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9월부터 2018년 9월까지 1년간 나홀로 SUV 차량을 타고 무려 46개국 7만9365km에 이르도록 종횡무진 대륙을 달린 사나이가 있다. 장용우. ‘왕초’ ‘호텔리어’ ‘행복합니다’ 등 수십편의 MBC, SBS 드라마와 JTBC ‘D데이’ 등 대작 드라마를 연출한 감독이다. 그가 이번엔 평생 꿈꾸어 오던 드라마형 로드다큐를 만들었다. UPI뉴스 온ㆍ오프라인 채널에 ‘장 감독의 대륙횡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유럽과 아시아 대륙 곳곳의 현장에다 온몸을 던져 이를 담은 영상과 기사. 그 장대함과 정교함 그리고 감동은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끈다. [편집자]
UN 회원국 아닌 코소보 · 대만의 비극
2016년에는 “이게 나라냐?”라는 말을 질문으로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그 문장을 절망적 국가상황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나 탄식으로 이해했다. 나라답지 않은 나라도 엄연히 국가니까 “나라는 맞쟎아?” 라고 반문했다가는 광화문의 쓰레기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나라 또는 국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땅에서 우리 뜻대로 딴 동네 사람들과 사귀거나(외교) 싸울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교과서적으로 표현하면 국민, 영토, 주권이 국가의 3요소이다. 이론은 단순 명료해 보이지만 현실은 약간 복잡하다.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친구들이 제주도에다가 3000평 쯤 땅을 사서 ‘소한민국’이라 이름을 짓고 건국을 선포한 다음 재빨리 헌법도 만들면 나라가 되는걸까?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예능프로에 잠깐 소개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나라일까.
1933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아메리카대륙의 16개 나라가 모여서 ‘몬테비데오 협약’이란 걸 만들었다. 국제법의 관례에 비추어 국가를 어떻게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를 정한거다. 이 협약은 국민, 영토, 정부, 외교능력 4가지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교과서에서 배운 국가의 3요소와 비슷한 듯 다르다. 또 다른 국가의 정의에는 ‘승인’이라는 개념이 도입된다. 즉, 이웃 나라가 “너 국가 맞아”라고 인정해 주면 되는 거다. 가장 확실하게 국가로 인정받는 길은 국제연합, UN의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거다. 정식 회원국이 되려면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하고 총회에서 회원국 3분의 2 이상이 손을 들어줘야 한다.
그래서 대만은 UN이 인정하는 국가가 아니다. 중화민국은(우리는 이 이름을 잊은 지 오래다. 1992년 8월 21일 명동, 그의 집에서 청천백일기를 내리고 떠난 지 한 세기나 지났으니까) 국민과 정부가 엄연히 존재하고 국기와 국가는 물론 군대도 보유하고 있으며 그 맛있는 펑리수와 샤오롱바오를 만드는 데도 본토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거부하는 바람에 UN에 가입도 못하고 국가의 자격으로 국제적인 행세를 거의 못하고 있다. 현재 UN 회원국은 193개. 거기다가 옵서버로 바티칸과 팔레스타인이 추가되면 195. UN 회원국은 회원, 즉 멤버쉽일 뿐이지 국가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헬스클럽 회원처럼 회비 내고 들락거리는 데 딱히 나라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전혀 쓸모없는 클럽이라고 흉 보는 사람들도 있다.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 있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박물관에 가면 UN을 United Nothing(헛것들 연합)이라고 친절하게 해설해 둔 포스터를 만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나라가 꼭 UN 회원국인건 아니다. 오히려 축구클럽 회원증이 더 잘 나간다. FIFA(국제축구연맹)는 2016년 코소보와 지브롤터를 받아들임으로써 211개의 회원국을 확보했다. 여기엔 할머니 왕을 섬기는 섬나라 UK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4개국으로 쪼개서 축구 종주국 텃세를 부린 것도 포함된다. 세계은행은 홍콩과 마카오, 심지어 미국령 사모아도 별개의 나라로 간주한다. 지들 편한 대로 각 집단의 이익에 따라 국가를 다르게 정의한다. 숫자를 정리해 보자. UN회원국 193. 더하기 바티칸, 팔레스타인 해서 195. 여기다가 대만, 코소보 더하면 197이 된다.
코소보 가려면 ‘철천지 원수’ 세르비아 통과해야
코소보는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는데 현재 100개국 이상의 UN 회원국들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세르비아랑 철천지 원수, 죽고 죽였던 관계다. 코소보와 세르비아를 여행 하려면 반드시 세르비아를 먼저 방문하고 코소보로 들어가야 한다. 다른 나라(알바니아, 마케도니아와도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를 통해 코소보를 방문한 다음 세르비아로 가려면 입국이 거절된다. 세르비아 입장에서는 코소보가 자기 땅이므로 허가없이 뒷문으로 불법 입국한 걸로 간주한다. 세르비아와 코소보 국경검문소를 통과해 양쪽 나라를 오갈 때면 분쟁지역의 긴장을 확인할 수 있다.
