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지율 높으면 시정연설 길고 낮으면 짧았다

김당 / 2019-10-23 17:54:36
[3년 시정연설 분석] 대통령 연설 길이와 지지율은 '비례'
집권 첫해, '재정 확대-지원 통한 경제성장과 일자리 확장'
2년차, 평양공동선언 등 남북관계 순항으로 '포용' 강조
3년차, "'공정' 있어야 '혁신'도, '포용'도, '평화'도 있다"

예산은 숫자로 표기된 정치다. 정치의 기본은 '기브 앤 테이크', 즉 주고받으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곧 예산은 정치적으로 주고받는 숫자의 균형 맞추기인 셈이다.

 

▲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2017년 추경, 2018년도 예산안, 2019년도 예산안,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빈도수가 높은 단어를 상위 25위까지 뽑아 젤리렙의 '워드 클라우드' 방식으로 시각화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국회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다. 2017년 5월 10일 국회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네 번째 예산안 시정연설이다.

 

국회는 이날 대통령 시정연설을 청취한 뒤에 곧바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갖고 공청회를 시작으로 올해 결산과 내년도 예산심사를 개시했다.

 

국회의 예산결산 심사는 국정감사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하는 핵심 기능이다. 9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지는 정기국회 일정도 국정감사(10월)와 예산심사(11월)에 맞춰져 있다. 이에 대통령은 국감 말미, 예산심사 초기에 국회 시정연설을 해왔다.

 

헌법은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제54조 1항)고 돼 있다. 하지만 예산 편성권은 정부에 있다. 국회는 감액의 권한만 갖고 있다. 더욱이 예산심사는 국회의 권한이지만 예산편성에서 정부와 여당은 '한통속'이다.

 

정부여당의 최종 목표는 예산의 원안 통과이다.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은 원안 통과를 위한 통과의례이다.

 

시정연설에는 정부 정책의 기본방침과 정부의 기본과업이 담겨 있다. 시정연설을 뜯어보면 대통령의 향후 국정 운영 구상과 계획, 특히 집중 관심 분야를 엿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서 예산안 시정연설을 네 번 했다. 취임 한달여만에 이뤄진 추경예산안 시정연설(2017. 6. 12)을 제외하면 모두 정기국회 국감 말미(10월 하순~11월 초)에 했다.

 

문 대통령은 추경시정연설에서 "역대 (대통령 취임후) 가장 빠른 시기의 시정연설이자 사상 최초의 추경시정연설이라고 들었다"면서 "국회와 더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치하고자 하는 저의 노력으로 받아들여달라"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의 2017년 6월 12일 추가경정예산 시정연설 사진(왼쪽)과 형태소 분석 결과(오른쪽 표)


추경(追更)은 추가경정예산을 줄여 부르는 말로서 예산을 집행하다가 수입(세입)이 줄거나 예기치 못한 지출요인이 생길 때 고치는 예산을 가리킨다. 추경예산은 지출을 늘리는 추가예산과 총액은 그대로 두고 지출내역만 변경하는 경정(경정)예산을 합한 것으로,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사상 최초의 추경시정연설'이라고 생색낼 일은 아닌 것이다.

 

또한 문 대통령은 추경시정연설에서 "그러나 그보다 더 주목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일자리 추경의 절박성과 시급성이다"면서 특히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추경의 조속한 심의통과를 강조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추경시정연설에도 그보다 한달 전에 문 대통령의 정규직화 약속에 눈물 흘리는 인천공항 보안검색요원의 사진이 문 대통령의 연설 장면 사진과 나란히 실려 있다.

 

연설 내용도 감성에 호소했다. 추경시정연설의 행태소를 분석해보면, 글자 수로는 6,319자, 낱말 수는 1,821개인데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일자리(44회)와 청년(33회)으로 국민(24회)보다 더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실제로 추경이 청년 일자리를 늘렸는지는 회의적이다.

 

〈UPI뉴스〉는 문 대통령의 3년차 시정연설과 집권 반환점을 계기로 4회의 예산안시정연설을 '워드 클라우드' 방식으로 분석해 국정운영의 주안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봤다.

