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 적극적 치료 유도 등 사회복지 차원 접근해야"
'심신미약을 핑계 삼는 살인자들에게 절대 관용을 허용해선 안 된다.'

'심신미약 감형'이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10월14일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일하던 신모(21)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성수(29)씨의 가족이 경찰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분노했다.
사건 발생 5일 만인 19일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관할서인 강서경찰서를 방문해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 22일에는 가해자 김씨의 신상도 공개했다. 그러나 보름 후인 29일 '심신미약 감형 반대' 취지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동의자는 청원 게시판 개설 이후 최다인 110만명을 기록했다.

형법상 심신미약·상실 감경 규정에 따라 법원은 정신장애가 있거나 만취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 대해 형사 책임을 감경해준다. 어떤 범죄행위에 대해 형벌을 부과하려면 사물을 변별하고, 의사를 결정할 '책임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임능력이 없는 사람(심신상실자)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못하고, 이러한 책임능력이 부족한 사람(심신미약자)의 범죄행위는 약하게 처벌된다.
앞으로 2년 뒤면 출소하게 될 조두순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2008년 12월 경기 안산의 한 교회 앞에서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그는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으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2월 '조두순 출소 반대'라는 청와대 청원은 61만여명의 동의를 이끌었고 이에 조국 민정수석이 답변을 내놓기도 했지만, 현재까지도 "출소 반대를 위한 재심을 요구한다"는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해 청와대 최다 청원은 '조두순 출소 반대'였지만, 올해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가 역대 최대로 기록을 갈아치웠다. '심신미약 감형'에 대한 많은 사람의 반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추모 물결이 일었던 '강남역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6년 5월 강남역 한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망상 등의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돼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자 정치권에서는 재발 방지를 위해 공중화장실의 경우 남녀 화장실을 분리토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10월30일 "심신미약의 경우 범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형량을 줄이도록 한 현행 형법이 사법정의 구현에 장애가 되는지 여부를 검토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강력사건의 피의자들이 '심신미약'을 주장하자, '처벌이 약해질 우려가 있다'는 사회적 논란이 거세지는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심신장애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무조건 형벌이 감경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에 따르면 한국에서 2014~2016년 접수된 형사사건 160만 건 중 피고인의 심신장애가 논의된 판례는 1597건(전체 사건의 약 0.1%)이었다. 이 중 305건이 피고인의 심신장애로 인정됐다. 심신장애를 주장한 사건의 19.1%, 전체 사건의 0.019% 수준이다.
실제 지난해 3월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하고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한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만성 신경 정신질환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치밀하고 잔혹한 계획범죄를 저지른 점을 볼 때 피고인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음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18세 미만인 피고인이 받을 수 있는 최장기형인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지난 3월 복지급여 지급에 불만을 품고 주민센터 담당 공무원에게 미리 준비한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50대 정신장애인 ㄱ씨도 징역 6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정신장애 3급인 그는 재판에서 과거 앓았던 정신질환으로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과거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범행 수단과 방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행동과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의 진술 태도, 정신감정 결과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강서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씨에 대해 '심신미약' 적용이 어렵다는 법조인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청원 게시판에는 '심신미약 법 조항을 삭제하라',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국회에는 형법에서 심신미약자의 범죄행위를 의무적으로 감형하는 조항을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일명 '김성수법' 등 형법 개정안이 여러 건 제출된 상태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 문제가 대두되면서 최근에는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는 절차가 엄격해졌다"면서 "정신질환자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위험성이 잠재된 사람들이 사회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조현병을 포함한 정신장애 범죄자 수는 2015년 6980명에서 2016년과 2017년에는 각각 8287명과 9027명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아울러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 중 강력범죄 비중은 9.71%로 비정신질환자(1.46%)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임 교수는 "형법의 기본적 원칙을 쉽게 건드릴 입장은 아니다"면서 "지금처럼 심각한 문제가 야기했을 때만 정신 문제를 다루지 말고 주변에서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진단을 받거나 치료를 받도록 유도하는 등 정부가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수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에 대해서는 치료감호소 등 정신과 의사의 정신감정과 법원의 판단을 거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심신미약 감경 규정 자체를 형법에서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일부 정신장애인이 범죄행위로 나아가지 않도록 지속적인 치료, 복약지도 등과 같은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PI뉴스 / 김이현 기자 k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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