비행기로 여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오버랜드 여행만의 현장감, 스릴이라는 특별메뉴를 즐기는 거다. AK47을 어깨에 메고 여권을 뒤적이던 군인이 매서운 눈초리로 차안을 살핀 다음, 고개를 살짝 흔들며 나즈막히 ‘프로블렘마’ 라고 읖조릴 때 밀려오는 전율. 호흡과 맥박이 빨라지고 머릿속이 조금씩 하얗게 비어가는 느낌.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안절부절 하면서 그 분이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지만 오고가는 대화는 동문서답, 마이동풍의 답답한 느낌이 든다. 현지어 또는 악센트 강한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마치 그 모든 소통의 장애와 빌어 먹을 영어회화 실력이 다 나의 잘못인 듯 죄송해 해야 하는 자학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랑스런 대한민국 여권에 스탬프가 쾅 찍히고 국경검문소를 빠져 나올 때의 해방감은 꿀맛이다. 마지막 관문인 차단기가 올라가고 국경검문소를 등지고 나올때는 뜨끈한 안도감이 밀려온다.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러너스 하이로 알려진 내인성 모르핀의 분비인지도 모른다. 보더 크로싱 하이(Border Crossing High)라고 명명하고 싶다. 코소보가 독립하고 국가로 인정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미국이다. 따라서 미국편인 대한민국도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한 나라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반대쪽이다. 특이하게도 서유럽국가 중 스페인도 반대편인데 이는 아마도 카탈루냐, 바스크 등 자국 내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들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100개 이상의 나라가 승인하고 있지만 여전히 코소보는 UN 가입을 못하고 있다. 만장일치 5개 상임이사국 중에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코소보에 미국은 은인이자 연인이다. 수도 프리슈티나에 가보면 영어 간판이 즐비하다. 미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려고 무지 애쓰는 흔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빌 클린턴 대로를 따라 클린턴 동상도 있다. 이렇게 미승인국으로 남은 국가들의 국경선은 구글지도에서 점선으로 표기되어 있다. 자세히 봐야 한다. 그렇다면 197개국에조차 포함되지 않은 미승인국은?
미국이 은인… 영어 간판 즐비한 프리슈티나

영화 ‘터미널(Terminal 2004)’에서 빅터 노바르스키(톰 행크스)는 JFK 공항에 막 도착해서 자신의 조국 크라코치아에 쿠데타가 발생, 나라가 없어졌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그의 여권이 무효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공항에서 살게 된다.
이 영화의 원작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1942년 이란 출생의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라는 사람이 영국에 도착했으나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이란 여권과 UN의 난민인증서를 도난 당해서 신분확인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는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으로 날아갔고 그곳에서 역시 입국이 거부되는 바람에 1번 터미널 안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그가 2006년 질병 때문에 파리의 한 병원에 실려 갈 때까지 무려 16년이나 앨프리드 경(Sir Alfred)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공항에서 살았다고 한다.
영화 ‘터미널’ 제작사 드림웍스는 그의 이야기를 사용하는 대가로 25만달러를 지불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톰 행크스의 모국 크라코치아는 가상의 국가이다. 이름으로 유추해 보면 동유럽, 발칸반도나 흑해 지역에 있는 슬라브 국가처럼 보인다. 톰 행크스도 러시아어 비슷한 말을 하거나 슬라브 악센트의 영어를 한다. 실제로는 장인의 고향인 불가리아어를 섞어서 쓰고 엉터리로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동유럽과 발칸, 카프카스 남쪽 지역은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새로운 독립국가가 여럿 생겨난 지역이다. 카프카스 3국(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그 안에 독립한 공화국들, 러시아 남부의 체첸공화국 등은 언제 충돌이 재연될지 모르는 상태이다. 그런 분쟁지역을 지나는 여행자들은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강화된 검문에서 쓸데없는 시비거리에 휘말리지 않는 게 좋다.
