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연회의 평양 외교관들, 목구멍으로 떡국인들 넘어갈까?

김당 / 2020-01-24 16:37:17
[평양 톺아보기] 3. 북한의 설과 명절음식…'노치'와 '꿩 대신 닭'인 까닭
리선권 외무상, 23일 설 명절 연회에 주(駐)북한 외교관 초청해 공식 데뷔
노동신문, 외교관 초청 설 명절 연회 소식과 '설 명절 전통 민족음식' 소개

 

북한의 리선권 신임 외무상(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북한 주재 외교단에게 공식적으로 대외정책을 표명함으로써 외무상 교체를 기정사실화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4일자 6면에 "설 명절에 즈음하여 외무성이 우리나라 주재 외교단을 위해 23일 연회를 마련하였다"면서 "외무상 리선권 동지를 비롯한 외무성 일군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고 보도했다.

▲ 리선권(맨왼쪽) 신임 북한 외무상이 23일 북한 주재 외교관들에게 설 명절 연회를 주최했다. 사진은 2018년 12월 26일 조국평화통일위원장으로서 북한 개성시 판문역에서 열린 남북 동서해선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 앞서 남측 인사들과 환담하는모습. [뉴시스]


이날 북한 관영매체의 '외무상 리선권' 호명으로 그동안 관측으로만 제기된 외무상의 교체 사실도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 연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12. 28~31) 마지막 날 기념촬영에서 리용호 외무상이 빠지면서 교체설이 제기되었다. 이어 최근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가 평양의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리용호가 물러나고 리선권이 임명될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이번에 북한 관영매체의 호명 보도로 공식 확인된 것이다.

이날 노동신문은 "리선권 동지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강령적 과업을 높이 받들고 우리 인민이 사회주의 건설의 전진 도상에 가로놓인 난관을 자력갱생의 힘으로 정면돌파하기 위한 총공격전에 떨쳐나선 데 대해 언급하고 공화국 정부의 대외정책적 입장을 표명하였다"고 간략하게 보도했다.

신임 외무상으로서 평양의 외교단에 첫 선을 보인 리선권의 구체적인 발언 내용은 보도되지 않았지만, 리선권은 이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새로운 대외정책을 외교단에 설명한 것으로 관측된다.

신문은 아울러 연회 참가자들이 김정은 위원장과 자국 국가수반들의 건강을 축원하며 북한과 각국 외교대표단의 나라 및 국제기구들 사이의 친선협조 관계의 강화발전을 위해 잔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날 연회에 어떤 음식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설 명절에 즈음해 개회한 연회라는 점에서 북한의 특색있는 설 명절음식들이 일부 제공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노동신문에 소개한 북한의 설 명절음식.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떡국, 녹두지짐, 노치, 수정과, 설기떡, 찰떡 [노동신문]


노동신문은 같은날 5면에 '설명절의 전통적인 민족음식' 기사를 싣고 "설 명절날에 즐겨 만들어 먹은 음식들로서는 찰떡, 설기떡, 절편과 같은 떡과 떡국, 여러 가지 지짐류, 수정과, 식혜, 고기구이 등을 들 수 있다"며 해당 음식과 요리법을 소개했다.

신문이 옛 문헌을 인용한 바에 따르면, 설날 대표 음식인 떡국은 "장국이 팔팔 끓을 때 얇게 썬 떡을 넣고 잠간 끓인 다음 소고기나 꿩고기 볶은 것을 넣고 후추가루를 뿌려 낸 것"이다. 떡국은 꿩고기를 넣고 끓이는 것이 제격이지만 꿩이 흔하지 않아 닭고기를 꿩고기 대신 쓰기도 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예로부터 전해오는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이르는 말이었다. 또한 떡국은 해마다 설날이면 한 그릇씩 먹는 관습으로 인해 나이도 한 살씩 늘어난다는 뜻에서 '첨세병'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다른 지방에선 손님을 접대한다는 의미로 흔히 '빈대떡'이라고 하는 평양의 녹두지짐은 "얇은 비게덩이나 김치를 썰어 가운데 박아서 지지는 것"이 다른 지방과 다르다. 신문은 "평양지방에서는 녹두지짐을 굽 높은 접시에 쌓아 잔치상에 놓는 것을 풍습으로 여겨왔다"면서 "그러므로 녹두지짐이 빠진 명절상이나 잔치상은 잘 차린 상으로 일러주지 않았다"고 소개한다.

