는 일본을 보며 우리가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1인 철야 농성을 시작하게 됐다."

—함께 소녀상을 지키는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

"지극히 평범한 친구들이다.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사람에 대한 정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사실 '정'을 빼놓고는 농성을 이어갈 수 없다. 함께 생일축하도 하고 극우단체와도 함께 싸우고 함께 분노한다. 각자 농성을 시작한 이유는 다르지만 결국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뭉쳤다. 요즘 스펙 쌓고 경쟁하기 바쁜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 사람이 우선인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소녀상 지킴이 활동 중 가장 뿌듯했던 경험은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 가족 단위로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서너살 정도 되는 아이에게 부모님들이 소녀상을 보여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준다. 그걸 들은 아이가 '정말 무서웠겠다'면서 자신이 먹던 별사탕을 소녀상 손에 쥐어주기도 하고 자신이 끼고 있던 팔찌를 걸어주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뿌듯함을 느낀다.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본인들은 이제 죽을 나이라며 그런데도 본인들이 싸우는 이유는 후대들이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겪으면 안되기 때문에 싸운다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일본인도 많이 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일본인인데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울먹거리면서 이야기하신 분이 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번역기를 사용해 소통했지만, 언어를 뛰어넘는 교감을 했다."

—소녀상 지킴이 활동 과정에서 감사한 사람이 있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다. 응원해주시는 시민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최근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사다 주시는 분도 있었고 겨울에는 어디서 히터를 구해오셔서 히터를 틀어주시기도 했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저희를 위해 방석을 사다 주신 분도 있다. 그 외에도 항상 고로케(크로켓)를 챙겨주시는 아버님도 계시고 도시락, 음료수를 챙겨주시는 시민분들도 많이 계시다. 늘 이런 선물을 주시면서 '내가 못해서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한마디씩 해주신다. 이런 한마디 말에 힘내서 농성을 이어갈 수 있다. 1600일이란 시간은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소녀상 지킴이를 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최근에 소녀상 근처에 10~20명 정도의 극우 세력들이 몰려왔다. 나는 혼자 소녀상을 지키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빨갱이', '부모는 있냐', '나라망신이다'라면서 위협했다. 심지어 한 보수 유튜버는 소녀상을 껴안으려고 했다. 내가 소녀상을 몸으로 가로막았는데도 계속 껴안으려 했다. 또 어떤 여자가 소녀상을 망치로 깨부수려 한 일도 있었다. 정말 무서웠다. 그때 경찰들에게 말려달라고 말했지만 자신들은 시위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하는 것이지 소녀상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112에 신고해서 또 다른 경찰을 불렀던 기억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이 지키고 있는 소녀상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앙다문 입술, 강렬한 눈으로 일본 대사관을 쳐다보고 있는 소녀상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이길래 그들이 1600일 가까이 지키고 있을까.

▲ 지난달 28일 서울 수송동 평화의 소녀상에서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는 희망나비 김지선 대표가 소녀상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김지원 기자]

—소녀상을 설명한다면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해 최초 증언했다. 그리고 1992년 1월 8일, 처음으로 수요시위가 열렸다. 소녀상은 수요시위 1000회차에 만들어졌다. 소녀상을 보면 머리카락이 단발이다. 예쁜 일자 단발머리가 아니라 삐죽삐죽한 단발이다. 이것은 고향, 사랑하는 가족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어깨의 새는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살아계신 할머니들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다. 주먹을 꽉 쥔 손과 강렬한 눈빛은 사죄받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발을 보면 맨발에 발 뒤꿈치가 약간 떨어져 있다. 이는 모진 수모를 겪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고 정서운 할머니께서는 끌려갔을 당시 너무 저항하니 아편을 강제로 맞았다. 그래서 아편을 끊는 데만 3년이 걸렸다고 들었다. 또 소녀상 뒤편에는 할머니의 그림자가 있다. 이 그림자는 소녀에서 할머니로의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 그림자가 조각조각 나있는데 이는 할머니들이 한국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의미한다. 가운데 하얀 나비는 환생을 의미한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다시 태어나면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고 싶다고 말하고 한다. 마지막으로 옆의 빈 의자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의미다."

—그럼 소녀상이 본인에게 가진 의미는

"소녀상은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역할을 보여준다. 단순히 이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지금까지도 일본은 역사 왜곡을 자행하고 있다. 이는 결국 일본이 군국주의로 돌아가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런 끔찍한 일이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고, 전쟁이 나면 가장 평범한 사람이 희생된다. 이러한 전쟁을 막기 위해 싸워야 한다. 소녀상은 단순히 가슴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의미를 넘어 제가 해야 할 것, 제가 지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녀상이 묵묵히 일본 대사관을 지켜보는 것처럼 나도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해결돼야 할지

"일단 2015년의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과였다. 우선 피해자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7대 요구안이 반영돼야 한다. 7대 요구안을 바탕으로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하다. 이런 사과가 있을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7대 요구안은 △ 일본 정부의 전쟁범죄 시인 △ 전쟁 중 자행한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진상규명 △ 피해자에게 공식 사죄 △ 법적 배상 △ 전범자 처벌 △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역사 교과서에 기록 △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비·사료관 건립이다.

김지선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일본 정부를 향해 외쳤다.

"더이상 상처주지 마세요. 전쟁과 평화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전쟁의 끝은 결국 패망이고 전쟁은 평화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에 의해 끝날 것입니다"

KPI뉴스 / 김형환 인턴 기자 kh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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