 

워드 클라우드는 글에서 여러 번 반복된 키워드를 추출해 빈도수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보여주는 기법이다. 웹사이트 젤리랩을 통해 단어(형태소)별로 분류한 뒤 빈도수로 정렬해 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자주 쓴 단어를 뽑아냈다.

 

이 가운데서 '있다' '없다' '하다' '한다' '그리고' 등의 무의미한 단어와 접속사 등을 제외하고 빈도수가 높은 단어를 상위 25위까지 뽑아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집권 첫해와 2년차에는 11월 1일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고, 집권 3년차인 올해는 10월 22일에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다. 세 번의 시정연설은 모두 국정감사 기간에 이뤄졌고,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기간이기도 했다.

 

세 차례의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가장 많이 사용한 용어는 '우리'(131), '국민'(130), '경제'(93)의 세 단어다. 해마다 '톱3'에 부각된 세 단어 외에 공통으로 자주 사용한 '국가' '나라' '사회' '예산' '국회' 같은 단어를 제외하고 가장 자주 사용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시정연설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 청와대 홈페이지의 2018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사진(왼쪽)과 연설문 형태소 분석 결과(오른쪽 표)


첫해 시정연설에서 최다 언급한 단어는 '지원'(26) '확대'(19) '성장'(16) '혁신'(13) '한반도'(13) '일자리'(13) 등이다. 첫해 시정연설은 '재정 확대와 지원을 통한 경제 성장과 일자리 확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17년 11월 1일 시정연설 직전의 주요 사건을 보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건설 재개 권고안 발표(10. 20)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계획 발표(10. 25) △문 대통령, 지방분권 개헌방안 제시(10. 26) 등 개혁정책 드라이브를 펼쳤다. 문 대통령은 한국시리즈 1차전(10. 25) 시구도 했다.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을 보면, 집권 첫해 적폐청산과 정부혁신 기세로 지지율이 70%대(이하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한국갤럽 주간 여론조사 기준)의 고공행진을 기록하던 때이다. 시정연설 직전의 10월 4주차 갤럽 여론조사 문 대통령 지지율은 73%였다.

 

세대별 지지율을 보면, 20~30대 지지율은 80%를 넘었고, 40~50대는 70%선대였고, 60대 이상도 50%를 넘었다. 상대적으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자진 탈당을 권고할 만큼 야권은 지리멸렬하던 때이다.

 

집권 2년차 시정연설도 국정감사 기간에 이뤄졌다. 최다 언급한 단어는 '지원'(27) '성장'(25) '함께'(25) '포용'(18) '확대'(14) '일자리'(13) 등이다. 첫해와 마찬가지로 재정 확대와 지원을 통한 경제 성장과 일자리 확충을 반복하면서도 '포용'을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2019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사진(왼쪽)과 연설문 형태소 분석 결과(오른쪽 표)


2018년 11월 1일 시정연설 직전의 주요 사건을 보면, △문 대통령, 7박9일 유럽순방(~10. 21) △문 대통령, 남북 평양공동선언·군사합의서 비준(10. 23) △통일부,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추진 등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남북 관계가 순풍을 타던 시절이다.

 

10월 4주차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58%로 떨어졌고,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32%였다. 세대별 지지율을 보면, 30대에서만 70%였고, 20대와 40대는 60%대, 50대는 50%, 60대 이상에서는 47%까지 지지율이 떨어졌다.

 

한국당은 국감 기간에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 세습·특혜 채용 의혹을 파헤쳐 야당의 존재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집권 3년차인 올해 시정연설에서 최다 언급한 단어는 '공정'(26) '재정'(21) '혁신'(20) '포용'(14) '평화'(11) '검찰'(9) '개혁'(8) '성장'(8) '일자리'(8) '확대'(8)등이다.

 

(대다수 언론은 문 대통령이 '공정'을 27번 언급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문 대통령이 공정경제를 거론하면서 언급한 '하도급거래공정화법'의 '공정'까지 기계적으로 횟수를 계산한 것으로 엄밀히 계산하면 26번이 맞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사진(왼쪽)과 연설문 형태소 분석 결과(오른쪽 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0년도 예산 규모(513조5천억원)는 처음으로 500조대를 돌파한 초(超)슈퍼예산이다. 집권 이후 계속 예산을 확장해온 만큼 문 대통령은 올해도 '재정 확대를 통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지만, '성장' '일자리' '확대'가 빈도수의 순위에서 '공정'과 '검찰', '개혁'에 밀렸다.

