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정은 '백마 쇼' 연출한 '평양의 탁현민'은?

김당 / 2019-11-06 18:21:52
국정원 "백두산 용마신화는 김정은 백두혈통 우상화의 일환"
7차 당대회 이후 김일성·김정일과 '동격화'에서 '신격화' 단계로
작년 9·9절 때 '김일성=창건자→김정일=건설자→김정은=최전성기 실현자'

'세기의 연출'이라며 외신에서도 큰 관심을 보인 백마(白馬) 탄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은 누가 연출한 것일까? 또한 외신의 보도처럼 과연 '중대 결심'을 앞두고 한 예고적 행동일까?
 

▲ 백마를 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의 첫눈을 맞으며 달리고 있다(노동신문 2019년 10월 16일자 3면). [노동신문 캡처]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0월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라 "웅대한 작전"을 구상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노동신문은 1면에 삼지연군 건설현장 현지지도 소식을 전하며, 3면에 김정은 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달리는 사진 8장을 실었다.

이 신문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백두산정에 오르시였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혁명의 책원지(후방기지)이며 우리 조국의 무진장한 힘의 근원지인 백두산에서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 이번에 걸으신 군마행군길은 우리 혁명사에서 진폭이 큰 의의를 지니는 사변으로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면 제약이 없는 조선중앙통신은 백마 탄 김정은 사진 11장을 소개했다. 조선중앙TV는 이날 오후 김정은과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조용원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현송월 선전선동부 부부장 겸 삼지연관현악단장이 길게 열을 이뤄 백두산에서 함께 말을 타는 사진을 공개했다.

이에 CNN·가디언·알자지라 등 외신은 일제히 '중대한 결정을 앞둔 메시지'라며 사진과 함께 관심있게 보도했다. 외신은 대체로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 노딜'과 '스톡홀름 실무회담' 탐색전 이후 중대한 결심을 앞두고 백두산은 등정한 것이라고 예측했다.

평양에 사무소를 둔 AP 통신은 이 이벤트를 외신 기자들은 취재할 수 없었으며 사진상의 내용에 대해 검증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대북 휴민트(HUMINT·인적 정보)와 시긴트(SIGINT·신호감청정보)를 강점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국정원은 백마 탄 김정은이 첫눈 온 백두산에서 말 달리는 '세기의 연출'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고 있을까?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에서 비공개로 열린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도 일부 정보위원들이 백마 탄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의 상징조작 사례와 연출자에 대해 국정원이 파악한 정보를 질의했다.

이와 관련 ‹UPI뉴스›가 복수의 정보위 관계자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은 "북한은 상징조작을 지도자의 통치 정당성 확보와 권력 유지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면서 몇 가지 구체적 우상화 사례를 들어 답변했다.

외신의 '중대 결심'의 사전 예고라는 분석과 달리, 국정원은 '우상화의 일환'으로 판단한 것이다.

우선 국정원은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당국이 김정은 찬양 노래, 초대형 찬양판, 구호, 우표, 단독초상, 현지지도 표식판, 친필 현판 등 다양한 형태의 우상물을 제작하였다고 답변했다.

국정원은 특히 최근 들어서는 김정은 전용기와 차량에 국무위원장 휘장을 부착(2018년)하고, 2017년 하반기 이후 중단됐던 김정은 찬양노래도 연쇄 발표하였다고 답변했다.

노동신문에 없는 조선중앙통신 사진 중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여동생 김여정 당선전선동부 제1부부장과 나란히 말을 타고 가는 장면과 수행원들과 함께 군마행군을 하는 뒷모습이 담긴 장면이 눈에 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정은 일행이 백두산에 올라간 일시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국정원은 김 위원장이 전날 백두산 인근의 삼지연군 인민병원 등 건설현장을 시찰한 후 때마침 첫눈이 내린 백두산을 오른 것으로 추정했다.

알다시피 백두산 입구에 자리 잡은 양강도 삼지연군은 김일성 주석의 항일혁명활동 성지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출생지(백두산 밀영)로 북한이 선전하는 곳이다.

