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로에-소피아, 인생 위기를 만난 두 여자 이야기
'어느 가족'과 함께 가족이란 무엇인가 화두 던지는 수작
개봉 전부터 명성이 자자한 영화들이 있다.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만남을 뒤로 미루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영화 '로마'가 그랬다. 이미 5년 전 '그래비티'로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이라는 기대 속에 일찍이 지난해 9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올해 1월 골든글로브 감독상과 외국어영화상에 이어 2월 아카데미 감독상과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의 주인공이 됐다는 소식을 들으며 머뭇거림의 시간이 길어졌다.

만나야 할 인연은 결국 현실이 된다. 게다가 '로마'는 언제 어디서건 나만 마음먹으면 볼 수 있는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이니 더욱 그렇다. 지난 주말 '로마'를 만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회막급. 왜 서두르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큰 만족과 위안의 감정에 휩싸였다. 아직도 여운이 몸 안을 돌고 입안을 적신다. 온전히 이 영화의 미덕들을 전할 자신이 없지만, 지극히 개인적 감정과 의견이지만 살포시 풀어 본다.
왜 유수의 영화상들에서 감독상 트로피가 알폰소 쿠아론에게로 향했을까. 많은 좋은 영화가 그러하듯 '로마'는 그저 차분한 마음으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 속에서 생각보다는 오감을 열어 나지막이 보게 하는 힘이 있다. 따뜻한 물속에서 눈을 감고 햇빛을 받으며 유영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보고나니, 이제 막 헤어졌는데 금세 다시 보고 싶고 지금 바라보고 있는데도 그리운 연인처럼 자꾸 생각이 난다.

영화는 1970년 멕시코 멕시코시티 내 로마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중산층 정도의 부유한 가정, 의사인 아빠와 화학자였지만 지금은 아이 넷을 낳고 가정부 두 명을 두고 사모님 소리를 듣는 엄마, 그리고 외할머니 3대가 함께 산다. 그리고 마당에 사는 검은 개 한 마리가 있다. 이야기의 시선은 가정부 중 한 명, 주로 아이들을 돌보는 끌레오(알리차 아파리시오 분)를 따라간다.
소피라는 이름의 딸이 셋째이고 나머지가 아들인 네 명의 아이들은 다감하고 희생적인 끌레오에게 무척 의지한다. 특히 감독의 어린 시절이 아닐까 상상하게 하는 귀여운 막내 페페는 끌레오 곁을 떠나려하지 않는다. 전기 한 등을 아끼라고, 개똥 좀 얼른 치우라고 잔소리하는 사모님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 분) 역시 끌레오에게 육아와 가사를 의존한다.
끌레오와 소피아, 두 여자에게 위기가 닥친다. 여자와 사랑에 빠진 소피아의 남편이 집을 떠난다. 1주일이라던 캐나다 출장은 길어지고, 소피아는 아이들을 시켜 아빠에게 보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파코와 토뇨, 두 아들은 여자의 손을 잡고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길을 뛰어다니는 아빠를 시내에서 목격한다.
함께 일하는 가정부 친구 아델라의 남자친구, 그 사촌과 교제하던 끌레오는 임신을 한다. 이야기를 들은 남자친구는 영화가 끝나기도 전 재킷도 벗어둔 채 극장에서 사라진다. 어렵게 수소문해 찾아가지만 돌아오는 건 짐승 같은 포효와 나의 아이일 리 없다는 부인이다.

친구는 위기의 순간 알아본다 했던가. 참담한 소피아가 전화로 자신의 친구 몰리나에게 고통을 토로하는 사이 끌레오는 늘상 그랬듯 아이들을 엄마의 마음으로 돌본다. 임신과 해고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끌레오를 아이 아빠 대신 병원에 데려간 건 소피아였다. 임신으로 불안한 끌레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건 친척집 할머니 가정부 베니타였고, 아델라는 끌레오의 몸이 편하도록 더 많은 가사 일을 자청했다. 남자들이 떠난 자리, 외면한 책임을 여자들의 연대와 지지로 헤쳐 나갔다.
위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먼저 새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 아기침대를 사주려는 페페 외할머니와 시내로 나간 만삭의 끌레오. 사회적 대혼란 속에서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뛰어난 무술실력을 무기로 민주적 시위를 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사내가 된 아이아빠와 마주한 끌레오는 극도의 절망 속에서 양수가 터진다. 외할머니와 소피아의 도움 속에 보험도 없는 원주민 끌레오는 무사히 분만대에 오른다.
그리고 소피아. 남편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정신을 차린다. 더 이상 돈을 주지 않는 남편에게 기대하지 않고 직장을 구하고, 남편에게 맞고 자신에겐 너무 커서 불편했던 대형 세단 대신 작은 차를 구입하고, 아이들에게 아빠는 캐나다에 있지 않으며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린 뒤 바다로의 가족여행을 계획한다. 출산 후 휴가 중인 끌레오에게 동반여행을 제안한다. 행복한 시간도 잠시, 엄마가 자동차 바퀴를 점검하러 간 사이 소피와 파코가 큰 파도에 휘말리고, 어린 페페를 돌보던 끌레오는 수영도 못 하면서 일순간의 주저함 없이 바다로 달려간다.

