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재무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지낸 뒤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 3개월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아 고도성장의 기틀을 닦은 한국경제의 '산파' 역할을 했다.
1924년생인 고인은 1944년 한국은행의 전신인 조선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강제징집돼 일본군에 배속됐다가 히로시마에서 일제 패망을 맞았다. 당시 미군이 투하한 원자폭탄의 영향으로 후유증을 앓았다.
해방 후 군인으로 6·25 전쟁에도 참전했던 고인은 1952년 예편 후 한국은행에서 일하며 1차 통화개혁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재무부로 자리를 옮긴 고인은 1966년 재무부 장관으로 취임했지만 얼마 안가 삼성그룹의 계열사였던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에 반발한 김두한 의원의 이른바 '국회오물투척사건'이 터지면서 내각 총사퇴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7년 상공부 장관으로 다시 발탁됐고 1969년 10월에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뒤를 이어 대통령비서실장에 올랐다.
상공부 장관으로 수출주도형 공업화 정책을 이끈 고인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재임하면서 중화학공업육성과 방위산업 국산화뿐만 아니라 새마을운동, 의료보장제도 도입에도 기여했다.
고인이 역대 정부를 통틀어 최장 기간 비서실장에 재임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자세 때문이라는 평가다.
고인의 회고록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에 따르면 고인은 당시 청와대로 불려간 자리에서 "저는 경제나 좀 알지 정치는 몰라서 비서실장만은 적임이 아니다"라고 고사했으나 박 전 대통령은 "경제야말로 국정의 기본이고 경제가 잘돼야 정치·국방도 튼튼하게 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또 다른 회고록 '아, 박정희'에서 김 회장은 "청와대 비서실을 구성하는 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은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행동해야 하고, 대통령이란 큰 나무의 그늘에서 존재가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일해야 한다"면서 "그 그늘을 벗어나 양지로 나와 존재를 과시하면 안 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1999년부터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에서 이사로 일해 왔으며 2007년부터는 회장직을 맡았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고인의 조카 사위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실이다. 발인은 오는 28일 오전 8시30분으로 서울추모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유족은 희경·두경(전 은행연합회 상무이사)·승경(전 새마을금고연합회 신용공제 대표이사)·준경(전 한국개발원 원장)씨와 사위 김중웅(전 현대증권 회장, 현대그룹 연구원 회장)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 14호실, 발인은 28일 오전이다.
KPI뉴스 / 장한별 기자 star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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