이와 관련 관영매체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삼지연군 건설현장 현지지도에는 조용원, 김여정, 이정남, 유진, 박성철, 홍영성, 현송월, 마원춘 등이 수행했다고 보도했으나, 백두산 등정에는 김여정, 조용원, 현송월, 동정호, 유진 등이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삼지연군 현지지도에선 수행자가 조용원, 김여정 순인데 백두산 등정의 수행자는 김여정, 조용원 순이었다. '혁명의 성지'인 백두산 등정의 '서열'은 '백두혈통' 우선임을 보여준 것이다.
 

▲ 이른바 '백두혈통'인 김정은 국무위원장(가운데)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왼쪽) 두 사람이 탄 말에만 '별'이 달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이 여동생 김여정과 나란히 말을 타고 가는 중앙통신 사진을 보면, 김정은과 김여정 두 사람이 탄 말에만 '별'이 달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김정은 권력승계·집권 이후 현재까지 우상화 작업 현황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 권력 승계(2011. 12) 후 김정은을 '위대한 영도자'로 호칭하고, '유일영도 10대원칙'에 '백두혈통 세습'을 명문화(2013. 6)해 장성택 처형(2013. 12) 이후에는 '백두혈통은 김정은만이 이을 수 있다'고 선전했다.

국정원은 또한 7차 당대회(2016. 5) 이후 찬양수식어·의례절차 등에 있어 김일성·김정일과 동격화하고, 특히 정권 창건 70주기 행사(2018. 9. 9)에서 '김일성=사회주의 건설 창건자 → 김정일=건설자 → 김정은=최전성기 실현자'라고 평가해 선대(先代)의 업적을 뛰어넘는 김정은의 통치 역량과 리더십을 부각하였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은 이어 "금년 들어 보도매체를 통해 위대성 선전에 집중하면서 전에 없었던 찬양 노래를 연이어 발표하는 한편, 우상화를 '신격화' 단계로 격상시켰다"면서 "특히,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른 김정은 사진을 노동신문 1면 전면 기사로 처리하면서, 이를 '새로운 백두산 용마(龍馬) 신화'로 규정하였다"고 파악했다.

북한은 그동안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삼부자를 신격화해 세습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꾸준히 '백두산 용마신화'를 강조해왔다. 북한 교과서에는 "김일성은 10살도 못된 나이에 일본 헌병을 혼내주고, 용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돌사태를 내려 왜놈군대를 물리쳤다"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국정원은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와 비교한 김정은 우상화 작업 현황과 특징을 묻는 질의에도 "김정은은 선대와 마찬가지로 집권 이후 다양한 상징물들과 위대성 선전, 교육 등을 통해 우상화를 지속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최근 '백마를 타고 백두산 등정'하는 모습을 부각하며 '백두산 용마 신화'로 포장하는 등 우상화 강화 조짐이 관찰된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평양의 탁현민'에 비유할 만한 '백마 쇼' 연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은 2017년 4.27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도보다리 회담'을 기획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국정원은 "상징조작의 연출자에 대해 파악한 부분은 없으나 당 선전선동부가 주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만 답변했다.

현재 노동당 선전선동부는 박광호 부위원장 겸 선전선동부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이 맡고 있다. 국정원은 2018년부터 서열 20위권 내로 진입한 박광호 선전선동부장을 서열 7~6위로 파악하고 있다.

▲ 북한의 주요 선전 기념관에는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하던 시절이라며 백마를 타고 만주 일대와 백두산을 누비던 모습을 담은 그림이 전시돼 있다(맨위). 위 왼쪽부터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우상화를 이끈 김기남 전 선전담당 비서, 박광호 선전선동부장,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위키백과]


결국, 국정원의 답변에 따르면 백마 탄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 이벤트는 박광호 부장이나 김여정 제1부부장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에 앞서는 김기남 선전담당 비서가 북한 정권 3대에 걸쳐 우상화 선전선동을 총괄했다. 김기남은 1960년대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시작으로 근로자·노동신문 책임주필, 1990년대 선전선동부장과 선전담당 비서로 활동하면서 북한 체제 선전과 우상화를 지휘했다.

김기남은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후계체제 구축 과정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했고, 이후 김여정 제1부부장에게 선전선동 업무를 전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의 판단이 맞다면 백마 탄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은 김여정이 오빠를 위해 기획한 이벤트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KPI뉴스 / 김당 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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