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 계기로 '빨갱이' 단정…DJ측 "지원 안해줘 변신"
이른바 ‘5·18 북한군 개입설’은 전두환 회고록에 모두 18번 등장한다. 논란이 되자 전씨 측은 지만원(예비역 대령) 씨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2000년대부터 5·18 북한군 투입설을 주장해온 지씨는 김대중을 ‘빨갱이’로, 전두환은 ‘영웅’으로 간주하는 극우 논객이다. 하지만 지씨는 한때 진보매체인 월간 《말》지에 평론을 쓴 진보적인 군사평론가이자 촉망받는 시스템분석가였다.

1942년생인 지만원 씨는 강원도 횡성 출신으로 육사(22기)를 졸업하고 미국 해군대학원에서 시스템공학 박사학위를 한 뒤에 △국방 PPBS(Planning Programming Budgeting System) 도입 연구요원(1976~1977) △국가안전기획부 정책보좌관(1980)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1981~1987) 등을 거쳐 1987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응용수학 공부한 시스템공학 박사
지씨는 예편 뒤에 미 해군대학원에서 부교수(1987~1989)로 근무한 뒤에 전공인 시스템적 시각으로 조명한 국방경영 철학서인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1991년, 김영사)를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군사평론가로 등단했다. 지씨도 자신의 프로필에 “처녀작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하나’ 전국서점에서 소설 제치고 7주간 1위”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하다.
지씨는 이후에도 뛰어난 군사평론가로서 △군축시대의 한국군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1992년) △신바람이냐 시스템이냐(1993)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1996년) 같은 책을 저술했다.
지씨는 응용수학을 공부한 시스템공학 박사이다. 지금은 모든 객장이나 창구에 순번 대기표가 일상화되었지만, 90년대 이전만 해도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찾으려면 창구 앞에서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시스템 전도사인 그는 1990년 국민은행을 시발로 국내에서 순번 대기번호표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의 변화상을 예를 들어, 그동한 한국인의 국민성이나 의식이 무질서한 게 아니고 ‘의식은 시스템의 산물’이라고 설파해왔다.
그처럼 진보적 평론가이자 수학적 사고가 뛰어난 시스템분석가가 어쩌다가 극우적 사고에 포획된 ‘괴물’이 되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그와 전두환과의 인연과 김대중과의 애증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전두환과의 인연과 김대중과의 애증
우선 그의 이력을 보면 백마부대(9사단) 포병연대에 배속되어 포병 관측장교와 포대장(중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1967~1971년)한 것을 제외하면 국방예산 및 정책분야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전두환은 그 시기 백마부대 29연대장으로 참전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국가안전기획부 정책보좌관’(1980) 경력이다. 지씨는 당시 미국 체류 중에 안기부 차장의 정책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그의 경력이 사실이라면 중앙정보부가 안기부로 개편되기 전으로, 80년 6월 1일자로 중앙정보부가 대폭 개편된 이후 당시 2차장은 군(육사7기, 예비역 중장) 출신의 김영선(80. 4. 28~80. 9. 5)이었다. 또 그의 홈페이지 프로필에는 ‘98. 11~99.1 0 국정원 자문위원’을 지낸 것으로 돼 있다. 그 기간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지씨가 월남전에 참전한 기간인 1971년에 김대중은 처음 대선에 출마했다. 김대중은 이후 대통령 직접선거가 사라져 1987년 12월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될 때까지 정부여당과 가장 강력하게 싸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구심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부터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의 국가안전기획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보기관이 수행한 언론플레이 공작의 십중팔구는 김대중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그를 향한 정보기관의 색깔 공세와 언론플레이는 그가 선거 때마다 감수해야 할 ‘통과의례’였다.
1987년 대선 직전에 발생한 'KAL858기 폭파 사건을 활용해 북괴와 야당 대선후보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선거 전날 김현희를 압송해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함으로써 대선 사업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한 안기부의 '무지개공작', 1992년 대선 전에 안기부가 발표한 거물 간첩 이선실과 조선노동당 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두 북풍(北風) 사건은 각각 당시 여당 대통령후보였던 노태우·김영삼의 당선에 기여했다는 것이 여론조사 및 선거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오죽했으면 1997년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대선 전에 열린 ‘97 대선과 북풍’ 세미나(1997. 10. 10)에 참석해 ‘전쟁위기 대응체제 구축을 통한 북풍정치 종식’이라는 색깔(?) 있는 제목으로 발제를 했을까 싶다. 그만큼 북한 변수와 북풍 공작에 대한 피해의식이 컸던 것이다. 하지만 긴급한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김대중 총재는 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천용택 의원이 발제문을 대독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5.18 관련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극우 논객 지만원 씨가 그때만 해도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가 후원하고 김대중 총재가 발제한 '북풍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해 북한의 북풍 공세를 비판했다는 점이다. 김대중이 국군을 통수하는 대통령을 지낸 뒤에도 그를 '빨갱이'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 특수군이 개입한 폭동'으로 단정한 그의 행적에 비추어보면 아이러니다.
