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조합 승계 및 단체협약 체결 요구
사 측 "5년 간 파업 않기로 한 약속 어겨"
7일로 422일째. 세계 최장기 굴뚝농성 기록이 연일 갱신되고 있다. 파인텍 소속 홍기탁 전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과 박준호 사무국장이 지상 75m 높이 서울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세운 기록이다. 두 노동자는 이곳에서 두 번째 새해를 맞이했다.

이에 앞서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이 있었다. 같은 파인텍 소속 차광호 현 지회장이 세웠다. 그는 홍 지회장 등에 앞서 스타플렉스 구미 공장 굴뚝에서 408일을 버텼다. 그는 현재 스타플렉스 본사가 있는 CBS건물 앞에서 천막을 치고 무기한 단식 농성 중이다.
첫 408일 간의 고공농성
파인텍 노동자들이 번갈아 굴뚝 위에서 머문 날만 모두 900여일. 회사와 싸운 기간은 이보다 훨씬 긴 8년여 세월에 이른다. 파인텍 사태의 시작은 2010년. 홍기탁과 박준호, 차광호는 모두 2006년 파산한 섬유가공업체 '한국합섬' 출신이다. 2010년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가 파산한 한국합섬을 인수했다. 김 대표는 당시 감정평가 870억원의 한국합섬 공장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으로부터 399억원에 넘겨받았다. 헐값 인수조건 중 하나는 파산 이후 공장을 지켜온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 보장과 공장 정상화였다.
김 대표는 한국합섬 노동자 100여명의 고용을 보장하고 공장정상화를 약속했다. 한국합섬의 이름을 '스타케미칼'로 바꾸고 이듬해 3월 5년 만에 공장 재가동에 들어갔다. 차광호 지회장 등 한국합섬 노동자 100여명은 스타플렉스 자회사인 스타케미칼 노동자가 됐다.
하지만 스타케미칼은 문을 연 지 불과 1년 7개월 만에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을 선언했다. 차광호 지회장 등 일부 노동자들은 김세권 대표가 한국합섬을 인수한 뒤 이익만 챙기고 빠지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이에 대해 강민표 파인텍 대표(스타플렉스 전무)는 "5년 간 가동이 중단됐던 회사를 재가동시켰다가 도리어 손해를 입은 건 회사"라면서 "공장 가동을 다시 중단시키고 철수할 당시 입은 영업 손실만 1300억원에 가깝다"고 반박했다.
사 측의 공장 가동 중단 선언 다음날인 1월3일, 일부 조합원이 회사 청산에 반대한 당시 차광호 지회장 집행부에 대한 불신임 서명을 받았다. 노동조합 분열을 우려한 차광호 지회장은 지회장직에서 사퇴했지만 노조는 차 지회장을 제명했다. 새로 지회장이 된 유승재 지회장은 전체 조합원에게 "폐업은 기정사실이니 회사가 퇴직 위로금을 챙겨준다고 할 때 모두 사표를 쓰는 것이 실리다. 사표를 쓰더라도 고용승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사표를 종용했다. 조합원 168명 중 139명이 희망퇴직을 해 퇴직 위로금을 받고 뿔뿔이 흩어졌다. 고용승계는 되지 않았다.
2월17일 사 측은 나머지 29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희망퇴직원을 내지 않은 차광호와 홍기탁, 박준호 등 28명의 노동자는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2014년 5월27일, 스타케미칼이 완전히 문을 닫자 차광호 지회장은 구미시에 있는 스타케미칼 공장 45m 높이 굴뚝에 올랐다. 2015년 7월8일, 차광호 지회장은 김세권 대표의 약속을 받아내며 408일 만에 땅으로 내려왔다. 스타케미칼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가 해고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고, 해고자복직투쟁위가 꾸린 노조와 이듬해 1월 안에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파인텍이 만들어졌지만…
이 약속으로 충남 아산에 새로 만들어진 회사가 파인텍이다. 파인텍은 스타플렉스 자회사가 아닌 별도의 회사로, 회사의 대표는 강민표 스타플렉스 전무가 맡았다. 직원은 해고자복직투쟁위 노동자 11명이었다. 이들은 2016년 1월4일부터 파인텍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파인텍은 노동자들에게 2016년 최저임금(시간당 6030원)에 1000원을 더한 7030원의 시급에 해당하는 월급을 주면서, 야근이나 잔업을 시키지 않았다. 세금과 4대 보험 등을 제외하면 매달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120여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파인텍에는 노후한 기계와, 판넬로 지어진 기숙사에 생활에 필요한 물건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식사도 점심 한 끼만 주어졌다. 노사가 다음해 4월까지 18차례 만났지만, 애초 2016년 1월까지 체결하기로 했던 단체협약도 이뤄지지 않았다. 사 측은 비용이 드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단체협약의 쟁점은 노조활동과 복지였다. 노동자들은 사 측이 '스스로 지쳐 떠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소연 '스타플렉스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 대표는 "단체협약이 체결됐다면 최저임금이 아닌 보다 나은 임금·근로조건과 노조활동을 보장받아 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에 놓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강민표 파인텍 대표는 "노조 측은 이전 스타케미칼 시절의 단체협약을 요구했는데 무리한 내용을 들어줄 수 없었다"면서 "파인텍과 같은 신설법인은 쉽게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에 초기 비용을 최소화한 뒤 번 돈을 갖고 나누자는 것이었다"고 했다.
