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 장기 체류, 북한에서의 비공식 직업이 주요 원인
"직업훈련 실효성 없어"…이수자 57% 다른 분야 근무
전문가 "재취업 지원 등 장기 취업 지원 제도 마련해야"

2003년 탈북해 8년간 중국에서 거주하다 한국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 김예령(42·가명)씨는 통일 교육 강사다. 학교 측에서 요청해야 강의를 할 수 있는 프리랜서 형태로 근무한다. 김씨는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김씨는 "식당과 고속도로 요금소에서도 단기간 일했다"면서 "대단한 곳에 취업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며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아보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미 수차례 취업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백화점 식품 판매직에 지원했지만 영어와 국어 실력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실패했다. 중소기업 면접장에서는 북한에서 졸업한 대학 학적이 걸림돌이 됐다. 스마트폰 액정을 만드는 공장은 나이를 문제 삼으면서 "북한 여자들은 고집이 세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다음 달 출산을 앞둔 김씨는 "조선족 동포에게 시키는 일도 탈북민에게는 주지 않는다"며 "이제 아이까지 생기면 일할 수 있는 곳이 더 없을 것"이라며 취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탈북자의 70%인 여성, 취업에 더 취약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 상당수가 김씨와 같은 여성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8년 9월 기준 북한이탈주민 3만2147명 중 여성 비율은 72%에 달한다. 여성 비율은 2006년 이후 70% 이상을 유지하며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7년 입국자의 경우에는 83%가 여성이었다.

탈북 여성들은 남한에서의 경제활동이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저조했다. 조사 대상 탈북민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1.2%이었다.
남성의 경제활동율은 73.1%인 반면 여성의 참가율은 57.3%에 그쳤다. 고용률도 남성은 69.9%였지만 여성은 52.6%에 머물렀다. 실업률의 경우에는 여성이 7.7%로 탈북 남성(5.1%)보다 높았다.

월평균 소득도 남성에 비해 80만원가량 낮았다. 탈북 남성은 239.4만원인데 비해 여성은 153.5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속연수도 짧았다. 임금근로자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근속 연수는 7개월 미만이 전체의 47%로 가장 많았다.
북한에서의 비공식 직업과 제3국 장기 체류가 원인
탈북민 중에서도 여성들이 취업에 더 취약한 원인은 이들이 북한에서 공식적인 직업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쉽게 북한을 떠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남성들은 북한에서 대체로 직장이 있고 북한에서 감시 통제가 훨씬 심하다"며 "여자는 직장이 없는 경우도 많고 있어도 장사를 하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이동이 자유로운 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여성들이 탈북이 쉽다는 측면이 있는 동시에 남한에 와서도 비공식 직업을 이어가는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김화순 한신대학교 통일정책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도 "북한 여성들은 대체로 공식적인 일자리를 갖기보다는 22~23살부터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남한에서도 마찬가지로 비공식적인 일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탈북 여성들이 제3국에 체류하는 경우가 많은 것 또한 이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저조한 이유로 꼽힌다.
김화순 선임연구원은 "남한에서도 남녀의 취업률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탈북 여성들은 탈북 과정 중 중국에서 가정을 꾸려 숨어 사는 경우가 많다"면서 "제3국 장기 체류에 따른 여러 가지 피해가 영향을 많이 미쳤기 때문에 취업률이 더 낮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들은 결혼을 하고 제3국에서 오래 생활해 딸린 식구들이 많고 건강도 악화되는 등 복합적인 상황들이 작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남북하나재단 조사에 따르면 제3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탈북 여성들은 73.9%에 달했다. 반면 남성은 45.2%만이 3국 거주 경험이 있었다. 딸린 식솔도 여성들이 더 많았다. 하나재단에 따르면 여성들은 남한에서 생계를 같이 하는 가구원(본인 포함)이 2명이 가장 많았던 반면 남성들은 1인 가구가 가장 많았다.
"직업훈련 실효성 없어"…여가부도 나서서 취업 지원
탈북 여성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직업 훈련이었다. 하나재단 조사에 따르면 탈북 여성들은 더 나은 남한생활을 위해 필요한 지원 1순위로 '취·창업 지원(취업알선,취업교육 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 중국에서 2년간 체류하다 2015년 입국한 탈북 대학생 임서희(24·가명)씨 역시 가장 도움받고 싶은 분야에 대해 "취업 지원에 있어서 탈북민을 위해 정부가 인턴십 기회를 마련해주거나 실질적으로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형태의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와 통일부는 2006년부터 북한이탈주민이 직업훈련과정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예비반 성격의 '기초직업적응훈련' 과정을 하나원에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고용노동부 산하 전국 60개 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북한이탈주민 취업보호담당관이 탈북민들의 진로지도를 지원하고 직업훈련기관을 알선하고 사업장을 연결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직업훈련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나재단에 따르면 직업훈련에 참여한 탈북 여성은 54.3%이다. 이들의 수료율(87.7%)은 높았지만, 유관 분야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나재단에 따르면 직업훈련을 이수한 탈북 여성 중 '수료한 분야에서 일한 적 없음'이 56.6%로 '수료한 분야에서 일한 적 있음(41.1%)' 보다 15%포인트 높았다. 직업훈련을 받았다는 김씨도 "솔직히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서 "훈련 분야 선택 폭이 대한민국 직업 폭에 비해 너무 좁다. 훈련 기간도 짧고 선택권이 좁아 배운 내용을 써먹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적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하나원에서의 12주 동안은 알려줄 게 많은데 기간 내에 직업실습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예산도 한정돼 있어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또 고용지원센터에 대해서는 "일반 시민들도 센터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매년 수정을 하고 최대한 더 좋게 만들려고 하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부터는 탈북자들을 위한 영농·창업·취업을 위한 교육-컨설팅-일자리 제공도 유기적으로 추진하고 '취업연계형 단기연수' 비중도 늘려나갈 예정이다.