권노갑 의원 국방위원 시절 정책보좌로 DJ측과 인연
지씨는 당시 동교동계 좌장이자 당시 인재영입을 주도했던 권노갑 부총재(현 민주평화당 상임고문)가 접촉해 군사와 대북 분야에 대한 자문을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당시 김대중이 자신이 책으로 쓴 '영구분단 통일론'을 높이 평가해 자신을 매우 아꼈으며 해외 일정에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아무튼 지씨는 1997년 대선 때만 해도 북풍 토론회에 참석해 김대중의 대북관과 통일관에 대해 "균형 있는 구도를 갖췄다"고 평가했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는 각종 언론과 강연을 통해 "DJ는 빨갱이다"와 같은 표현을 서슴없이 표현하며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씨는 자신의 변신에 대해 1998년 김대중 정부 당시 임동원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수석(육사13기)이 ‘햇볕정책’을 주장해 김대중 대통령과 임 수석이 ‘빨갱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 이후부터 두 사람을 김정일의 앞잡이로 규정한 글을 잡지와 인터넷에 쓰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 측근들의 증언은 그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우선 지씨를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에게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권노갑 고문은 자신이 국방위원 시절에 정책자문을 했을 뿐 총재한테 추천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권 고문은 “육사 출신에 미국서 공부한 인재라고 해서 한동안 내 보좌진과 함께 국정감사나 정책질의서를 작성하는 데 도움을 받으며 가깝게 지낸 것은 사실이지만 총재(DJ)한테 추천한 적은 없다”고 했다.
권 고문은 한동안 가까웠던 지씨와 멀어진 계기로 여러 사람한테서 180도 다른 평판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권 고문은 특히 자신이 국방위원을 할 때 종친이어서 호형호제 관계였던 권영해(육사15기) 국방장관이 “형님, 지만원을 믿지 마십시오”라고 충고해 거리를 두었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는 자신이 ‘한보 사건’으로 수감되는 바람에 대선 전에 누구를 추천할 처지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DJ측 “신뢰할 수 없어 멀리해…지원 안해주니 적으로 돌아서”
김대중 정부에서 국방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낸 천용택 장군(육사16기)도 “육사 후배이고 당시 당에 여기저기 만나고 다닌 것은 알았지만 개인적으로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DJ나 청와대에 추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국정원장 시절에 ‘국정원 자문위원’을 지낸 이력에 대해서도 “원장 시절에 그런 너덜너덜한 기구(자문위원)를 둔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천 전 원장은 “국정원은 스파이 조직인데 특수정보기관 운영자가 누구로부터 자문을 구하냐”고 반문하면서 “그런 제도 자체를 둔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들은 지씨가 김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반대 세력으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서도 지씨와 다른 해석을 내놨다.
이를테면 천용택 의원은 97년 대선에서 북풍을 막아낸 공로로 김대중 정부 출범후 초대 국방부장관을 거쳐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북풍 토론회’에 참석해 김대중의 대북관을 옹호했던 지씨는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개털’ 신세였다. 그 이후 시스템공학자인 지씨는 ‘김대중=5·18=빨갱이’라는 공식의 전도사로 나섰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낸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씨가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니 청와대로 '연구비를 좀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보냈다"며 지씨의 변심 이유를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씨가 나중에 17대 대선에 출마하려고 했을 정도로 권력욕이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 측에서 자리를 주지 않자 적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씨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직접 시스템미래당(약칭 미래당)을 창당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지씨는 그해 3월 ‘가장 확실한 보수우익’을 기치로 내걸고 좌익척결, 경제도약, 도덕재건을 내세운 우익정당을 창당해 활동했다. 당 강령에서 ‘이승만의 건국 정신과 박정희의 근대화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정통역사를 계승한다’, ‘휴전선이 없어지지 않는 한 북한은 적이며 적에게 자금이나 물자를 제공하는 행위는 이적행위로 간주한다’ 등으로 규정해 반북·반좌익 노선을 확실히 했다.
하지만 시스템미래당은 1년만인 2008년 3월 자진해산을 결의해 해산했다. 그의 현재 직함은 ‘시스템클럽 대표’이자 ‘500만야전군 의장’이다. 그의 홈페이지에 대문에는 ‘국부 박정희 vs 역적 김대중’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다.
홈페이지에 내건 ‘국부 박정희 vs 역적 김대중’이라는 문패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등의 인터넷 카페 등에는 지금도 5·18을 왜곡하는 글들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이들은 아예 ‘광주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 특수군’을 지칭하는 ‘광수’ 찾기 놀이를 즐기고 있다.
국군을 통수하는 대통령을 지냈음에도 일부 극우인사들은 ‘김대중은 빨갱이’, 5.18은 ‘광수’가 개입한 무장폭동으로 규정하며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 ‘빨갱이 딱지 붙이기’의 최전선에 ‘순번 대기표 시스템’의 전도사인 지만원 씨가 있다.
이와 관련 당시 보안사에 근무한 육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령은 “김대중 정부 당시 일부 육사 출신 선배들이 지씨를 공직에 추천했으나 사생활 문제 등의 이유로 기용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천용택 장관을 보좌했던 측근 인사는 “지씨가 공직 추천이 안되어 방위사업에 손을 댔는데 김대중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으니 천 장관과 김대중 대통령을 씹고 다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가 ‘괴물’이 된 까닭은 의외로 단순한 셈이다.
KPI뉴스 / 김당 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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