김세권 대표가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한 노동자들은 지방노동위원회 조정을 거쳐 2016년 10월 파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회사는 이에 맞서 공장을 폐쇄하고 다음해 8월 공장에서 기계를 철수시킨 후 건물의 임대기간도 연장하지 않았다. 건물주는 파인텍이 있던 공장에 새 사업체를 입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세 명의 노동자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노조를 떠났다.
이에 2017년 11월12일 박준호, 홍기탁은 두 번째로 굴뚝에 올랐다. 스타플렉스 서울사무소가 보이는 75m 높이의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이다. 차광호 지회장은 전국을 돌며 연대를 호소했다. 김옥배는 매일 밤 문화제마다 사회를 보는 등 나머지 모든 일을 처리했다. 이렇게 '파인텍 사태'가 8년 동안 이어지면서 함께 싸우던 28명은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건 5명뿐이다.
오체투지와 연대 단식…침묵하는 정부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조합원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인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은 지난달 6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스타플렉스 서울사무소까지 20km에 걸친 아스팔트 바닥을 오체투지로 이동했다. 두 팔과 양 무릎,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하는 오체투지를 통해 굴뚝 위의 두 노동자들을 반드시 땅에서 만나겠다는 결의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연대 단식투쟁도 이어졌다. 앞서 굴뚝농성을 했던 차광호 지회장은 지난달 10일부터 28일 째 단식을 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18일부터 송경동 시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나승구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 박승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 등도 무기한 연대 단식에 돌입했다.
세 명의 노동자가 굴뚝 농성을 하는 동안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는 '노사 간의 문제'라며 사실상 고공농성을 방치했다. 문재인 정부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해결을 논의하는 '투쟁사업장 해결을 위한 노정협의체'를 꾸렸으나 협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오히려 서울에너지공사에서 낸 퇴거가처분이 승인됨에 따라 굴뚝농성 중인 박준호, 홍기탁 노동자에게 1인당 하루 50만원씩 퇴거강제금이 쌓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김옥배 파인텍지회 부지회장은 "정부가 회사의 굴뚝합의 불이행은 민사상의 문제라며 노사문제에 적극 개입하지 않고 있다"면서 "고용노동부는 법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얘기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 차례의 교섭 결렬…결국 해를 넘긴 고공농성
두 번째 고공 농성을 시작한 지 411일째인 지난달 27일, 종교계 중재로 노사 간 첫 번째 교섭이 성사됐다. 굴뚝 농성이 시작된 지난해 11월12일 이후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가 파인텍 노동자와 만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그러나 차광호 지회장 등 노조 대표들과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 등 회사 관계자들이 만난 협상에서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차 지회장은 교섭 직후 "서로 간의 이견이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면서, 사태 해결 전까지 농성을 해제할 뜻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협상의 쟁점은 스타플렉스로의 직접 고용 여부다. 노조 측은 스타플렉스가 파인텍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파인텍은 현재 생산설비도 직원도 없는, 서류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에 가깝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직접 고용이 성사되면 파인텍 노동자들은 음성에 있는 스타플렉스 공장으로 출근하게 된다. 아울러 차광호 지회장이 408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면서 얻어낸, 고용과 노동조합을 승계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 측은 스타플렉스로의 직접 고용은 물론, 복직 시 5명에 불과한 파인텍 노동자들을 이전 스타케미칼 단체협약 수준으로 보장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또 5명의 노동자들이 지나친 강성이라 본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강민표 파인텍 대표는 "노조 측의 논리는 한 번 고용했으면 평생 고용하라는 건데, 관계사가 망했다고 다른 관계사가 인수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스타케미칼 때 5년 간 파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가 약속을 어겼던 사람들을 본사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파인텍 노조와 사 측은 지난달 29일 2차 협상을 열었다. 그러나 6시간여 동안에 걸친 이날 협상에서도 아무런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지난달 31일에도 파인텍 노동자들과 회사 측은 비공개 3차 교섭을 진행했지만 결국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세 차례의 교섭이 모두 빈손으로 마무리 되면서, 굴뚝 위 고공농성은 결국 해를 넘겼다.
노사는 새해 들어 3일 4차 협상을 열었지만 역시 결렬됐다. 5차 협상 일정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고공 농성 421일차인 지난 6일엔 홍기탁, 박준호 두 노동자가 무기한 고공 단식에 돌입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목숨을 건 선택을 한 것이다.
김옥배 파인텍지회 부지회장은 "참담하다. 900일 넘게 고공농성을 하고 단식까지 했는데 문제가 해결된 게 없다"면서 "김세권 대표가 책임지는 자세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누군가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지속적으로 얘기했다면 구의역 노동자나 김용균씨처럼 청년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누군가는 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해야겠기에 5명뿐이지만 남아 싸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KPI뉴스 / 황정원 기자 hj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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