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이 소환한 '반지하' 그것이 궁금하다

김광호 / 2020-02-12 14:09:19
처음에는 전쟁대비 지하대피소 용도
도시 주택난 심화하면서 서민들 거주
빈부격차·도시화 상징적 주거 공간
"주거형태로 가난 낙인찍지 말아야"

"영화 '기생충'을 보는 내내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았어요. 반지하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현실이거든요. 한낮에도 햇볕조차 들지 않는 집안, 퀴퀴한 곰팡이 냄새는 지금도 생생하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배경인 한국의 '반지하' 주택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은 '기생충'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몇 년 전까지 빌라 반지하에 살았던 직장인 한모(40) 씨 얘기다. 영화를 본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흥미를 던졌던 반지하 공간은 한국인들에게 애환의 삶터였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지난 10일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을 휩쓴 뒤 영화 속 주요 공간인 반지하라는 거주형태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거슬러 살펴보면 반지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개념으로, 분단과 급격한 도시화, 빈부격차라는 시대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지난 1970년 개정된 건축법에 '건축주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용도 및 규모의 건축물을 건축하고자 할 때에는 지하층을 설치하여야 한다'(제22조의 3)는 규정이 신설됐다. 이는 남북 간 전쟁에 대비해 지하층을 대피소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지하공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에 살 곳을 찾아 지하로 들어가자, 정부는 이럴 바엔 지하 주거공간을 제도화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법이 개정돼 하나의 건축물에 여러 가구가 거주하는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이 등장했다. 둘은 분류의 차이가 있을 뿐 하나의 건물에 여러 가구가 거주하는 형태다.

이후 1984년 12월 건축법 개정으로 지하층 요건이 완화됐다. 기존의 지하층은 한 층의 3분의 2 이상이 지표면 밑으로 묻혀 있어야 했으나, 규제 완화로 2분의 1 이상만 묻히면 지하층으로 보았다. 이로 인해 영화 속 기택(송강호 분) 네 집에 '창문'이 생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하를 덜 파도 지하층을 분양할 수 있게 되면서 지하 주거는 활기를 띠었다. 방을 많이 만들어 세입자를 받으려는 건물주에게 반지하는 수익 창출의 공간이었다.

▲ 12일 경기 안양 동안구의 한 빌라 반지하의 모습. 낮은 창문이 두터운 방범창에 가려져있어 햇빛이 들기 어렵다. [김광호 기자]


11일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 전체 1911만1731가구 중에서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는 36만3896가구(1.90%)였으며, 이 중 약 23만 가구가 서울에 몰려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반지하에 사는 사람은 점차 줄고 있다. 반지하 가구 비율은 2005년 3.69%(58만 7000가구)에서 2010년 2.98%(51만 8000가구), 2015년 1%로 낮아졌다.

더욱이 최근 들어 다세대 등 주택용 건물에 반지하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2003년 주차장법이 개정되면서 주택에 필수 주차공간을 확보하게 하는 등 건축 관련 규제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주택 밀집 지역에 반지하보다는 필로티 건축물이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반지하가 줄어든 것은 규제뿐만 아니라 반지하가 많은 노후 주택 지역이 재개발 등으로 꾸준히 개선됐고, 주거수준이 올라가면서 반지하 수요도 많이 줄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건물의 최하층에 있는 반지하는 자금 사정이 어려운 도시 빈민의 최후 선택지가 되면서 한국 사회의 가장 낮은 사회계급을 상징해왔다.

영화 속 반지하는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집중호우가 있던 날 기택네 집은 침수되고, 하수는 역류한다. 그에 반해 언덕에 있는 박 사장(이선균) 네 집은 아무 피해가 없고, 다음날 오히려 '미세먼지'가 없다며 정원에서 파티를 연다.

이 때문에 반지하는 '쪽방촌'이나 '옥탑방'처럼 한국인에게 기피의 대상이 됐다.

▲ 12일 경기 안양 동안구의 한 빌라 반지하의 모습. 길가에 창문이 낮게 위치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생활이 노출될 위험성이 크다. [김광호 기자]


그러나 여전히 반지하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서민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희망의 공간이다. 제2의 봉준호, 방탄소년단에 도전하는 청년들,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신혼부부, 인생의 황혼길 접어든 노인들에게는 소중한 주거 공간이자 내 집이다.

전문가들은 반지하가 주거 실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에 이를 두고 빈부격차가 심각한 증거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단순히 주거형태의 한 종류일 뿐인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에게 계급주의 프레임을 씌어 하층민으로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많다.

사람의도시연구소 이동환(연세대 도시공학과 겸임교수) 소장은 "반지하를 빈부격차의 상징으로 지나치게 부각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면서 "실제로 반지하에 사는 주민들을 빈곤층으로 낙인찍어 버리는 부정적인 효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이 소장은 특히 "반지하는 현행법에 따른 주거정책의 기본원칙에 명시되지 않아 대부분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면서 "이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K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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