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중단 혹은 폐지…상법 개정 앞 비상 걸린 기업들

박철응 기자 / 2025-06-30 17:14:41
올들어 자진 상폐 추진 기업 4곳
SK엔무브 상장 잠정 중단…'쪼개기' 비판 영향인 듯
파마리서치 분할엔 "이재명 대통령에 맞서는 것"
국힘, 반대 입장 바꿔…"주주권 위해 전향 검토"

상법 개정이 유력해지면서 일부 기업이 계획했던 상장 작업을 중단하는 등 회피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례적으로 자진 상장 폐지를 추진하는 것도 상법 개정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올 들어 자진 상장 폐지를 위한 공개 매수를 진행했거나 진행 중인 기업은 4곳에 이른다. 한솔피엔에스, 텔코웨어, 비올, 신성통상이다. 

 

▲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오른쪽)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경제단체 상법 간담회에서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거래소의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상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95% 이상이면 자진 상장 폐지 요건을 충족한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장 폐지는 기업이 존속하는 기간동안 웬만해서는 보기 드문 일"이라며 "개정 상법의 적용을 받기 전에 주주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자발적으로 상장 폐지를 추진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짚었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높을수록 추가 지분 매수를 상대적으로 적게 하더라도 자진 상장 폐지가 가능해진다. 이 지분율이 80% 이상인 상장사는 24개로 파악된다. 가온전선, 천일고속, LS네트웍스, 세아홀딩스, 국일제지, 동원산업, LG에너지솔루션, 한국제지 등이다. 

 

LG화학에서 물적 분할돼 2022년 이른바 '쪼개기 상장'으로 상법 개정 논의에 불을 붙였던 LG에너지솔루션의 지분 82%는 LG화학이 보유하고 있다. 

 

엄 연구원은 "규제 강화 때문이 아니더라도 주가 관리와 IR(기업설명활동), 공시 의무 등이 부담스러워 상장 폐지를 택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어떤 이유이건 상장 폐지를 원치 않는 소액주주에게 충분한 대가를 지급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5일 이사회를 열고 윤활유 사업 자회사인 SK엔무브의 상장 추진을 잠정 중단키로 했다. 대신 SK엔무브 지분 30%를 추가 매입해 100% 자회사로 편입한다. '쪼개기 상장' 논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한국거래소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해 SK엔무브 상장 협의 단계에서 주주 보호 방안의 보완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자회사 상장을 추진 중인 LS그룹도 부담을 느껴 시기를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지난 3월 "중복상장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상장 후 주식을 사지 않으면 된다"고 말해 계열사 주가가 급락하고 주주들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그러자 명노현 LS 부회장이 주주총회에서 "기업공개(IPO) 추진 시 주주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면밀히 살피고 기업가치를 올려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며 진화를 시도했다. 

 

제약사인 파마리서치는 지난 13일 투자 담당 존속법인과 에스테틱 사업 신설법인으로 나누는 인적분할을 결정해 뭇매를 맞고 있다. 물적분할과 달리 기존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새로운 회사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지배주주 이익을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거세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26일 논평을 통해 "파마리서치 이사회는 빠른 시일 내 충실 의무 관점에서 분할 계획의 기존 주주 이익 침해 가능성을 재검토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의 핵심을 언급한 것이다. 

 

거버넌스포럼은 "'쪼개기 상장'에 대해 수 차례 경고한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의 자본시장 정책 기조에 맞서는 것"이라며 "멀쩡한 회사를 두 개로 나눠서 따로 상장시켜 주주 간 이해관계를 뒤섞고 지배주주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방식이라면 모두 상장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음달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 외에도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 룰'과 집중투표제 강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경제 6단체와 간담회를 갖고 경제계 우려를 반영해 추가 보완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경제계가 우려하는 문제가 발견된다면 얼마든지 제도를 수정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계는 이사 책임 강화가 자칫 배임죄 남발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며 배임죄 완화·폐지를 주장해왔고 민주당도 완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겸임하게 된 송언석 원내대표도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최근 일부 기업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주권 침해 문제 등 시장의 상황 변화 등을 고려해 상법 개정안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존 강경한 반대에서 일부 후퇴한 것이다. 일부 세부적 내용의 조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큰 틀의 상법 개정은 기정사실로 굳어가고 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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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응 /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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