영화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일각에서는 개인적 경험과 감성이라지만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를 넘어선 백인 주인과 원주민 하녀, 남미 특유의 신분과 계급제도의 잘못된 잔재를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과연 '로마'가 엄존하는 정치 사회적 관계를 통째로 무시하고, 여러 고난과 고비 속에서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따뜻하게 지켜줬던 보모에 대한 추억을 그린 영화일까. 무엇이 가족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영화이며 따라서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과 관계는 과거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있을지 모르는, 어쩌면 있기를 바라는 이상향은 아닐까.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새로운 사랑을 찾은 남자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적어도 네 아이를 두고 집을 나선 순간 아빠는 더 이상의 이들에게 가족일 수 없다고 영화는 말한다. 도리어 소피아와 아이들에겐 자신들의 곁을 지킨 끌레어가 가족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유전학적으로 아이아빠라 해도 한 생명의 잉태를 외면한 남자가 가족이냐고 감독은 우리에게 묻는다. 극중 소피아가 끌레오에게 말한다, "여자는 늘 혼자야". 결혼을 하고 아이 넷을 낳아도, 사랑을 해서 임신을 해도 혼자인 여자 곁에서 함께 가족을 지키는 것은 또 다른 여자들이다.
그렇게 여자들의 연대로 이뤄지는, 아니 가족다운 가족에 의해 꾸려지는 삶을 이야기하면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아직 본 적 없거나 드물게 있어도 익숙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상상으로 펼쳐내는 대신 자신의 과거에서 어떤 '단초'를 발견, 확장해 보여 준 건 아닐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과 헌신, 연민과 감사로 이어지는 관계, 그게 부부이고 그게 가족 아닐까.

영화 말미, 바다로 뛰어든 끌레오를 두고도 부정적 해석이 존재한다. 그런데 과연, 하녀의 무조건적 헌신을 얘기한 장면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그때 끌레오는 소피와 파코만 구하지 않았다. 자신을 구원했다. 아이아빠에게 부인당한 가여운 아기가 자신의 자궁에서 세상으로 나오지 않기를 바랐던 못된 마음,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어 입을 다물고 목소리를 버렸던 끌레오가 지구생명의 자궁이라고 하는 바다에서 자신이 엄마의 마음으로 돌봐온 아이를 구해냄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바다에서 돌아오면 아빠의 짐들마저, 가구와 책과 옷가지가 새 집으로 떠난 상태다. 집은 배치가 싹 바뀌어 있고 아이들은 방이 넓어지고 거실이 훤해졌다며 좋아한다. 아빠의 부재를 반기는 장면이 아니다. 아빠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장면이다. 아빠가 아니라 온 집안에 자신의 기운을 드리우며 주인 노릇을 하는 가부장적 존재가 사라졌을 때의 평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나 혈연이 가족을 가족답게 하는 온전한 조건으로 작용하지 못 하는 현실에서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가족의 진정한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로마'이다.
가족의 해체를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다양한 비극의 원인으로 보고 그 해법을 고민하는 영화, 사회를 반영할 뿐 아니라 반보 앞서가며 우리의 내일을 고민하는 문학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작품들. 고레에다 히로카츠의 '어느 가족'이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과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올해 골든글로브에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감독상을 받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어쩌면 '로마'가 멕시코 영화가 아니고 온라인서비스를 기본으로 한 새로운 플랫폼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베니스영화제에 이어 대상인 작품상의 주인공이 됐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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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로마' 스틸컷 |
촬영상과 관련해서는 간단히 두 장면만 언급하고 싶다. 우선 영화의 시작. 카메라가 마름모 모양의 보도블럭을 직사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여기에 물이 끼얹어지며 물이 고인 바닥은 하늘을 비춘다. 거품 섞인 물이 밀려들며 비행기가 날고 새가 나는 하늘이 중간 중간 가려진다. 이제 거품 섞인 물은 검게 변하며 하늘을 가린다. 앞으로 여러 고난이 닥칠 것을 예고하는 듯한 이 바닥을 물청소하고 하고 있는 여자가 보인다, 끌레오다. 글로는 표현이 어려운데 영상을 보면 꽤나 오랫동안 잊지 못할 인상적 오프닝이다.
치유가 필요한 페페네 가족이 바다로 간다. 호텔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바다로 가고 싶어 안달이다. 차가 멈추기 무섭게 바다로 달려가는 아이들. 화면 멀리에는 짧은 선처럼 보이는 아이들을 품고 있는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화면 가까이에는 긴 머리를 드리운 끌레오의 상반신 뒷모습이 크게 서 있다. 세상살이가 힘겨우면 우리는 고향을 찾고, 다양한 생명들의 시작점이었던 바다를 찾는다. 더없이 편안했던 어머니의 자궁 속 대신이다. 거기까지 가고서도 쉽게 다가서지 못 하는 끌레오, 그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뼈아프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두 장면 모두 정적이 흐르지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영화는 흑백으로 촬영됐다. 모든 혼란과 슬픔을, 감정에도 단계가 있다면 한 단계 낮춰 차분하게 느끼도록 작용한다. 영화 '로마' 촬영의 가장 특별한 점은 카메라가 어떤 존재적 시선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크게 간섭하지 않지만 묵묵히 기다리고 지켜봐 주는, 그러면서도 따뜻한 위로의 토닥임을 잊지 않는 그런 존재. 끌레오의 눈빛 같기도 하고 이 세상 엄마의 마음인 것도 같고 신의 존재 같기도 한. 영화 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자리를 함께해 주는 무엇 혹은 누군가, 만나볼 만한 카메라다.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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