몰도바서 우크라이나로 탈출 결심
몰도바는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끼어 있는 동유럽 국가이다. 신혼여행 많이 가는 인도양의 몰디브와 이름이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딴판이다. 바다도 없다. 흑해를 코앞에 두고(2km) 우크라이나한테 막혀 있는 내륙국이고 유럽에서 가난한 나라 상위 랭커다. 정말 따분한 수도 키시나우에서 며칠 빈둥거리다가 우크라이나로 탈출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그나마 유명하다는 와이너리를 방문했지만 포도밭조차 초라해 보였다. 우크라이나까지 40여분 남았다는 내비의 안내를 확인하는 찰나, 갑자기 작고 아담한 장갑차가 보였다. 장갑차에 기대어 스마트폰을 뒤적이는 병사와 짧게 눈을 마주쳤다. 아부의 미소를 던지려고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순간 그가 외면했다. 모바일 게임을 방해한 모양이었다. 장갑차 연료통에 기름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국경인가 의아해 하며 다리를 건너니 엉성한 영화세트장 같은 검문소가 나온다. 미술감독이 예산절감을 위해서 창고를 뒤져 찾아낸 중고 자재들을 활용한 것 같은 미니어처 건물 두 채와 역시 재활용된 게 틀림없는 의상을 입은 엑스트라 포스의 군인, 경찰, 세관원들이 놀란 눈으로 낯선 동양인과 한국자동차 번호판을 번갈아 봤다.
나는 자랑스럽게 대한민국 여권을 내밀었다. 그들은 당황하며 몰도바어 또는 루마니어어 또는 러시아어 중의 하나라고 짐작되는 언어로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좀 젊은 직원 한명이 “웨이트 아웃사이드”라고 영어로 이야기한다. 사무실에서 추방하는 거다. 그렇게 카메라도 조명도 없는 세트장에서 30분 이상을 서성거렸다.
사무실에서 영어직원이 나와서 다른 작은 사무실 건물로 이동한다. 왜 나와 눈도 안 마주치는 거지? 잠시 후 또 다른 자가 나온다. 손짓하며 부른다. 작은 쪽지를 준다. 체류허가증이다. 손가락으로 작은 사무실을 가리킨다. 그 곳은 세관 사무실이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런 언어장벽을 느끼지 않고 그렇게 손짓 눈짓 만으로 소통하면서 입국 수속을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방문한 세관 건물 중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무실에 들어가니 그 사무실 면적의 반을 차지하는, 하지만 여전히 자그마한 책상에 영어능력자 직원이 차분히 앉아 있었다. 오랜 침묵수행과 판토마임 또는 텔레파시를 끝내고 입술과 혀를 사용하는 세속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내가 지금 우크라이나에 도착한건가?”
“아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몰도바에 있단 말인가?”
“아니다”
“…”
“여기는… 트란스*** 이다”
“뭐?”
“트란스시…”
“트란실비니아?”
“노 노! 트란스트**”
“처음 듣는데?”
“음… ”
세관직원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엷은 슬픔과 쪽팔림이 함께 버무려진 샤이핑크가 섹시해 보였다.
‘존재하지 않는 나라’ 트란스니스트리아에 도착

그는 난생 처음 만져 본 대한민국 여권을 돌려주며 좀 전에 그들이 토론한 결과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비넷(일종의 고속도로 통행료) 가격 15유로를 내라는 요구다. 도무지 제대로 발음할 수 없는 이 나라를 지나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가는 20분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통행세인 셈이다. 20불을 건넸더니 잔돈이 없다고 했다. 결국 나는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잠시 들어왔다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쏜살같이 지나가면서 20불을 뜯긴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고속도로 비슷한 것도 보지 못했다. 콘크리트 포장은 깨져 있었고 표지판은 난해했다. 길가의 해바라기 구경하는 값이려니 했다. 귀국할 때까지 이 나라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구글지도에도 우리나라 외교부 홈페이지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지도를 뒤져봐도 알 수 없는 이 나라의 이름은 트란스니스트리아였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0년 몰도바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몰도바와 우크라이나 국경을 따라 남북으로 길쭉하고 구불구불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라인데 인접국 몰도바는 이 나라의 독립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승인한 나라는 아르차흐 공화국, 남오세티야, 압하스 공화국 뿐이다. 이 셋 역시 UN 미가입 나라이다.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구글지도에 점선조차 안 나온다. 그래도 국가, 국기, 대통령(민주적인 선거로 선출된), 화폐 등 있을 건 다 있다. 인구는 50만 남짓. 강원도의 4분의 1 사이즈. 수도 티라스폴은 옛 소련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소비에트 테마파크라고 불리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여행 안내 사이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방문하기’라는 제목으로 이 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문득 오래된 해바라기의 노래 제목이 생각난다. “갈 수 없는 나라” 트란스니스트리아도 “나무와 풀과 꽃들이 있는 나라”임이 분명하다. 다만 아무도 이 나라를 나라라 불러주지 않으니, 결국은 어디에도 없고 아무도 모르는 갈 수 없는 나라인 셈이다.
KPI뉴스 / 글·사진 장용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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