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비트코인' 62만개의 충격…빗썸 사고가 드러낸 가상자산 시스템 실패

안재성 기자 / 2026-02-09 18:23:16
보유자산 체크 등 검증 없이 실행된 지급시스템의 한계
"꼭 필요한 규제 도입 계기…장기적으론 전화위복될 수도"

클릭 한 번에 존재하지 않던 비트코인 62만 개가 거래됐다. 빗썸에서 발생한 이른바 '유령 비트코인' 사태는 단순한 입력 실수를 넘어, 가상자산 거래소 시스템 전반의 신뢰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냈다. 사고의 직접 원인은 '팻 핑거'(Fat Finger·주문 입력 실수)였지만, 시장이 흔들린 이유는 이를 걸러내지 못한 구조적 허점에 있었다.

 

'팻 핑거'가 아니라 시스템 실패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담당자의 단순 입력 실수였다. 빗썸은 지난 6일 오후 730분쯤 '랜덤박스' 이벤트 당첨자에게 62만 원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지급 단위를 'WON'이 아닌 'BTC'로 잘못 입력했다. 그 결과 62만 원 대신 62만 비트코인, 시가로 약 62조 원에 달하는 자산이 내부 시스템에 숫자상으로 생성됐다

 

문제는 실수가 아니라, 그 실수가 그대로 실행되고 거래까지 가능했다는 점이다. 보유 자산 검증, 다중 승인, 이상 거래 탐지 등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사고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자체 소유한 비트코인은 약 5만 개뿐인데 62만 개나 지급하면서도 걸러지지 않은 것이다.  

 

▲ 서울 강남구 빗썸라운지 삼성점. [뉴시스]

 

15그리고 흔들린 가격

 

빗썸은 약 15분 뒤인 오후 7시 45분쯤 오류를 인지하고 회수에 나섰다이 과정에서 오지급된 비트코인의 99.7%는 회수됐지만, 0.3%(1788)는 이미 시장에서 매매됐다.

 

단시간에 대규모 물량이 쏟아지면서 빗썸 내 비트코인 가격은 일시적으로 8000만 원대 초반까지 급락했다존재하지 않던 자산이 생성돼 거래되고 가격까지 흔든 셈이다시장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왜 걸러지지 않았나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대부분 '오프체인 장부 거래방식을 쓴다거래는 우선 거래소 내부 데이터베이스(DB)에서 숫자상 이뤄지고실제 가상자산 이동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나중에 따라오는 방식이다. 빠른 체결이라는 장점이 있지만내부 통제에 실패하면 치명적 리스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빗썸에는 보유 자산 한도를 넘는 지급을 차단하는 기능이 없었고 다중 승인 체계도 부재했으며 평소와 전혀 다른 규모의 거래를 감지·차단하는 이상거래 탐지(FDS)도 작동하지 않았다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편의성을 높이는 데만 집중하고검증 시스템 구축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미뤄온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개발자는 "빗썸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 마찬가지"라면서 "검증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비용과 인력이 드는데 그걸 아끼려다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유령 주식'의 데자뷔

 

이번 사태는 2018년 삼성증권의 '유령 주식사고를 떠올리게 한다당시 삼성증권은 배당금을 지급하면서 주당 1000원이 아닌 자사주 1000주를 잘못 지급했고일부가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며 주가가 급락했다이후 증권사와 한국거래소는 다중 안전망을 도입했다유령 비트코인은 유령 주식의 재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속도가 키운 위험

 

가상자산의 거래 속도 역시 사태를 키웠다주식은 D+2 결제 구조로 즉시 출금이 불가능하지만가상자산은 빠르면 10늦어도 1시간 내 거래 확정과 출금이 가능하다고 빗썸 관계자는 밝혔다. 업비트 역시 같은 구조다.

 

이 때문에 오지급된 비트코인을 매도한 투자자들 중 일부는 짧은 사이 빗썸 계좌와 연결된 KB국민은행 계좌로 출금까지 완료했다. 해당 금액만 약 30억 원에 달한다. 빗썸은 일단 해당 투자자를 설득하는 중이나 여의치 않을 경우 민·형사상 소송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 외에도 매도된 비트코인 중 아직 125개를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거래소 사고인가제도 전환의 계기인가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특정 거래소의 관리 실패로 보고가상자산 전체에 대한 신뢰 붕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영배 디지털금융연구소장은 "이번 사고가 곧바로 가상자산 시장 전반의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디지털자산기본법 등 규제 도입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신뢰는 한 번 흔들리면 제도로 복구해야 한다는 점이다클릭 한 번으로 만들어진 '유령 비트코인'은 가상자산 시장이 아직 풀지 못한 숙제를 드러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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