남쪽에서는 생소한 평양의 소문난 지짐의 하나가 노치이다. 노치는 "찹쌀가루나 찰기장, 차조, 찰수수 등의 가루를 익반죽하고 길금가루를 두어 삭혀서 기름에 지진 것"이다. 신문에 따르면 "맛이 달고 새큼하며 쫄깃쫄깃하여 씹을 맛이 있으며 조금 먹어도 근기가 있는 평양의 독특한 음식"인 노치는 북한에서 설날은 물론 가을걷이 때의 중참으로, 아이들 간식으로도 널리 이용되여 왔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설날에는 찰떡, 설기떡(시루떡), 흰떡 등 여러 가지 떡을 만들어 먹는다.

▲ 설 명절음식 중 하나인 떡을 만드는 모습을 담은 민속화(왼쪽)와 설 명절을 즐기는 평양 시민들 [노동신문]


신문은 떡 치는 모습을 담은 민속화와 함께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떡메를 기운차게 휘두르며 떡을 치는 남정들과 깨끗한 앞치마를 두른 여인들이 떡을 엎어놓거나 제쳐놓으며 고루 치게 손질하는 모습은 조선의 특유한 풍습이기도 하였다"면서 이렇게 소개했다.

"찰떡은 일정한 크기로 잘라 팥, 참깨, 대추, 밤, 잣, 당콩 등으로 만든 고물을 묻혀 접시에 소복이 담는다. 오랜 옛날부터 찰떡은 위병에 좋고 몸보신에 효과가 매우 큰 음식으로 일러왔다. 찰떡은 찰기가 있어 굳지 않으며 며칠 두었다가도 구워서 꿀을 발라 먹으면 천하일미라고 하였다. 찰떡은 황해도 연안, 배천(연백) 지방의 것이 소문났는데 콩고물을 쓰는 것이 특징이었다."

"쌀가루를 푸실푸실하게 반죽하여 시루에 고물을 켜켜로 안쳐서 찐 떡"인 설기떡의 기본재료는 흰쌀, 찹쌀, 좁쌀, 수수쌀 등이며 켜 사이에 놓는 고물은 팥, 콩, 깨, 녹두 등이다.

신문에 따르면, 설기떡 가운데서 널리 알려진 것은 찹쌀가루에 검정콩, 대추, 밤, 꿀, 계피가루 등을 함께 버무려 찐 개성의 소머리떡인데, 개성지방에서는 이 떡을 자그마한 시루에 쪄 가지고 시루채로 사돈집에 설음식으로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노동신문은 이밖에도 "설날에 빠져서는 안될 우리나라 고유의 당과"인 강정과 약과, 수정과와 식혜, 고기구이(산적) 등을 설 명절 음식으로 소개했다.

▲ 2019년 2월 김일성광장에서 설 명절을 즐기는 평양의 소년소녀 학생들 [노동신문]


하지만 북한에서 음력설을 민족의 전통명절로 제정해 휴일로 인정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북한은 2003년 설 당일부터 사흘간을 공식 휴일로 지정했으며 2006년부터는 '설 명절'을 음력설의 공식 명칭으로 삼고 있다.

설날 아침이면 북한 주민들도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설음식을 먹고 덕담을 주고받는다. 또한 가족뿐 아니라 친지나 이웃, 은사, 참전 노병들을 찾아 설 인사를 하고 음식이나 선물을 주고받으며 정을 나눈다.

▲ 지난해 2월 설 명절을 맞이해 평양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찾은 평양 시민들 [조선중앙통신]


하지만 설 명절의 부활에도 북한에서 법으로 정한 '민족 최대의 명절'은 태양절(4. 15 김일성 생일)과 광명성절(2. 16 김정일 생일)이다. 특히 지난해처럼 광명성절과 날짜가 겹치는 설 명절 때면 당 간부들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설 연휴에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참배하느라 평양 만수대 언덕은 꽃바구니와 꽃다발을 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곤 한다.

현재 북한 주재 외국공관은 31개(대사관 24, 총영사관 3개, 대표부 4개)로 알려져 있다. 설 명절 연회에 떡국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초청된 평양 주재 외교관들의 목구멍으로 떡국이 잘 넘어갔을 지는 의문이다. 연회 주최자가 바로 리선권이기 때문이다.

리선권은 지난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평양 옥류관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수행원으로 참석한 남측 기업 총수들에게 "지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면박을 준 강성 인사로 분류된다. 또한 그는 그해 10월 평양에 열린 10.4선언 기념공동행사에서도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에게 "배 나온 사람에게 예산을 맡겨선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선권은 대남 공작을 총괄하는 정찰총국 출신이다. 그가 외무상으로 변신했다지만, 이처럼 강성 발언을 일삼는 강성 인사가 산해진미를 베푼다고 한들, 평양의 외교관들이 어지간히 강심장이 아니라면 연회에서 허리띠 풀고 먹기는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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