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SF는 예측이 아니라 현대의 신화를 만드는 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5-09-19 17:12:50
세계적인 상을 휩쓴 SF 거장 중국계 미국 작가 켄 리우
SF작가가 미래를 예측하면 얼마 안 가 오류 드러날 것
기술은 인간의 본성 표현, 인간 이해의 요소이자 상징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개인, 미래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단편 한 편으로 세계 3대 SF·판타지문학상으로 불리는 네뷸러상과 휴고상, 세계 환상문학상을 한꺼번에 석권했던 중국계 미국작가 켄 리우(49). 중국 서부 간쑤성 란저우 시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한편 같은 대학 로스쿨을 거쳐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 변호사, 컨설팅 분야에서 일하면서 작품을 집필해오다 근년에서야 전업작가로 살기 시작한 특이한 이력의 작가다. 국내에도 단편집과 장편소설이 다수 번역돼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그가 MCT페스티벌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아 기자들과 만났다. 

 

▲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미국 작가 켄 리우가 처음 한국을 찾아 기자들과 만났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중국에서 '우편 주문 신부'로 미국에 온 여인에게서 태어난 소년. 이 아들은 엄마가 접어주는 종이가 동물이 되어 뛰어다니는 '마법'을 경험한다. 소년은 엄마가 죽고 나서야 종이 동물 안쪽에 깨알처럼 박힌 엄마의 마음을 읽는다. 이 단편 '종이동물원'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고, 세계적인 문학상을 석권했지만 초기에는 단편을 청탁한 출판사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기도 했다. 차별과 혐오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인류애를 자극하는 켄 리우의 출세작이다.

'(미국에서) 유색 인종 작가의 글은 오로지 자전적 고백일 때에만 가치 있는 것으로 대접받습니다. 저는 그런 분위기를 거스르고 싶어서, 처음에는 제가 물려받은 중국 문화와 관련된 것은 무조건 피하려고 매우 조심했습니다. 전혀 중국적이지 않은 서양적 글쓰기를 지향했던 겁니다. 그 결과는 끔찍이도 답답했습니다. 그건 입의 절반이 테이프로 막힌 채 말하는 것, 몸의 절반이 마비된 채 춤추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_ NBC 뉴스(2016)

-'종이동물원' 탄생 배경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저는 자전적인 글을 쓰지 않고, 작품 이미지도 제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직접 겪었던 일보다는 상상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쓰는 것이 예술적으로 훨씬 더 흥미롭다. 소설가로서 공동체의 일부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주 생각을 하다가 '우편 주문 신부'로 불리는 여성들 책을 접하게 됐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떠나온 이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모든 문화를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은 매우 영웅적이고 어려운 일이다. 저는 이들의 이야기에 깊이 감동했고, 그들을 기리기 위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때 마침 '마법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탁이 있었다. 항상 다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접근 방식을 택하려고 노력하는데 당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읽었던 이 여성들 중 한 명이 마법사라면 어떨까. 그렇게 이야기가 탄생했고, 확실히 독특했다. 청탁한 쪽에서 기대했던 마법사 이야기와 너무 달라서 거절당했다. 다른 곳에서 이 이야기를 출판할 수 있었고, 독자들의 큰 반향을 얻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경험을 다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적인 것, 더 넓게는 아시아적인 것을 SF와 결합했기 때문에 서구를 매혹시킨 것일까.
"사실 아시아 문화를 다룬 게 아니다. 저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제가 쓰는 모든 작품은 미국 문화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백인이 아니라고 해서 제가 쓴 작품이나 제가 하는 말들이 서구문화에 속해 있지 않은 건 아니다. 스페인어로 된 문학이나 아시아 문화, 아프리카를 다룬 작품들 같은 문화적 산물들은 작가가 미국인이면 미국 문화에 속해 있는 것이다. 미국의 관점에서 미국의 신화를 이야기한 것이다." 

 

▲ 국내에 소개된 켄 리우 작품들. 왼쪽부터 '종이동물원'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은랑전'.

 

'저는 프로그래머와 변호사, 소설가라는 저의 세 가지 직업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모두 '현대의 기호를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 직업은 기호적 인공물을 쌓아 올려서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기호를 적어서 어떤 기능을 지닌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변호사는 계약이라는 법률 시스템 안에서 태어난 기호적 인공물을 다루어 의뢰인을 지키기 위한 논거를 만듭니다. 그리고 작가는 말을 사용하여 감정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만듭니다.' _ '와이어드닷컴 저팬'(2017)

-다양한 커리어가 흥미롭다.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스타트업에서도 일을 했으며 개발자로도 일했다. 변호사가 되어 로펌에서도 커리어를 쌓았고, 법정에서 배심원과 판사 앞에서 지적재산권 관련 기술 설명을 해주는 증인 역할도 했다. 제가 했던 모든 일들은 프로그램이든, 계약서나 보고서이든, 일관되게 '상징'을 다루었다. 동시에 계속 글을 쓰고 있었는데, 15년 정도 지나니 글을 쓴다는 것이 일 그 이상이 되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금전적인 면에서는 희생을 해야 했지만, 작가들에게는 글을 쓸 수 있는 역량이 굉장히 중요하다. 정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치가 있고, 금전으로도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업작가로 사는 지금 행복하고 만족한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 SF작가의 상상력이 현실을 따라가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SF작가로서 저는 예측을 하는 게 아니다. 만약 예측을 하려는 것이라면 이 일을 하기가 굉장히 힘들 것이다. 기술이 너무나 빨리 발전해서 몇 년 내지는 몇 개월 안 돼 그 예측은 모두 틀릴 것이다. SF작가로서 하려고 하는 일의 목적은 현대의 신화를 이야기하고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기계에 대한 이야기가 수반이 될 수밖에 없고, 기계를 상징으로서 다루려고 한다. 예컨대 최초의 SF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켄슈타인'에서 메리 셸리(Mary Shelley, 1797~1851)가 하려고 했던 건 예측이 아니다. 시체를 꿰매서 생명을 주는 이런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지고 예측 비슷한 것으로도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인기가 있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이 기술의 발전과 현대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메리 셸리는 예측이 아니라 신화를 이야기한 것이고, 저도 그런 비슷한 일을 하려고 한다."