최근 여가부도 탈북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돕기 위해 나섰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1월28일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하나원에서 간담회를 열어 북한이탈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위한 직업훈련 등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 방안을 모색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통해 2018년 한 해 동안 북한이탈여성 132명의 취업을 연계했다"면서 "간담회를 통해 탈북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들었으며, 지원을 확대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보편적인 정책 통해 장기적인 취업 지원 제도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탈북민들의 취업을 비롯한 정착 정책들이 보편적, 장기적으로 짜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김화순 선임연구원은 "현재 탈북민들을 별도로 분리해서 지원하는 정책은 탈북민들의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서 "취업 교육의 경우에도 지금처럼 탈북민들끼리 별도의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연계해 지자체 훈련기관에서 일반 시민들이 배우는 보편적인 것들을 우선적으로 제공한 뒤 모자란 부분들을 추가로 보충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탈북민들에게만 특별히 잘해준다는 명목하에 분리해서 특수한 교육을 하는 것이 오히려 한국 사회의 적응을 어렵게 한다는 설명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초등학생을 위한 탈북 코디네티어 제도는 학생들을 일반 학교를 보낸 뒤에 북한 출신의 코디를 배치해 따라가게 하는 제도"라면서 "성인 취업 교육도 마찬가지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장기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임재천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탈북 직후 하나원에서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이후에 자리를 잡고도 장기적인 지원 자체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여전히 단기적인 지원이 중심이다. 직업을 구했다가 적응을 못 해서 나오고 거기까지 지원한다"면서 "이제는 장기적으로 직업을 구했다가 나오더라도 재취업을 지원을 계속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단기적으로 특수한 계층으로 놓고 집중 지원해야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일반 사회복지 시스템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탈북민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남성욱 교수는 "(탈북 여성을 지원하면) 국내 여성도 어려운데 역차별 문제가 나올 수 있다"면서 "탈북민들을 공공기관에 단순히 취업시키는 등 시장경제 원리를 크게 훼손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탈북자들의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면서 "남한이 고생 끝 행복 시작이 아니라 진짜 고생 시작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식들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KPI뉴스 / 강혜영 기자 kh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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