 

문 대통령은 "'공정'이 바탕이 되어야 '혁신'도 있고 '포용'도 있고 '평화'도 있을 수 있다"며 "경제뿐 아니라 사회·교육·문화 전반에서, '공정'이 새롭게 구축되어야 한다"면서 "공정을 위한 개혁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공정'을 강조한 것은 '조국 사태'의 여파이다.

 

시정연설 직전의 주요 사건을 보면 △조국 법무부 장관, 검찰 개혁안 발표후 장관직 사퇴(10. 14) △문 대통령, '국민 갈등 야기 송구, 검찰개혁·공정 매진' 언급(10. 14) △평양 월드컵 예선 남북전 생중계 무산, 무관중 경기(10. 15) 등으로 '조국 사태'와 남북 관계의 악재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와 관련 "한반도는 지금 항구적 평화로 가기 위한 마지막 고비를 마주하고 있다"며 "우리가 함께 넘어야 할 비핵화의 벽으로, 대화만이 그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대가 있는 일이고 국제사회와 함께 가야 하기에 우리 마음대로 속도를 낼 수 없지만 우리는 역사 발전을 믿으면서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대화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했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3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금강산지구의 너절한 남측시설들을 싹들어내도록 하라"며 선대(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금강산 관광정책까지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을 떠받쳐온 중요한 한축인 남북관계마저 부정 평가 요인으로 작동할 조짐이다.

갤럽 조사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4.27 남북정상회담·판문점 선언 직후인 2018년 5월 첫째 주 직무 긍정률 83%로, 역대 대통령 취임 1년 시점 긍정률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작년 6월 제7회 지방선거 이후 경제·일자리·민생 문제 지적이 늘면서 긍정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9월 초 처음으로 직무 긍·부정률 차이가 10%p 이내로 줄었다.

이어 9월 중순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직무 긍정률 60% 선을 회복했으나, 이후 다시 하락해 12월부터 올해 9월 추석 직전까지 긍·부정률 모두 40%대인 상태가 지속됐다. 

그러다가 시정연설 직전인 10월 3주차 문 대통령 지지율은 39%, 부정평가는 53%로 긍··부정 평가는 취임 이후 각각 최저·최고를 기록했다. 집권 첫해 추경시정연설(82%)과 예산안시정연설(73%) 당시 지지율과 비교하면 정확히 반토막이 났다.

지지율을 세대별로 보면 20대와 30대 모두 40%대로 떨어지고 40대만 50%대를 유지한 가운데 50대는 30%대, 60대 이상은 20%대까지 떨어졌다. 직무수행 부정 평가자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결과(자유응답),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25%), 인사문제(17%), 독단적/일방적/편파적(13%) 순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예산안 시정연설 분석] (글자-낱말수와 지지율 추이)

비고 2017. 11. 1 2018. 11. 1 2019. 10. 22
글자수(자) 7,947 7,662 6,928
낱말수(개) 2,188 2,217 2,021
지지율 73% 58% 39%


국회에 정부 예산안의 원안 통과를 호소하는 대통령 시정연설은 통상 30분 내외의 분량이다. 집권 1·2·3년차 시정연설의 형태소 분석과 지지율 추이를 비교해보니 △첫해 시정연설은 글자수 7,947자, 낱말 2,188개, 국정수행 지지율 73% △2년차 시정연설은 글자수 7,662자, 낱말 2,217개, 지지율 58% △3년차 시정연설은 글자수 6,928자, 낱말 2,021개, 국정수행 지지율 39%로 나타났다.

대통령 예산안 시정연설 분석에서 드러난 한 가지 법칙은 대통령 연설의 길이와 국정수행 지지율이 비례한다는 것이다. 즉, 시정연설 직전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높을수록 연설이 길어지고, 지지율이 낮을수록 연설이 짧아졌다. 지지율이 높을 때는 국민에게 할 말이 많지만, 지지율이 낮을 때는 국민에게 할 말도 줄어든 셈이다.

KPI뉴스 / 김당 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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