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단체 "성인이 아동인권에 더 민감해야"
"체벌, 문화 아닌 폭력…인식 개선 시급"
엄마가 묻지 않았다면 아이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면서 창피했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 파주의 한 어린이집 이사장이 7세 여아에게 음란물을 강제로 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는 반복적으로 겪으면서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
경찰은 해당 이사장을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아이의 말과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이런 혐의가 드러날 수 있었을까? 이처럼 자신의 권리를 인지하거나 주장하기 어려운 아동을 보호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동단체를 찾아 들어봤다.
"권리를 모르면 침해도 모른다. 아이가 자신의 권리를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권리를 지켜주는 건 성인들이다. 성인 대상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다." 왕정희 세이브더칠드런 과장의 말이다. 인터뷰는 지난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사옥에서 진행됐다.
세이브더칠드런은 1919년 영국 여성 에글렌타인 젭이 설립한 국제 아동단체다. 내년에 100주년을 맞는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모태가 된 1923년 아동인권선언 역시 설립자 젭이 썼다. 아동의 생존·보호·발달·참여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전 세계 약 120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 아동학대는 무엇인가
"아동복지법에서는 아동학대를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 어린이집 이사장이 아이에게 음란물을 보여준 것도 아동학대인가
"아이에게 음란물을 보여주거나 유사 성행위를 하는 건 성학대에 해당한다. 말과 행동이 모두 포함된다. 아동학대에 대한 개념 인지 여부를 떠나서, 이런 행위를 한 사람이 그게 잘못된 행위라는 걸 몰랐을 리 없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같이 아동을 만나는 시설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동인권에 대해 더 민감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아동에게 '이곳에서는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동에게 더 안전한 사람들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해외에서나 국내에서나 잘 지켜지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아동 시설 종사자에 의한 아동학대 사건이 계속해서 불거져 나온다. 세이브더칠드런의 경우 '아동안전보호정책'을 두고 있다. 입사하는 모든 직원이 이 정책에 서명한다. '아동에게 안전한 사람들이 되자'는 취지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아동안전보호정책'은 △사명 선언문 △아동에 대한 약속 △행동강령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이 중 '행동강령'은 직원 및 기타 관련자들이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보호자 없이 밤새 아동의 집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동을 수치스럽게 하거나 창피를 주고 무시하는 행위를 하지 않으며 어떠한 형태의 정서적 학대도 행하지 않는다', '아동을 차별하거나 특정 아동을 편애하지 않는다' 등이다.
- 정책에 서명하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나
"입사할 때 한 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아동을 만나러 갈 때마다 서명한다. 기자나 취재진도 포함된다. 가기 전에 서명하고, 중간에 하고, 끝날 때 다시 한다. 그리고 서약서 내용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기관 내부의 누구에게 알려야 하는지, 긴급할 때 경찰에는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까지 명시돼 있다."
- 아동은 자신이 경험하는 일에 대한 가치 판단이나 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개선책이 있을까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이 어려서부터 권리를 인지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1991년 가입했다. 아동이 권리를 알게 되면 자신이 권리를 가진 소중한 존재이며 옆의 친구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럴 때 침해 상황을 인지하고 누구에게 말해서 어떻게 바꿔야 할지 알 수 있다.
아동에 대한 체벌도 근절해야 한다. 아동폭력은 학대뿐만 아니라 체벌도 포함된다. 아직 '학대는 안 되지만 체벌은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남아있다. 훈육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는 체벌도 폭력이라고 본다. 최근 들어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절대로 안 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아동에 대한 인식도 이런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 우리나라 아동인권 수준은 어떤가
"외국과 단순 비교는 어렵다. 인권에는 순위도 잘 매기지 않는다. 상대적인 면죄부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동 관련 지표는 더욱 없다. 우리나라가 조혼이나 할례가 남아있는 나라보다는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동인권 침해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아동을 대상으로 '삶의 질' 조사를 해보면 초등학교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행복감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에게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가'라고 물으면 35%가량만 그렇다고 답했다. 또 부모의 77%, 교사의 24%가 아동의 권리에 대해 교육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개인의 권리는 잘 인지되지 않지만 아동의 권리는 더 심하다. 작년에 미국 괌으로 여행갔던 한국인 판사·변호사 부부가 차량에 아이들(당시 6세와 1세)만 두고 쇼핑을 갔다가 아동학대 혐의로 체포된 일이 있었다. 체포된 뒤에는 자녀들을 학대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소위 '고위직'이라고 하는 부모조차 아동학대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보통 '문화'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의 차이가 아니다. 권리는 보편적인 것이다. 내 자식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 '내 자식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직 보편적인 것 같다
"정서적인 학대에 대해 아직 민감도가 낮다. 작년 9월 세이브더칠드런은 유튜브 키즈 채널 운영자였던 부모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했다. 문제의 영상에는 부모가 강도로 변장해 아이를 울리거나 장난감 자동차에 태워 일반 도로에서 운행하게 하는 등 아동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더군다나 키즈 콘텐츠는 연출 대상뿐만 아니라 영상 소비층도 아동이다. 아동 발달에 해롭다고 보이는 영상에 아동을 출연시키고 영상을 배포한 것을 아동학대로 본 거다."
지난 6월 법원은 해당 부모에게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을 받으라는 보호처분 판결을 내렸다.
- 아동인권을 높이기 위한 대안이 있다면?
"스웨덴은 1979년 세계 최초로 체벌금지법을 만들었다. 앞서 1975년에 아이가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학대를 당했는데 아버지가 무죄를 받았다. 공론화가 이뤄졌다. 스웨덴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대신 체벌금지법을 만들어서 학대나 가해 행위를 하지 않도록 했다. 당시 국민 70%가량이 이 법에 반대하는 등 여론이 좋지 않았다. '모든 부모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반감 때문이었다.
스웨덴은 인식을 바꾸기 위해 여러 가지 캠페인을 벌였다. 일례로, 우유팩에다 '아이를 체벌하면 안 된다'는 안내문을 표시하는 등 아동에 대한 어떠한 폭력도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했다. 30여년 흐른 2011년 국민 대상 여론조사에서 '아이에 대한 폭력은 안 된다'고 답한 사람이 92%까지 높아졌다. 사회적인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아동에 대한 인식은 쉽게 바뀌기 어렵지만 가장 시급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동에 대한 생각이 안 바뀌면 아동인권도 안 바뀐다. 아동은 누군가의 소유가 아닌 하나의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아동 중에서도 더 취약한 아동이 있다. 한부모 가정, 난민 가정, 장애 가정 등의 아동이 그렇다. 이런 아동들도 포괄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아우르는 정책이 필요하다."
KPI뉴스 / 오다인 기자 odi@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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