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란의 토닥토닥] 퍼포먼스를 즐기는 아이로 키우면 어려움을 잘 극복한다

UPI뉴스 / 2019-10-14 09:13:25
가을엔 으레 동네 전봇대나 벽에 연주회와 축제 등을 알리는 홍보지가 붙어 있다. 학교 근처에는 발표회에 나가기 위해 연습하는 학생들의 연주 소리와 댄스곡 소리가 제법 큰 소음으로 등장하곤 한다. 이미 9월부터 자기가 발표하고픈 분야에 오디션을 통과했을 학생들은 날마다 연습에 매진하고 있을 시기다.

▲ 퍼포먼스는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지혜를 경험하는 귀한 레슨이 될 수 있다. [셔터스톡]


학예 발표회에선 교실 수업에서 보기 힘들었던 학생들의 놀라운 열정과 에너지를 보게 된다.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집약해서 보여주거나 평소 쌓은 재능을 특별히 선보인다. 마술, 연극, 난타, 사물놀이, 뮤지컬, 발레, 합창, 피아노나 바이올린 연주, 밴드 연주, 비보이 춤, 래퍼의 랩, 넌버벌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 태권도 시범 등 해마다 학생들의 발표 장르는 다양해진다.

부모가 최초로 기억하는 자녀의 퍼포먼스는 무엇일까. 아마 처음 가족들 앞에서 직립해서 보였던 그 순간이 아닐까. 집집이 간단한 율동에 따라 노래하는 자녀의 모습을 영상으로 열심히 찍은 기억이 있을 법하다. 한글을 깨우칠 때 소리 높여 단어를 읽은 일도 훌륭한 퍼포먼스이다. 때때로 막 언어를 배우는 어린 자녀는 시인의 기질을 보여주기도 했다. '잠이 막 걸어와', '땅이 이불을 덮었네. 나뭇잎 이불' 등. 그토록 배움에 열성이 있던 아이도 커가면서 반복되는 학습과 주입식 프로그램에 점차 도전의욕을 잃는다면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벽을 가득 장식하던 각종 상장은 퍼포먼스 결과물로 꾸며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그런 활동은 빛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성적이 가장 큰 관심사가 되면서부터다.

몇 해 전 학교의 공식적인 행사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초청되어 비보이춤을 추었다. 무대를 내려오던 그들 중 한두 명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 "마지막 착지에서 잠깐 집중력을 잃었어" / "지난주에 너무 많이 먹었어. 몸무게가 조금 느니 힘들었어. 관리를 더 해야 했는데"


땀에 젖어 또래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오면서도 자신의 퍼포먼스를 스스로 진단하는 그들이 놀라웠다. 어리게 보이지 않았다. 이미 한 단계 성장한 어른으로 보였다. 비보이춤에 대해 무지한 관객이 보기에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고난도의 기교를 선보였는데도 그러했다.

반면 같은 반 친구들이 참여하는 뮤지컬에서 한두 번 무대에 의자를 갖다 놓는 작은 역을 맞는 친구도 있다. 그들은 연습할 때도 지루할 법하다. 친구들이 멋들어지게 대사와 노래를 뽑을 때 대부분 시간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타이밍에 관해 연구해야 한다'며 제법 긴장한다. "의자를 언제 무대 중앙에 갖다 놓을까. 친구가 노래를 다 부르고 조명이 조금 어두워질 때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신속히 이동해야 해" 하며 연습한다. 의자를 치울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친구들이 대사를 잘 읊는지 노래를 음이탈 없이 잘하는지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지켜본다. 마치 감독이나 된 것처럼.

그래서 학교에서는 학예발표회에서 전체 학생들이 한 가지 역할이라도 맡아서 무대에 서게 하려고 노력한다. 몇몇 극성 부모들의 입김에 가수준비생이나 발레수련을 오래 받은 예비전공자들이 무대를 장시간 빛내기도 한다. 하지만 교사들은 가능한 많은 학생들이 무대 위에 서는 경험을 하게 권한다. 퍼포먼스는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지혜를 경험하는 귀한 레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퍼포먼스는 엄청난 책임감을 요구한다.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관객들은 시공간을 온전히 무대 위에 있는 사람에게 내어준다. 관객의 인생 한 부분을 책임지는 그 느낌, 해냈을 때의 성취감은 대단할 것이다. 그러니 성장기에 발표를 자주 해 본 사람은 세상에 나가서 담대하고 성숙하게 임무를 완수해 내는 힘을 갖게 된다.

아마 처음부터 퍼포먼스를 잘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배우 에단 호크는 무대공포증이 있었다. 파블로 카잘스나 마리아 칼라스 등 세계적인 연주자나 성악가조차도 무대에 나가기 전에 두려움을 경험했다고 한다. 퍼포먼스를 앞둔 예술가들의 최대 공포는 대개 비슷하다고 한다.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가정이 그것이다. 악보를 까먹거나 가사가 생각나지 않거나 대사를 잊어버리거나 하는 상황은 공연을 망치고 명성에 먹칠한다. 그러나 그 공포증을 이기는 방법은 공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한다. 진정한 프로는 실수하는 상황에서도 관객들에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러면 오히려 관객은 발표자와 소통해서 그 진정성을 알고 호응한다고 한다.

최근에 맞벌이 가정이 늘어 늦가을 저녁, 가족끼리 집안에서 작은 발표회를 갖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그럴수록 동아리 발표나 과제 발표 등 남 앞에 서는 활동을 권장해 본다. 꺼리는 학생은 이제부터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좋다. 작은 퍼포먼스를 성심껏 해내는 경험이 중요하다. 많은 예술인들이 즉흥적인 감정보다 몰입과 인내로 꾸준히 연습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온몸이 전율할 정도로 좋아서 시작한 활동도 자발성을 지속하려면 훈련을 통해 길들이는 과정을 이겨내야 한다고 한다.

자녀가 작은 퍼포먼스 한 가지라도 성의껏 해내도록 돕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 평소 자녀가 좋아하는 활동을 알아보고 발표의 기회가 있는지 이야기해 본다.

■ 부모가 자녀의 샤프롱 역할을 맡아서 연습 과정, 준비 과정에 참여해 본다. 이를테면 의상 준비, 배경 음악 고르기, 함께 대사 외우기, 총연습에 참여하기, 연습할 때 간식 갖다 주기 등 소소한 일을 자녀는 평생 즐겁게 기억한다.

■ 함께 발표에 참여하는 친구가 있으면 잘 알아둔다. 공동의 목적을 위해 친구와 협조하면서 인성이 발달한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즐겁게 연습하도록 해 본다.

■ 자녀가 실수할 수도 있다.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발표를 해낸 점을 칭찬해 준다.

■ 각종 발표나 동아리 활동을 기록해 둔다. 훗날 자기소개 에세이에 좋은 자료가 된다.

■ 보통 중도에 포기하려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 다시 처음 동기를 떠올려 보게 한다. 이번에 하다 말면 다음에도 또 그렇게 하는 습관이 든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도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해 준다. 매사에 포기를 당연시하면 찰나적인 즐거움만 추구하는 사람이 된다.

■ 발표 현장에는 반드시 참석해서 자녀의 소중한 순간을 함께 한다.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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