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法' 추진에 교환 조건 사채로 우회 기업 속출

박철응 기자 / 2025-09-29 17:26:55
이달 들어 자사주 교환대상 채권 35건 봇물
DB하이텍, 쿠쿠홀딩스, 하림지주 등
KCC 발행 계획엔 자산운용사 공개 반발
李대통령 "경영권 방어 자사주 이기적 행위"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법안이 추진되면서 이를 회피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교환사채(EB) 발행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자사주와 바꿔주는 조건의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인데'경영권 방어 목적 꼼수 방지'라는 개선 취지와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 중 교환사채 발행 공시를 한 상장사는 모두 35곳에 이른다. 지난해 40건가량 발행한 것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1년 치에 육박한 셈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8건에 그쳤는데 이달 정기국회 시작과 함께 집중적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기국회 회기 내 추가적인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방침으로 알려졌다. 

 

▲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대한상공회의소 정책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뉴시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추가적인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커진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코스닥 상장사들이 다수이나 유가증권 상장사들도 11곳에 달한다. DB하이텍, 쿠쿠홀딩스, 넥센, 대원제약, 대교, 덕성 등이다. 하림지주는 코스닥 상장사이나 발행 규모는 1400억 원으로 비교적 큰 편이다. 

 

SK케미칼도 2200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키로 했는데 자사주가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 주식을 교환 대상으로 삼았다. 또 일진홀딩스는 일진전기 주식을 교환해주는 조건으로 1000억 원 규모 사채를 발행키로 했다. 

 

올들어 지난 23일까지 교환사채 발행액은 3조548억 원 규모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2583억 원보다 140%나 늘어났다. 

 

교환사채는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자사주를 교환대상으로 삼으면 향후 시장에 물량이 풀릴 수 있어 주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며 채권을 인수한 측이 우호적 세력, 이른바 '백기사'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열린 '대한민국 투자 서밋'에서 "세금 제도를 개혁해 더 많은 배당이 이뤄지게 하거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취득하는 등 이기적 행위를 남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내용"이라고 추가적인 상법 개정안을 소개한 바 있다. 교환사채 발행은 '이기적 행위'를 위한 우회로로 비칠 수 있다. 

 

당장 시장의 반발이 크다. KCC는 지난 24일 자사주 3.9%는 소각하고 3.4%는 사내 근로복지기금 출연에 쓰되 9.9%는 연내 교환사채 발행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공시해 논란을 빚고 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이튿날 공개 주주서한을 보내 KCC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주식 가치가 3조2947억 원으로 KCC 시가총액(3조2702억 원)을 웃돌 정도라는 점을 짚었다.

이어 "교환사채 발행이 차입금 부담을 줄이려는 취지였다면 자기주식보다 비핵심·저수익 자산을 먼저 활용했어야 한다"면서 "오랫동안 수익 기여가 제한적이었던 삼성물산 주식을 기초로 교환사채를 설계할 수 있었지만 자기주식을 먼저 활용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고 지적했다. 

 

태광산업은 자사주 전량을 교환 대상으로 하는 3200억 원 규모 교환사채 발행을 추진하다가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가처분 신청을 해 멈춰선 상태다. 법원이 지난 10일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지만 재추진 여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태광산업은 지난 24일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과 정부 정책 및 시장 환경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회사와 주주의 공동 이익을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사주 보유 규모가 큰 대기업그룹 지주회사도 주목된다. KB증권에 따르면 대규모 기업집단 지주사 중 자사주를 보유한 기업은 30곳인데 8곳이 향후 처리 계획을 밝혔다. 롯데지주는 지난 6월 말 자사주 530만 주가량을 롯데물산에 처분했으나 여전히 전체 주식 대비 자사주 보유 비중이 27.5%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롯데지주 소액주주연대는 최근 주주 서한을 통해 "자사주 소각은 단 한 번도 진행하지 않고 자회사에 자사주를 넘겨 경영권 방어에만 급급한 이미지를 얻고 신뢰를 잃은 점은 주주로서 매우 유감"이라며 자사주 전량 소각을 요구했다. 소액주주연대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 독립적 사외이사 확충, 부실 계열사 지원 중단 등 지배구조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민주당 '코스피 5000 특위' 위원장인 오기형 의원은 이날 한국거래소 주최 '한국 자본시장 콘퍼런스'에서 "자사주 제도와 관련해 성과를 내고 자본시장법상 합병·분할 시 의무 공개매수 제도에 대해서도 여야 간 소통을 통해 결과를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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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응 /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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