'나는 판타지와 SF를 구별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기로는 '장르 문학'과 '주류 문학'을 구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소설이란 손쓸 수 없을 만큼 변칙적이고 무분별한 현실보다 은유의 논리를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논리란 대개는 은유의 논리이므로.'_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말.

-SF만의 매력은?
"미국 작가 우르술라 K. 르귄(1929~2018)는 SF를 환상문학이라는 왕국의 가장 새로운 지역이라고 했다. 저도 동의하거니와 SF는 사람들에게 이미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신화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인간을 위협하는 식으로 흔히 표현하는데, 기술은 인간 본성의 표현이라고 본다. 글을 쓰는 행위도 일종의 기술 아닌가. 플라톤은 글쓰기가 인간을 덜 인간적으로 만든다고도 했다. AI도 사실 글쓰는 행위와 구별되지 않는다. 작금의 삶에는 기술적 요소들이 너무 많아 기술 없이는 인간이라는 인류를 생각하기 힘들어졌다. 휴대폰 없이는 연락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저 역시 제 아내를 제외하고는 누구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한다. 제 기억 속에 있는 건 다 휴대폰 안에 있고, 제 뇌의 상당 부분이 이 기계 안에 들어 있는 셈이다. 우리는 기술 없이는 온전한 인간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 개미를 이해하려면 개미집을, 벌을 이해하려면 벌집을 이해해야 하듯 인간을 이해하려면 기술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기술은 곧 우리의 자연이고, 그렇기 때문에 SF가 독자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장르인 것이다."


▲ 켄 리우는 "어떤 면에서는 기술자들야말로 현대의 마법사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AI 창작에 대한 견해는?
"현대 AI 발전의 상당 부분이 예술가들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가져온 사실에 기반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예술가들이 세상과 나누기 위해 만든 아름다운 것들이, 원치도 않았고 허락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기계 학습에 쓰였고, 이제는 그들을 대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예술가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타당하며 저 역시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여기에만 머물고 싶지는 않다. '대체 불안'과 '보상 문제'는 단기적인 논점이고, 장기적 함의가 더 흥미롭다. AI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매체가 될 가능성, 인간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그것이다. 저의 꿈은 AI를 이용해 완전히 새로운 예술 형식을 인간 예술가들이 발명하는 것이다. 단순히 '인간을 흉내 내고 대체하는 AI'에는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 독자가 추리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용의자를 심문하면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그 용의자가 AI 기반 캐릭터라면—이것은 기존 매체로는 불가능한 새로운 예술이 될 수 있다. 집필할 때 AI를 직접 활용하지는 않는다. 제 관심은 어디까지나, AI로 완전히 새로운 예술이 가능할지를 탐구하는 데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과학 소설이 하는 일, 또는 적어도 내가 이야기 속에서 하고자 하는 일은, 오히려 희망과 공포로 가득한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확대경을 가져다 대는 것이다. 최신 경향을 토대로 추론하고 점차 흔해지는 패턴들을 상술하고 아직 덜 여문 혁신의 논리적 귀결을 제시함으로써, SF는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의 면면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강조하는 고성능 필터로서 기능한다. _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머리말

-작금 세상의 가장 밝은 희망과 끔찍한 절망은?
"사실 두 가지를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모든 미래에는, 놀랍도록 아름답고 긍정적인 가능성과 동시에 끔찍한 가능성이 함께 숨어 있다. 다만 제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오늘날 기술은 개개인의 힘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과거 어느 시대와 비교해도, 지금 이 순간 각 개인이 역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우리는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방식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 가속화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건 우리 각자의 몫이다. 우리 세대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세대이고, 우리 각자는 지금까지 살아온 그 어떤 개인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이다. 우리는 그 힘을 최대한 발휘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미래는 타인이 아닌 각자 개개인에 달려 있다."

 

▲ 켄 리우는 "글을 쓴다는 행위도 처음에는 기술로 취급해 비인간화를 우려했다"면서 "기술은 인간 본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켄 리우는 "우리가 인간 본성의 일부라고 여겨온 '언젠가 죽는다'는 전제는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면서 "이미 많은 기술자들은 죽지 않는 최초의 인간은 이미 태어났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우리는 '죽는 세대'의 마지막을 목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그것이 인간됨의 의미를 어떻게 바꿀지 모르지만,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몹시 흥분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의 많은 작품들에는 죽은 아빠가 컴퓨터 저편에서 그림문자로 딸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인공 지각체(知覺體)들이 전쟁을 야기하기도 한다. 육체를 지니고 감각을 경험한 '인격'을 지닌 1세대 컴퓨터 속 유령들에 이어 2세대 버전은 육체 없이도 불만을 지니지 않는 새로운 존재들로 거듭난다. '일곱 번째 생일'에서는 맨해튼보다 더 작은 데이터센터 수천 곳에 3000억이 넘는 인간의 의식이 거주한다. 49세, 343세, 16807세, 117649세, 823543세에 바라보는 우주가 펼쳐진다. 나이를 세는 것마저 부질없어진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딸이 미래의 엄마에게 전하는 말.

'우리는 흠 있는 존재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이롭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엄마에게 말해 주고 싶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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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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